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모든 것에는 내가 있었다.

by 전성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느 날, 아직 밤이 되기에 일렀던 9시쯤 잠에 들었다. 낮 동안 흘렸던 땀과 쉼 없이 움직인 육체가 기울어지는 태양과 함께 꺾여버린 것이 이유인 것 같다. 샤워를 마치고 베개에 머리를 댄 직후 일찍이 의도하지 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화면을 켜 두었던 휴대폰은 이미 방전되어 꺼져있었고, 분명 끄지 못했던 방불도 어느새 꺼져있었다. 아마도 어머니의 배려였으리라.


눈을 뜬 난 사방에 내려앉은 어둠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이미 방전된 휴대폰과 아이패드 외에는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던 탓에, 그저 새까만 어둠으로 아직 낮을 맞이하기엔 이른 시간이란 것만 예상할 뿐이었다. 한 번 뜬 눈은 쉽게 감기지 않았다. 아직 한창인 어둠에서 조금이라도 더 수면을 취하면 좋겠지만, 한 번 눈을 뜨면 다시 잠들기 쉽지 않았다. 나는 얼마의 시간 동안 그저 짙게 깔린 어둠에 더 검어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적막한 가운데, 때때로 집을 에워싼 세상의 소리가 새벽을 뚫고 조금씩 내 방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그러다 문득, 한동안 떠올리지 못했던 옛 기억이 아무것도 없는 천장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12월의 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 스무 살을 코앞에 둔 열아홉 12월의 겨울에, 그것도 늦은 새벽에 나는 길가를 정처 없이 헤매고 있었다. 그곳은 일산에 위치한 백석역. 백석역을 시작으로 마두역과 그곳을 지나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호수 공원까지 추운 몸과 언 발에 조금이라도 열을 올리고 싶어 빠른 걸음으로 쉼 없이 걸었다. 왜 그랬던 걸까. 좀 더 기억을 면밀히 살피니 당시에 만났던 두 살 어린 친구 때문이었다. 열아홉 후반부터 종로 3가로 취업을 나갔던 나는 우연한 계기로 일산에 살던 두 살 어린 친구를 만났다. 서로에게는 중간 지점이었던 종로 3에서 우리는 일이 끝난 평일이나 쉬는 주말이면 여지없이 만나 작은 데이트를 즐겼다. 카페를 향했고, 공원을 걸었고 여러 음식점을 다녔다. 서로 미성년자였기에 성인만의 전유물이었던 연인과의 술잔과 밤, 수많은 목적지와 경험들은 알 수 없었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그 시절의 연애를 이어갔던 것 같다. 그러다 맞이한 것이 12월의 크리스마스였고, 일산의 라페스타에서 시간을 보내다 늦은 새벽에야 그 아이를 데려다주고 홀로 남았던 순간이 바로 내가 눈을 뜬 밤 천장에 그린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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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역에서 인천으로 갈 수 있는 3000번 버스가 뜨기 전까지 수 시간을 배회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 찜질방이나 피시방 어느 하나 들어가 있을 수 없었던 미성년자인 나는 처지를 아쉬워하며 한없이 걷는 것으로 그 시간을 감내했다.


사실, 그때가 떠오른 건 그 밤만이 아니었다. 나는 때때로 일찌감치 눈을 뜬 새벽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적막하게 흐르는 위치를 알 수 없는 시간을 매개체로 과거를 돌이켜 본다. 태양이 뜨는 것과 동시에 아침이 되는 순간 적막한 세상에 소음이 내려앉으면, 범람하는 소음과 삶의 속도를 가늠하고 받아치느라 정신이 아득해져 정작, 제 안에 흐르는 기억을 곱씹을 시간이 부족했기에 나는 대부분의 추억들을 어둠 속에서 떠올리곤 했다.


새벽 추위를 이겨내던 열아홉 12월의 밤도 그중 하나다. 그렇다면 그 새벽, 왜 하필 그날의 새벽을 떠올렸을까. 아마도 그리웠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시절을 함께 해준 어린 친구에 대한 연정이나 함께 구축한 그때의 기억들이 아닌, 나름대로 관계를 위해 희생했던 나의 무구한 행동이 그리워졌다.


세상에 태어나 땅을 밟으며 성장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경험을 쌓아갈수록 모든 것에는 고유의 티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티끌은 사람에게 서서히 옮겨붙어 대상을 점차 먹색으로 물들이기에, 어린 친구들일수록 더 무구하고 순수하며 태초적인 행복에 더 기뻐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티끌이 덜 묻을수록 세상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제 눈에 투영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면을 까뒤집으며 매달리는 사랑에서조차 자신도 모르게 먹색으로 물든 언행과 품격으로 무언갈 원하고 계산하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던 지난 호기로움은 계산할 것 투성이 된 현재의 나에게는 결핍돼버린 '한때 있었던' 가치에 불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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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하고 호기로웠던 마음은 겨울의 추위가 가장 짙게 가라앉던 12월의 새벽을 묵묵히 거닐 수 있는 애정과 용기를 점철했으나, 지금 나에게 남은 건 그저 다음 날을 위한 오늘의 소극적인 태도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관계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뿐이다.


가끔씩 늦은 새벽에 눈을 뜨는 나를 돌이키며 심증뿐인 가설 하나를 보탠다. 이기주 작가의 책 '글의 품격'초반부의 한 문단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이것은 나의 가설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린 한때 소중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면, 그 사람이 곁을 떠나는 순간 마지막으로 건네준 눈빛을 생각하며 눈물을 쏟아내고, 안 쓰던 일기를 쓰거나 책 귀퉁이에 낙서를 끼적이는 게 아닐까. 그렇게라도 그리움을 토해내야 하기에, 그래야 견딜 수 있기에···."


나는 이 말을 빗대어, 나 역시 견디기 위해 때때로 어둠에서 일찍 눈을 뜨는지도 모른다고 감히 짐작한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약해지고 주름이 늘어가는 아쉬움과 점점 더 무르익어가는 미래의 나에 대한 불안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어린 친구들보다 더 많은 티끌을 몸에 묻힐 수밖에 없는 한탄 때문에 새벽에 눈을 떠 그리움을 그리는 게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그리움이라 말한 것들의 상당수가 사랑했던, 좋아했던, 아쉬움을 깊게 담았던 인연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인연들에는 내가 있었고, 사실은 그 인연들과 함께 했던 무구한 나의 모습들이 그리움의 시발점이었다는걸. 지금은 취할 수 없는 나의 모든 순수함이 그 시절에 머물러 있기에 새벽이면 어둠 속에서 그때를 그리는 것이다.


이 그리움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나를 지키기 위한 대처가 아닐지. 한없이 회한하며 사는 나를 위한.


깊이, 깊이 바라본다.

빈도가 잦아지는 그리움이 언젠간 현실을 바꿀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묻은 티끌을 털어내고 많은 인연과 사람을. 사랑에, 무구한 사랑을 베풀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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