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이네"
"기적.. 별거 아니네"
이름 아침 빵집 문을 열며, 작은 입간판을 가게 앞에 두고 다시 가게로 들어가는 미수의 뒤를 따라 교복 차림의 현우가 들어온다.
"두부 주세요"
그는 뜬금없이 두부를 찾았다. 빵집에서 두부라니, 때는 1990년대다. 웰빙 열풍은 고사하고 빵의 종류도 많지 않던 시기에 빵집에 두부로 만든 무언가가 있을 리 만무했다. 당연히 없는 품목에 미수는 황당한 얼굴로 콩으로 만든 것은 두유밖에 없다며 그걸로는 안되냐고 되물었다.
"상관없어"
현우는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두부와 비슷한 역할을 해줄 무언가를 입에 넣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냉장고를 열어 제품을 확인하던 미수의 얼굴은 또 다른 모양의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두유가 다 떨어지고 우유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다. 미수는 우유밖에 없다며 필요하다면 저 위로 올라가면 있을 슈퍼마켓에 가보라고 말한다. 그 말에 현우는 곧바로 뒤돌았고 나가기 위해 가게 문에 다가선 순간,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음악 앨범'이라는 프로그램의 새로운 DJ 유열의 인사였다. 현우는 안도와 감격이 미묘하게 섞인 얼굴로 입술을 살짝 벌리며 기적이란 단어를 읊조렸다. 이어 미수는 기적을 별거 아니라고 화답했다.
그날은 가수 유열이 라디오를 처음 진행하던 1994년 10월 1일의 아침. 둘의 인연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자신을 포함한 친구들의 실수로 한 친구가 죽게 되고, 그로 인해 소년원에서 복역을 해야 했던 현우가 출소한 아침이 바로 미수의 빵집에서 두부를 찾던 순간이었다. 소위 '감방'에서 출소한 사람들이 다시 감방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선 "출소 직후 두부를 먹어야 한다"라는 미신을 현우도 행하려고 한 것이다. 뜻밖에도 그 미신은 둘의 만남을 위한 작은 핑계에 그쳤지만. 현우는 그날을 계기로 미수의 빵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출소한 이후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없던 그는 학교를 다니며 글쓰기의 꿈을 키우던 미수와 달리 일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가을이 맺어준 둘의 인연은 겨울을 맞이하고 곧 크리스마스에 당도한다. 그 사이 둘은 서서히 마음의 방향을 서로에게 틀며 교차하려 하고 있었다. 애정이 싹을 트려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 하나, 평탄하고 조용히 하루하루를 채워가던 현우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현우와 함께 실수를 범했던 친구들이 잠적한 현우를 발견한 것이다. 마지못해 현우는 빵집에서 돈 몇 푼을 가불해 오토바이를 타고 온 친구 무리에 섞여 자리를 떴다.
"나쁜 친구들은 아니에요.." 라는 말을 남긴 채.
그 말을 끝으로 멀리 살아지는 현우를 보며 미수는 말한다.
"다신 안 올 것 같지..?"
말은 현실이 되어 우려한 대로 현우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벌어진 싸움에, 또다시 소년원으로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한다. 미수와 현우의 애정은 한순간에 길을 잃고, 둘은 첫 번째 인연을 허무하게 놓치고 만다.
영화는 이후에도 몇 번의 엇갈림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감당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숱한 엇갈림을 대수롭지 않게 뿌리며, 우연이라는 간편한 장치를 통해 거둬들이기를 반복한다. 기적과 우연이라는 익숙하지만 쉽지 않은 단어를 급급해 사용한다기보다는, 단어가 가진 의미에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려는 듯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의연하게 극을 이끌어나갔다.
영화를 다 본 직후 극장을 나설 때 내가 느낀 영화의 첫인상은 "적당한 영상미와 함께 예쁜 두 남녀의 연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라는 것이었다. 이만하면 마음 어딘가를 뜨끈하게 데우며 며칠을 곱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못내 불편하고 아쉬운 마음이 봇물 터지듯 내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영화에 전반적으로 묻어있는 엇갈림이라는 찢어짐과 우연이라는 연결의 단어 두 개가 기적이라는 변명으로 무자비하게 던져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힘들게 제작된 만큼 좋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의 기준을 내 마음대로 세워 왈가왈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유열의 음악앨범>이 벌이는 언행이 무겁고 고결한 단어에 가볍게 접근함으로써 관객에게 희망이 근접해 있음을 알리려 하는 의도는 좋았으나, 결말은 무성의한 태도로 의미를 퇴색시켜 우리에게 무례를 저질렀음을 느꼈다.
과거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현시대를 사는 청춘의 한결같은 고민과 그들의 사랑을 다루려 했다면, 영화의 본질이 픽션에 있다 해도 현실성을 놓쳐서는 안되었다. 현실의 우리들을 투영시켜 극을 짰다면 이는 더욱 예외 없이 영화가 물어야 하는 책임이다. 그러나 영화는 우리의 현실을 가져가 관심을 유도하는 것으로 소모하고, 가뭄의 단비처럼 귀한 엇갈림과 그것을 해소하는 우연을 남용한다.
현실의 사연을 다룬다며 청춘에게 멋대로 이야기와 응원을 말한다 하기에 귀를 기울였더니, 우연과 기적을 거리낌 없이 내뱉으며 우리의 고단한 삶의 맥을 풀어버린 꼴이다. 현실은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우연과 기적을 쉽게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바라다가도 끝내 현실에 닥친 진실을 마주하며 어떤 청춘은 평생을 타협하고, 어떤 청춘은 다시 한번 더 발악한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조심스러운 고민과 아픔을 위로한다며 이야기로 그리더니,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기적을 별것 아니라는 듯 뱉고 합리화하기 급급했다.
우연과 기적은 살면서 우리가 가장 바라는 간절함이다. 그만큼 쉽게 내게 오지 않는 것이기에, 꿈을 꾸듯 한 번씩 바라다 이내 접는 아쉬움이 짙은 단어다. 영화는 영화로 둔 채 잠깐의 기억으로 잊어도 되는 것이었으나, 그 큰 아쉬움을 알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해 이 글에 한숨을 뱉는다.
긴 시간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써지고 그려졌을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숱한 사람들이 영화와 음악을 통해 삶에 위안을 얻고 다시 일어설 힘을 내는 만큼 조금은 신중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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