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명절 연휴를 시작으로 약 한 달. 코로나 이슈는 잠잠해질 기색은 커녕 최근 며칠간 확진자를 수 백 명으로 급증시킬 만큼 기세가 매섭다. 뉴스는 온통 코로나 소식으로 가득하고, 한탕 장사를 노리는 간사한 장사치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매점매석과 어처구니없는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를 농락한다. 그럼에도 나를 가족을 타인을 위해서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을 쓰게 삼키며 마스크를 구매해야 하는 사람들의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리에는 온통 마스크 쓴 사람이 천지고, 확진자 수가 집중되어 있는 지역의 경제는 이미 피해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붐벼야 할 곳은 한산해진 지 오래고, 마트는 식량을 비축하기 위한 사람들로 붐빈다. 이제 재난이라 해야 할 상황. 웃음도 안심도 함부로 할 수 없다.
현재 나의 의식이 닿는 장황의 기억 속에서 이처럼 전염병으로 전 국민이 불안과 피해에 신음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가? 이번 사태만큼 피부로 느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떠밀리듯 나온 폭풍우 치는 바다로의 출항이 두렵기만 하다. 지금 이 상황은 종국에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동시에, 이런 와중에 출간된 한 권의 책은 대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일까? 불안에 떠는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이는, 이기주 작가의 신간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의 이야기다.
나는 작가의 책이 출간됐다는 소식에 의아심을 지우지 못한 채 책을 주문했다. 이번 책의 콘셉트인 '앤솔로지'가 익숙하지 않기도 했고 인터넷을 통해 책을 구매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서점에서 직접 책을 만지며 구매하는 사람이 주류일 것이라 생각한 만큼 현재의 상황에서 책을 출간한다는 건 판매량에 지장이 되면 되었지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문한 책이 다음 날 도착하고, 첫 번째 제목인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끔 한다."가 품은 몇 개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약간의 환기감과 위로, 보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지난 책들보다 조금 더 반갑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이 등장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이 바로 적절한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이 현재의 고난스러운 항해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지금은 쉬지 않고 휘몰아치는 폭풍과 파도 속에서 잠깐이라도 불안 앞에 눈을 감고 음악에 잠시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휴식이 필요한 때다. 한 권의 책은 이를 돕기에 충분하고 더불어 책이 새롭게 그려진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 어린 시절 좋아하던 동화만 듣고 싶던 나의 고집을 따라 주시던 어머니 사랑처럼, 또 한 번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두 말할 것 없다.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는 작가의 지난 책 속에 존재하던 수많은 미문美文. 몇 번을 되새겨도 부족하지 않은 말들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동시에 많은 여백을 갖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가 다시 전하는 이야기를 여백 속에서 충분히 음미하라는 듯.
작가의 앤솔로지는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한 때 소중했던 것들> <글의 품격>에 이르기까지 잊을 수 없던 이야기들의 심장만을 움켜쥐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 심장을 움켜쥐고 있던 육체를 궁금하게 만들고 종국에 또다시 지난 책들을 펼쳐보게 하는 묘수를 담은 책이다. 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조용히 하나를 깨달았다.
본디 사람은 그리움과 귀소본능으로 살아간다. 새로운 경험과 장소, 사랑에서 희열과 성취감, 보람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삶을 굴러가게 끔 하는 동력 혹은 출발을 위한 방아쇠일 뿐, 이를 통해 움직이는 삶은 그리운 것과 그리운 곳을 향해 나아간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했던 것에서 평안과 위로를 느끼는 것이 바로 우리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는 이를 살짝 비틀어 또 다른 사실을 말한다. 진정 새로운 경험과 장소, 사랑에서 느끼는 희열과 성취감, 보람이 삶을 굴러가게끔 하는 동력 혹은 출발을 위한 방아쇠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여기에 현재가 과거가 되는 진리를 투영시키면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그 또한 결국 과거가 되어 또 다른 이름의 그리움이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난날 신간이라며 선보여진 과거의 새로웠던 책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 등에 수록되어 있던 대다수의 문장들은 하나같이 몇 번씩 곱씹고 되뇌게 하는 힘이 있었다. 자연스레 그것은 현재의 나에게 있어 한 번쯤 다시 읽고 다시 곱씹고 싶은 문장이 되었고 마땅히 그리운 것으로 분류해야 할 경험이 되었다.
이는 과거에 새로웠던 것이 명백히 그리움으로 변모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수 없이 곱씹고 되뇌었던 문장들을 담은 새롭지 않은 새로운 책. 이 책은 그리워진 문장들로 가득하다. 작가의 지난 책들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여지없이 충분한 위로가 될 그리움일 것이며, 지난 책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훗날 그리움이 될 책일 것이다.
siview market / siview instagram
aq137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