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물고 온 대저 토마토

전성배 X 황수길 농부

by 전성배

계절이 왔음을 가늠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절기를 통해 은연중에 인식하는 방법과 어제와 다른 기온을 통해 계절이 왔음을 확신하는 방법. 이외에도 계절이 가진 각각의 거시적 특징을 이용해 우리는 완전한 계절의 도착을 인지한다. 그리고 먹거리에 붙여진 '제철'이란 이름은 아마도 수많은 거시적 특징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대저 토마토는 가장 좋은 예다. 그 별칭으로 '봄의 전령'이라는 말을 쓸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누군가는 벚꽃과 개나리 같은 꽃의 개화가 봄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좋은 예라고 할 테지만, 오늘은 우리 안에 들어와 피와 살이 되는 작물, 그중에서 대저 토마토의 속삭임에 집중하기로 하자.


봄의 도착과 끝을 귀띔하다.


9월. 여름 날씨가 누그러져 서로 다른 사람들의 입이 초가을이네 아니네를 논하는 사이, 땅에는 하나 둘 토마토씨가 뿌려진다. 하우스 재배를 통해 연중 재배가 가능한 토마토지만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부산 강서구 대저동의 토마토는 더위가 꺾이는 9월에 심어진다. 봄의 전령의 임무를 부여받은 대저동 토마토의 잉태는 바로 이때다.


9월에 파종된 씨를 10월쯤 아주심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가꾸기 시작하면 이듬해 2월 중순이나 말경에 수확이 가능한 단계에 이른다. 빠르면 2월 초에도 일부 수확이 가능하기는 하나 그것은 극히 일부일 뿐. 2월 말은 돼야 본격적으로 수확의 봇물이 터진다고 볼 수 있다. 그때는 입춘을 지나 추위가 누그러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대저 토마토가 봄을 물고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타이밍. 그리고 운명처럼 봄이 서서히 여름의 날씨에 근접하는 시기인 4월 중순이나 말, 늦어도 5월 초에 맞춰 토마토의 수확도 함께 끝나게 된다.

전성배 / 시뷰

부산 강서구 대저동의 토마토 자리에는 배추가 있었다.


과거 농사를 짓기에는 지리적으로 열악했던 대저동은 토착민들의 노력으로 비로소 농지로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땅이 되었다는 건 지난 글을 통해 알렸던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낙동강 하류에 형성된 삼각주라는 특징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닌 토질을 비옥하게 하는데 일조하는 이점이 되었고, 강수량이 풍부하고 기온의 연교차가 적은 덕에 열악했던 과거를 넘어 현재는 농업에 매우 적합한 지리적 조건을 갖췄다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이미 1960년대에 증명된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배'로 먼저 지역의 유명세를 떨쳤지만 동시에 쌀을 비롯한 오이와 호박, 시금치 등의 채소류도 상당수 재배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대저동이 지금의 대저 토마토의 명소가 된 것은 농업이 점점 발달함에 따라 1970년대 이후에 봄배추와 토마토 등의 시설 농업이 들어서던 때가 그 효시인데, 엄밀히 따지면 현재의 토마토 이전에 봄배추가 먼저 대저동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1970년대 후반까지 봄배추 농사는 대저동의 중심이었을 만큼 그 규모나 거래면에서 호황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1970년에 개통한 경부고속도로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결과인데, 배추의 수요가 가장 높았던 서울로 가는 길이 더욱 편리해지니 당연시자였다. 당시에 배추 농사를 짓던 농부님들의 말로는 그때만큼 농부의 수익이 높았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배추를 팔아 자식 교육과 생활, 집, 땅과 같은 경제적 문제를 모두 해소하고 또 배불릴만큼 가히 대단했다는 평가를 덧붙였다.


그럼 왜, 대저동은 그리 호황을 누리던 봄배추 농사를 접고 토마토 농사로 모습을 바꾼 것일까?

전성배 / 시뷰

대저동의 두 번째 호황, 대저 토마토


이는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배추의 수요 감소와 그에 따른 가격 하락 그리고 이를 대비한 듯한 대저동 땅에서 심어지는 토마토의 특출남이 한데 얽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봄배추 농사가 호황을 누리던 당시를 회상하는 몇몇의 농부님들은 봄배추 농사의 퇴락의 원인으로 수 십 년간 변동 없는 그 가격을 짚었다. 당시 배추 농사는 들어가는 비용 대비 수익이 매우 높았던 작물이었다. 비료와 비닐 값, 인건비 등 각종 부대 비용이 현재와 비교해 현저히 낮았던 과거에는 단순 계산했을 때, 한 해 배추 농사를 지으면 적어도 반 이상은 남길 만큼 수익이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인건비를 비롯한 각종 부대 비용이 상승하는데 반해, 배추 값은 계속해서 제자리걸음 수준이었으니 농부님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깊어만 갔다.


하지만 이 같은 이유가 작목 변경의 결정적 계기는 아니었다. 봄배추가 대부분의 대저 땅에서 재배될 당시에도 토마토 농사를 짓는 농민이 일부 존재했기에 토마토를 새로운 소득 작물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것이 새로운 변화를 불러오기 전까지. 처음에는 배추 농사의 수익률이 좋다 보니 토마토 농사를 짓는 농부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나 1970년에서 8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점차 토마토의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로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지 다각화가 이루어지면서 배추의 수요는 감소하고, 토마토 같은 웰빙식에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기에 대저동만의 특별한 토마토 맛은 이 같은 변화에 불을 지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이 시기에 토마토로 작목을 변경한 농부의 수가 상당하며 대부분 기대만큼의 수익을 일궈냈다고 한다.

전성배 / 시뷰

대저 토마토의 현재


2012년도에는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에 '부산 대저 토마토(Busan Daejeo Tomato)'라는 이름으로 '지리적 표시품'이 된 대저 토마토는 어디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부산 대저동의 고유 작물이 되었다. 이런 대저 토마토의 특별함과 그 인기는 최근 몇 년 사이 계속해서 하락세를 타고 있는 우리나라 1인당 토마토 소비량을 일정 부분 늦추고 있을 정도로 상당하다. 실제로 연 토마토 소비를 보았을 때, 대저 토마토의 철이라 할 수 있는 2~5월에 토마토 소비가 크게 상승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작물이다. 하지만 이렇듯 토마토 소비에 일조하는 만큼 부산, 아니 나라가 아껴도 부족할 대저 토마토는 지금 위기에 놓여있다.


우리나라의 토마토 소비를 견인하는 대저 토마토의 본고장. 부산 대저동 특히 주 산지인 대저2동을 중심으로 신도시인 '에코델타시티'가 들어서면서 해당 지역의 토마토 단지가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해당 지역 내에 지속적인 개발이 확정됨에 따라 언론에서는 올해부터 줄어들 재배 면적만 해도 전체 면적의 3분의 1 규모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일부 대중은 다른 곳에서 농사를 지으면 되지 않나 생각하겠지만, 기존에 다뤘던 대저 토마토 글에서도 전했듯 부산 강서구 대저동의 대저 토마토는 따로 품종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 해당 지역의 특성 때문에 탄생하게 된 작물이다. 평야 대부분이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 형성된 퇴적층으로 염분이 높고, 풍부한 미네랄을 품고 있어 이를 먹고 자라는 토마토의 맛이 평범할 리 없다. 이 같은 땅에서 자란 토마토는 자연히 그 과육 자체가 짭짤한 맛과 높은 당도를 갖게 되고, 동시에 과육 자체가 단단하게 여물며 선명한 초록 스팟을 갖게 된다. 여기에 균일한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한 평생을 노력한 농부의 노하우가 겹쳐져 진정한 대저 토마토가 완성되는 것이다.


가히, 땅과 농부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재개발로 대저동의 토마토 재배 면적이 줄어드니, 장소를 옮겨 토마토 농사를 지어라? 두 개의 힘이 동등하게 작용했을 때 완성되는 작물이 하나를 잃는데 과연 원래의 맛을 낼 수 있을까? 이 같은 대책은 종국에 대저 토마토라는 국내 유일의 작물을 잃게 할 수도 있다. 토마토 소비에 상당히 기여하는 작물인 만큼 크게는 국내 토마토 산업의 위기를 가져올 수 도 있다.


나는 기존 재배지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터를 잡아 다시 토마토 재배를 한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토마토의 품위를 얻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같은 강서구에 위치해 대저 토마토를 생산하는 대저동과 대저2동 중에서도 앞선 품질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곳은 대저2동이다. 이는 한 동 차이로도 품위의 차이가 나타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재배한다? 과연 기존과 같은 맛을 낼 수 있을지..

전성배 / 시뷰

농부의 대저토마토를 판매하다


대저 토마토를 판매하다 보면 많이 접하게 되는 문의는 "진짜 짭짤이 맞아요?"라는 질문이다. 대저 토마토는 그 맛을 내는 품종이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짭짤이라 불릴 만큼의 농도 짙은 짭짤한 맛을 농부와 땅이 어떤 조화를 부려 만들어 내냐에 달려 있다. 즉, 초록 스팟을 가진 대저동의 모든 토마토가 대저 짭짤이 토마토라고 불릴 수는 있지만, 짭짤한 맛과 그에 상응하는 단맛을 얼마만큼 보유하고 또 조화를 이루냐에 따라 그냥 '대저 토마토' 혹은 위에서 말한 '짭짤이' 이렇게 두 개의 이름으로 농부와 소비자는 나누어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는 위 주제의 마지막 단락의 의문의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저 토마토를 찾는 소비자는 명확하다. 그 맛에 매료되어 매년 철이 되면 기다렸던 마음의 크기를 기대로 변환하여 구매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그 가격이 일반 토마토에 비해 두 세배를 훌쩍 넘기는 것도 감수하면서 말이다. 당연히 기대를 충족하는 맛을 바랄 수밖에 없고 맛의 변화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한데, 주산지에서 태어나는 똑같은 대저 토마토더라도 미묘한 차이 때문에 소비자가 시시비비를 가리는 이 작물을 다른 곳에서 재배한다는 건 무리에 가깝다.

황수길 농부님

일부 터를 옮긴 대저 토마토의 맛이 전통을 살려 이후 대저 토마토의 미래를 평탄하게 할지, 혹은 터를 옮긴 대저 토마토가 결국 몰락해 일부 살아있는 전통 대저 토마토의 품귀 현상을 불러올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수년 뒤면 결과가 나올 테니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올해도 농부의 대저 토마토를 전한다. 여전히 대저 2동에서 고품질의 대저 짭짤이 토마토를 고수하며 묵묵히 농사를 짓고 또 다양한 판로를 고민하며 노력과 성장에 망설임 없는 황수길 농부님을 알리고, 그의 고집과 자부심이 녹아든 토마토를 독자와 소비자에게 전하기 위해 힘쓸 것이다.


올해도 맛있는 토마토를 최대한 많은 분들께 전할 수 있길 바란다.



"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영풍문고」


전성배 田性培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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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면》 : 전자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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