경험이 가져다주는 것들

by 전성배

입추가 지난 지 2주 정도 됐을까. 요 며칠 사이 아침과 저녁의 바람이 낮과 달리 꽤나 시원하다. 반바지와 반팔이 가리지 못한 맨살에 스치는 바람은 마치, 늦은 저녁 샤워를 마친 뒤 누운 침대 위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을 때 느끼던 나른함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어제는 하늘마저 맑고 넓어 그것과 더욱 유사했다. 일을 마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엔 아쉬운 밤. 휴일인 다음 날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밤. 이 시원한 밤과 하늘을 만끽하고 싶어, 친한 동생과 함께 서로가 애정 하는 동인천으로 향했다.


많은 프랜차이즈와 노포가 즐비해있지만, 여전히 폐업을 하거나 일찌감치 문을 닫은 가게가 더 많은 탓인지 주말에도 한적함을 지우지 못하는 장소인 동인천은,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탁월한 아지트였다. 우리는 사전에 약속했던 맥주집을 가기 위해 동인천에 도착한 직후 헛튼 걸음을 줄이고 곧장 맥주집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역에서 가까운 곳이었기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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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뷰 / 와카레미치 iPhone XS

내가 느낀 그곳의 첫인상은 오래된 한옥집이 한 꺼풀 껍데기를 벗고, 현대식으로 리모델링된 시간으로부터 십 수년은 지난 듯한 느낌이었다.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나무 대문을 지나면 곧장 마루가 보이고, 신을 벗고 들어가 좌식 생활을 기본으로 해야 하는 시골의 여느 집과 다르지 않았다. 괜한 미소가 지어졌다. 익숙한 풍경에 동생도 미소를 지었고 우리는 벽 옆에 위치한 작은 상을 사이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그곳은 단출한 안주와 20여 개의 종류로 채워진 맥주 냉장고가 보이는 것에 전부였지만, 시골에 있는 친척 집을 방문한 듯한 편안함과 친근함이 느껴져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맥주와 함께 부족한 안주를 대신할 몇 개의 이야기로 상 위를 채우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단 하나의 이야기도 흩어지지 않고 오밀조밀 모여 서로에게 균등하게 안착하는 듯한 대화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단단함의 중심에는 자연스레 이 같은 장소를 익숙하게 느끼도록. 또 좋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경험이란 참으로 묘한 단어다. 삶에 활력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삶을 끝없이 외롭고 우울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는 우리는 경험이 점철되어 이룩하는 경력을 쌓으며 해당 분야에서 일정한 수준의 직급과 그에 따른 보상을 얻고, 그로 인해 삶의 여유의 크기를 불려 나간다. 또 다른 형태로는 사람에 대한 경험을 쌓는 것으로 서로 유대가 얽히는 사람끼리 관계를 형성해 나가며, 여기에서 경험은 또 한 번의 역할로 관계에 대한 결속력과 지속력이 강해지도록 이바지한다. 그래, 경험은 대체로 이러한 부분에서는 삶에 이로운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경험의 이면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외로움이라는 부작용을 가져다준다.

시뷰 / 와카레미치 iPhone XS

우리가 가진 미련과 그리움이라는 미련한 감정의 시발점에는 경험이 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고 좋아하며 욕심낼 수는 없는 법이니, 경험을 하는 순간 우리는 그러한 것들에 발이 묶이고 만다. 사랑하지 않았던 지난날에는 떠나간 사람이 남긴 잔향이 이토록 사람을 목 조르는 괴로움이 되는지 몰랐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본 적 없던 지난날에는 한 번 잡은 손의 온기가 나의 체온과 맞물려 설렘과 행복에 살을 찌운다는 것을 몰랐고, 이별한 적 없던 지난날에는 이별로 귀결된 여러 거짓들이 다음 사람에 대한 불신을 낳는 줄 몰랐다. 마지막으로 이를 알면서도 한 번 경험한 사랑을 잊지 못해 다음 사랑에 목메는 외로움이 이만큼 클지 몰랐고, 그런 조급함이 좋지 않은 인연을 잉태한 다는 것에 무지했다.


모든 약에는 각기 다른 부작용이 있지만, 대체로 이로움이 커 약간의 부작용은 묵인되거나 잊힌다. 하지만 경험은 이로운 부분과 해로운 부분의 크기 어느 하나도 쉽사리 단정 지을 수 없을 만큼 서로 너무나 거대하다. 취해야 할지, 배제해야 할지 도통 확신할 수 없다.


취해야 한다면 부작용이 두렵고, 배제해야 한다면 건조해질 삶이 아쉽다.


그러나 사실 정답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살아간다. 부작용을 감수하며 경험을 취한다. 이것이 맞겠지. 경험이 가진 부작용도 결국 삶을 보다 화려하게 장식할 테니.


우리가 그곳에서 마주한 경험에 대한 결말은 결국 그것이었다. 한번 알게 된 사랑은 사람이 남긴 잔향이 꽤나 무서운 것임을 말하지만, 결국 흐르는 인연에 몸을 맡겨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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