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을 응시하며 차분한 걸음을 내딛는 무리가 있다. 시선이 정확히 땅과 하늘의 중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아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은 관심 밖인 것 같다. 일정한 속도로 내딛는 걸음에는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단호함이 서리처럼 내려앉아 있다. 그들은 운명을 조율하는 자. 혹은 계시받은 운명을 지니고 살아가는 몽매한 생명에게 자유의지를 가장한 강제를 펼치는 존재들이다.
인간에게 붙어 흐름을 의도하는 그들은 운명을 절대적인 명령으로써 인간에게 심으며 인간의 모든 행동을 통제한다.
현실에서 끝없이 논쟁을 벌이는 운명론과 결정론, 자유의지를 과감히 소재로 삼은 2011년 개봉작 영화 <컨트롤러>의 이야기다. 일률적으로 잿빛의 정장과 페도라를 갖춘 그들은 각자 인간을 배정받아 상부에서 내려오는 해당 인간의 운명에 관여한다. 여기서 관여란 그들이 임의적으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 해당 인간이 부여받은 운명의 결말까지 자연스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지침서에 따라 계획하에 모든 인과를 조작하는 것이다.
배정받은 해당 인간의 지침서에 오늘 "새롭게 스카우트된 회사로 출근하던 중 버스에서 만난 여자에게 커피를 쏟는다"라고 기재되어 있다면, 능력을 발휘해 자연스러운 인과를 발생시킨다. 필요에 따라선 설명되지 않는 힘을 써 기억을 조작 혹은 시공간을 뒤틀기도 한다. 단,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는 없다.
영화의 주인공 '데이빗'도 그들의 조작을 자각하지 못한 채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운명의 순리를 따르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정치계에 입문할 수 있었으나 모종의 사건으로 선거에서 패하지만, 장차 정치계에 이름을 올리며 큰 역할을 해낼 운명이었던 그는 일명 '조정자'들의 의도대로 현재는 조금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엘리스'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데이빗이 선거에서 패한 직후 암담한 표정을 지으며 거울 앞에서 선거 결과에 대한 연설을 연습하던 중 등장한다. 엿들을 생각이 없었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데이빗이 서있던 세면대에 걸터앉으며 사과와 위로, 약간의 사적인 이야기를 가미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어둑한 조명 아래 처음 마주친 그들은 다소 가까운 거리에서 묘한 공기의 흐름을 감지한다. 어디선가 달큰하게 졸인 설탕 향이 코끝에 맴돌며 서로의 목소리가 서서히 아득해져 감을 느꼈다. 그리고 정적.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 동시에 키스를 나눴다. 마치 이 또한 조정자들이 의도한 운명의 일부인 것처럼 몽환적인 한 순간을 나눴다. 데이빗의 친구가 나타나며 분위기를 깨기 전까지.
둘은 연락처가 아닌 아쉬움만 남긴 채 헤어지고 만다.
이 만남도 데이빗에게 내려진 운명의 일부였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엘리스는 데이빗의 운명에 예상치 못한 변수였던 걸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영화가 후반부에 달했을 때 나타난다. 답은 자유의지를 말했지만, 결국 운명론에 의한 결말이었다. 엘리스는 변수이며 변수가 아닌 존재였다. 영화는 결말에 다다라서야 조정자의 입을 통해 하나의 사실을 말했고, 그것은 데이빗의 운명이 두 번 쓰였다는 것이었다. 데이빗에게 처음 내려진 운명은 엘리스와의 영원한 사랑이었다. 둘은 운명 안에 넓게 포진해 있는 인연의 끈으로 강하게 묶인 채 태어났지만, 운명을 집필하는 자는 데이빗이 인간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임을 판단해, 기존의 운명을 번복하여 엘리스와 함께하지 않는 것으로 재 집필한 것이다. 그로써 새롭게 쓰인 운명은 "엘리스와 함께 하지 않아야만 정치계의 최고 위치에 오를 수 있다"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최초에 얽힌 운명 때문이었을까? 한번 접힌 종이의 자국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선이 남은 두 사람의 운명은 새로 쓰인 운명 위에서 끊임없이 교차했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던 접힌 자국에는 그늘이 졌고, 운명이란 더위에 쫓기던 두 사람은 끝없이 그 자리를 찾아 나섰다. 서로에 대한 사랑은 조금도 희석되지 않은 채로.
결국, 두 사람의 올곧은 의지는 집필자가 쓴 운명을 거스르며 새로운 운명을 맞이한다. 영원한 사랑을 부여받는다.
영화의 결말은 두 사람의 자유의지로 운명을 거스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국은 최초에 쓰인 운명의 자국이 지워지지 않아 엮이던 두 사람이 덧씌워진 운명을 벗고 원래의 운명대로 돌아갔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또한 계시받은 운명을 떨쳐 스스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세상의 운명의 존재를 수긍하며, 그저 운명을 새롭게 부여받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가 보여준 인간은 자유의지를 말하지만 운명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존재였다.
영화는 세상만사가 필연적 법칙에 따라 예정된 수순으로 일어난다고 믿는 운명론을 이야기하면서도 데이빗과 엘리스의 사연을 통해 자유 의지를 표방했지만, 사실은 운명론과 비슷한 결정론을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행위를 포함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이나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인과관계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는 결정론. 인간이 생각하는 의지적 행위 모두를 자연적인 인과관계로 돌림으로써 논리적인 이유로 운명을 설명하는 결정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초에 쓰인 운명으로 돌아간 것에 지나지 않은 데이빗과 엘리스의 진실에 결국, 운명이란 두 글자를 등지고 살아가는 것은 변함없다는 영화의 결말에서 자유 의지는 곧 사라지고 말았다.
영화를 본 뒤에 찾아온 허망함은 운명이란 두 글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참으로 씁쓸하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씁쓸할 것도 없다. 현실은 운명과 자유의지를 두고 끝없이 논쟁을 벌이지만,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개 상상일 뿐이다. 죽음 뒤에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죽은 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영영 끝나지 않을 공방이다. 다만, 영화라는 인간의 권능으로 발현된 세상에서 자유 의지마저 운명과 얽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가설을 뱉었다는 것에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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