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삶에도 제 나름의 정해진 속도가 있다고 믿었다. 삶이 삶을 등에 진 이들에게 규정한 속도. 그래서 이맘때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며, 어느 시기가 되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서 어떤 무언갈 해낸 사람이 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삶이 규정한 속도의 의의는 그런 것이므로. 특정 나이를 들었을 때 어렴풋이 그려지는 모습이 바로 삶이 규정하는 속도가 실존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야 시간이 상대적이듯, 삶이 말하는 규정 속도 또한 상대적인 방향성과 빠르기를 지녔다는 걸 깨닫는다. 목적과 삶에 임하는 자세를 뜻하는 '리듬'만 잃지 않는다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언젠간 이룰 것이므로. 언젠간 도달할 것이므로. 그저 그것이 조금 늦거나 혹은 특출 나게 빠른 것일 뿐, 언젠간 각자가 만족할 곳에 도달할 것이 분명하다.
혹자는 그저 제때 꽃을 피우지 못한 사람의 핑계라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의 깨달음은 스스로 느렸고, 실패했던 지난 걸음을 위로하기 위해 무의식 중에 꺼내 든 치졸한 묘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굴곡 많았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표정으로 잘 살아냈다고 말씀하시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조용히 확신한다. 시기와 질투, 자책, 비교로 느린 자신의 걸음을 한탄하기보단 살기 위해, 자식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할머니의 삶은 삶이 말하는 속도의 상대성을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속도가 가진 의의를 크게 상회하고 있었다.
어떠한 속도로 살아온 삶이었건 치열하게 살았다면, 그 삶이 행복의 척도이며 삶의 적당한 속도가 되는 것이었다.
혼탁해진 삶을 갈무리할 시간, 전자 수필집《삶의 이면》전성배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