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묶여 봄꽃과 함께 피던 딸기는 이제 '겨울딸기'라는 이름을 달고 연말이 되면 진한 선홍빛을 발하며 시장에 등장한다.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봄이라는 계절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딸기가 시대의 흐름에 힘을 얻어 봄을 나와 겨울에 독립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딸기는 또 다른 계절에도 홀로서기를 하려 한다. 봄에 귀속되었던 딸기가 겨울에 한편을 내준 것에 이어 가을에도 또 한편을 내주려 한다. '겨울딸기'의 모습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뭐, 이는 딸기만이 아니라 수많은 과일의 공통적인 흐름이지만.
이는 농촌진흥청의 개발 품종 중 하나인 <고슬>의 이야기다. 새로이 만들어진 고슬 딸기가 작년 강원도 화천에서 재배를 성공한 것에 이어 올 추석 시장에 처음 선보여진다는 소식이다. 사실, 면밀히 따지자면 <무하> <복하> <장하> 등의 품종으로 무장한 여름딸기 진영도 이미 존재하고 있어, 가격 차이가 클 뿐 딸기는 이미 사계절 내내 만날 수 있는 과수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가을 딸기라고 한들 소비자에게 큰 반향을 불러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가을의 시기와 제대로 맞물리는 신품종의 등장일 뿐, 크게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새로이 태어나는 모든 것은 필히 주목받아야 하기에, 그것이 태어난 이에 대한 축복과 응원이기에 이 글에 고슬의 등장을 기쁜 마음으로 새긴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고슬 딸기의 수확기는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로 기간이 길고 겨울에도 40g 이상의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어, 가을이 지난 후에도 겨울의 설향과 죽향, 장희, 육보 등과 함께 한 계절을 보내고도 봄까지 거뜬히 날 힘을 가지고 있다. 꽃대당 꽃수가 적어 작업 난이도도 타 품종과 비교해 30%가량 수월하니, 시장에서 금세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또한 9월부터 열매를 맺는 고슬은 달을 거듭할수록 크기와 함께 당도도 증가해, 11월쯤이면 그 크기와 당도가 정점을 찍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9월보다 10월이, 11월의 맛이 기대되는 품종이다. 신품종인 관계로 당장은 일부 지역에서만 구입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추석이 지난 뒤에는 어느 정도 물량을 수확할 수 있어 9월 하순부터는 전국적으로 유통을 시작해 비교적 쉽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고슬 딸기의 등장으로 이제 딸기를 일 년 과일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딸기를 기다리며 겪던 조바심과 기다림은 과거의 산물로 잊히고, 여유만 된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진척에 놓인 여유가 되었다. 시대가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가는 것 같다. 짊어지고 있던 여러 불편함과 고뇌, 시련 같은 것들이 하나 둘 스스로 타락하며 시대의 어깨를 가볍게 하고, 시간을 하나둘 거듭할수록 시대는 계단에 올라서는 속도를 가속화한다.
모든 것이 좋은 흐름과 현상을 보이며 흘러가니 불만도 질책도 있을 수 없지만, 결여된 작은 미학이 아쉬운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기다림 끝에 늘 따라오던 기쁨과 안도, 행복 같은 것들의 빈자리가 조금은 쓸쓸하다. 빠름과 편의를 뒤따르는 기쁨과 안도, 행복과 결을 달리하는 그것들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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