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의 대화에서 나를 긍정적으로 비칠 수 있는 방법으로, 관계의 유효기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눈을 보고 말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화술이 뛰어난 덕에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과 하고 싶은 말을 캐치해 나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관계를 이룩하기에 무리가 없겠지만 방법은 또 있다. 화술이 부족해 상대와의 대화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 걸음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눈을 마주치고, 상대의 음성과 억양에 조용히 기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맞춘다면, 화술이 해내는 경지 아니 그 이상을 노릴 수 있다.
그만큼 대화에 있어 아니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 눈을 마주친다는 건 많은 것을 해내게 한다.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라는 뜻의 '백문이 불여일견'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으면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
"상대의 말을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의 눈길이 더 많은 것을 알게 한다"
누군가의 눈을 오랫동안 응시한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의 눈빛에 어떤 말도 가미하지 않은 채, 눈빛으로 대응한 적이 있었던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관계에서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대화가 결여된 공기의 흐름을 온전히 감당하기에 나는 산만하고 어색하기만 하다. 그런 상황을 생각만 해도 피부의 겉이 오돌토돌 올라올 만큼 낯간지럽고 부끄러울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언젠간 내가 지닌 모든 관계에 속한 인물들 중 적어도 가슴에 품고 사는 몇몇과는 눈빛을 맞대고 싶다. 진심과 속내는 눈빛과 눈빛의 교차점에서 비로소 윤곽을 드러내니까.
'아이콘택트'라 불리는 TV 프로그램은 불현듯 이런 다짐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새로 쌓는 관계보다는 지니고 있던 관계에 대한 다짐에 더 가깝다.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본 클립 영상이었기에 프로그램의 취지와 운영방식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하건대 아이콘택트라는 프로그램은 일반인과 연예인을 구별하지 않고, 오래된 관계 혹은 어떠한 사연으로 결여된 인연의 끈을 각각 부여잡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이어 붙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프로그램은 두 명의 인물을 움직이는 작은 벽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누가 있는지 비밀로 한 채 자리에 앉히는 걸로 시작한다. 곧 약간의 정적이 주어지면, 두 사람은 지난 인연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벽 뒤의 인물을 예상한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끝나고 벽이 서서히 위로 올라가며 그들은 각자 건너편의 인물의 상체와 목, 얼굴 순으로 형체를 그리며 짐작을 확신으로 바꾼다.
건너편에는 오늘 아침까지 함께 있었던 가족과 헤어진 연인과 오해 속에 끊겨버린 먼지 낀 인연이 자리해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여러 핑계로 피했던 서로의 눈을 조용히 응시한다. 하고 싶은 말과 했어야만 했던 말들을 입 근처에 달아 둔 채 달싹거리는 입술을 겨우 깨물며, 조용히 상대의 눈빛에 제 눈빛을 포갠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벽은 본래의 위치로 서서히 내려가고, 두 사람의 눈에는 조용히 눈물이 차오르며 프로그램은 제 역할을 마친다.
관계라는 이름으로 얽혀있는 두 사람의 눈빛이 공중에서 부딪히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나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에 가슴이 쓸려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긴 대화보다 눈빛에 더 많은 것이, 그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그들을 지켜보는 내게도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나에게 까지 전해진 이유는 아마도 무언 위에 부딪히는 눈빛에 나의 상상이 베어 들었기 때문이고, 입이 뱉어낼 수 있는 말의 허용량을 넘어서는 수많은 이야기를 눈에서 눈으로 주고받는 그들의 의식에 나까지 동요되었기 때문일것이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에 눈빛이 수 십 개의 감정과 수천의 단어를 실어나를 수 있다. 그것을 모르는 우리는 한 평생 입으로 뱉는 말의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이 또한 자각하지 못해 대부분의 관계에서 오해와 아픔을 풀지 못하고 삼키거나, 무시하거나, 참는다. 당연히 관계는 점점 곪아가지만 애써 그 위에 천을 덮으며 묵인한다. 그러니 언젠간 꼭 눈빛을 맞대야 할 것이다.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수십 수 만의 감정과 단어를 건네며 곪은 피부에 공기를 쐬어주어여만 우리의 관계는 죽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진정 우리가 사랑을 말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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