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톺아보며

by 전성배

#무이의 학문


시간이란 약의 효능 덕에 통증을 덜고 이내 상처까지 치유해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는 대다수의 사람과 달리 이 약의 효능을 제대로 누리지 못해 일생의 대부분을 상처의 후유증으로 휘청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마음의 연료까지 바닥나 더 이상 뜨거워지지 못하는 자.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세상이 흔히 말하는 '해바라기'라는 이름의 꽃이 된 존재라 생각한다. 어느 들판에 피어나 색 노란 잎을 만개하며 빛을 향해 서 있는 해바라기는 모두 그들이며, 잎이 바래져 고개를 숙이고 무너져 가는 녀석들은 그들의 잔재일 것이다.


어떤 이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사랑하기 위해 태어나 덕에 다른 것을 배울 수 없어 오롯이 어떤 이 한 명 만을 학습하는 사람. 일생을 '그'라 배워, 일생이 그를 향해 있어 죽어도 살아도 오직 '그'인 사람. 다른 곳을 보는 법을 알지 못하니 그를 보기밖에 더 할까.

전성배

#발아


이따금 "죽으라는 법은 없다"라고 말씀하시던 동네 어르신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당시에는 웃어넘겼지만 문득, 그 말이 제법 삶의 많은 부분을 관통하는 무게 있는 문장이라는 것을 느꼈다. 특히나 최근 누군가를 잃은 사람에게는 더욱 힘이 될 문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의 굴곡이 버거워 '죽겠다'는 푸념을 토해내는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버려지듯 무심히 던져진 씨가 생각지도 못하게 싹을 틔우고, 봄을 알리며 진하게 자신을 발산하던 개나리가 서서히 시드는 동안 푸른 잎이 개나리가 차지하던 부피만큼 새로이 돋아나고, 벚꽃도 예외 없이 개나리와 궤를 같이하는 것을 보며 알 수 있었다.


그래, 만물의 현상이 유구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수많은 깨달음과 진리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누군가를 잃은 사람에게 하나의 진실을 전한다.


사랑은 곧 내 안에 그 사람의 이름을 가진 씨앗 하나를 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것이 우리의 감정을 양분 삼아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어 이내 꽃을 피우는 동안, 우리의 사랑은 절정을 향해 나아가고 이내 꽃의 절경과 함께 절정을 맞이한다. 봄이 가진 꽃의 생과 무엇 하나 다를 게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그저 봄의 막바지. 낙화일 뿐이다. 이번에 떠나는 봄이 다음 해에 또 오듯, 이 마음에도 봄은 다시 찾아와 햇살을 드리우고 씨앗을 심을 것이다. 꽃을 잃은 마음은 죽는 것이 아니다. 다음 계절을 기다릴 뿐.

전성배

혼탁해진 삶을 갈무리할 시간, 전자 수필집 《삶의 이면》전성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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