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어지면 온 우주가 멸망한다.

유튜버 '밀라논나'의 입에서 뱉어진 문장에서 시작된 글

by 전성배

영화 '매트릭스'의 시대적 배경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전쟁 후를 다루고 있다. 그 세상에서 전쟁은 결국 인공지능이 승리하였고, 인간의 신체에 흐르는 미세 전류를 이용해 기계들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한다. 영화의 이름인 '매트릭스'는 영화상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가상현실의 이름이다. 인간의 신체가 미세 전류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생체 활동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인공 지능은 가상현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인간을 인공관에 가두어 뇌에 직접 그 가상현실을 신호함으로써 뇌 활동을 지속시키고 미세 전류를 생산해낸다. 이것이 가상현실 '매트릭스'의 실체다. 너무나 현실적인 가상 세계 속에서 인간들은 대부분 태어나 죽을 때까지 진실을 모른 채 살다 간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가상 세계를 자각해 현실 속 인공관에서 눈을 뜬 인간들이 나타났으니, 영화 '매트릭스'는 그들과 인공 지능 사이의 싸움을 다루고 있다.


내가 갑자기 매트릭스의 이야기를 꺼내 든 이유는 살면서 "이 세상은 가상현실이다"라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가 평평하다거나 사실 인류는 달에 가지 않았다와 같은 억지에 가까운 음모론과 달리, 저들이 말하는 가상현실은 설명하기 힘든 현상을 근거로 삼는다. 그중 하나가 빛의 정체를 알기 위해 실행된 17세기 물리학자 토마스 영(1773~1829)의 '이중 슬릿 실험'이다. 당시 토마스 영은 해당 실험을 통해 이중 슬릿을 통과한 빛이 간섭무늬(파동과 파동이 맞부딪히며 만드는 무늬)를 만드는 것을 보며 빛은 물질이 아닌 파동이라 말했다. 그러나 이후, 아인슈타인에 의해 빛이 물질일 수밖에 없는 증거인 '광전 효과'(빛의 입자성(물질) 때문에 임의의 금속에 빛을 가했을 때 금속으로부터 전자가 방출되는 현상)가 발견된다. 이때부터 빛은 물질이지만, 이중 슬릿 실험에서 만큼은 파동 형태를 보인다며 "빛은 물질이자 파동이다"라고 정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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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된 후에도 이중 슬릿 실험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리고 또다시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 목격되었다. 바로 빛이 아닌 입자(물질)인 '전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 일이다. 분명 이중 슬릿에 전자를 쏘았는데도 불구하고 빛처럼 반대편에 간섭무늬가 생긴 것이다. 실험을 진행한 과학자들은 설명하기 힘든 현상에 전자가 이중 슬릿을 지나기 직전을 관측했지만, 결과는 또 한 번의 충격을 안긴다.


전자가 파동의 형태로 반대편에 도달한 것이 아닌 이번에는 입자의 형태로 도달한 것이다. 이는 쉽게 말하자면 전자가 마치 의식을 갖은것처럼 관측하는 사람이 있냐 없냐에 따라 자신의 상태를 결정지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과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을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결론짓고,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는 다르다고 구분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99년 또 한 번의 이중 슬릿 실험이 진행된다. 앞서 관측을 하냐 안 하냐에 차이로 파동과 물질의 형태를 오가는 전자를 보며, "관측의 유무가 전자의 형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과학자들은 보다 큰 분자구조를 이용해 실험을 진행하기로 한다.


결과는? 전자와 마찬가지였다. 보다 큰 분자구조까지 물질임과 동시에 파동의 형태를 띠었다.


이말은 즉슨, 빛이나 전자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가 관측을 당하지 않는 동안에는 물질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대상이 설령 인간일지라도. (해당 내용은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이중 슬릿 실험'을 검색하면 보다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음. 더불어 여기서 관측되지 않는다는 가정은 무엇과도 서로 상호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같은 결과는 우주가 마치 게임처럼 최적화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을 제시하게 했다. 한 가지 예로 드넓은 오픈 필드를 가진 어드 벤처형 게임이 있다. 드넓은 대지 위에 자리 잡은 풀과 나무, 바람, 밝게 내려앉는 햇볕까지 세세하게 구현된 초고화질의 이 게임은 사실, 캐릭터의 시선에 닿는 화면까지만 연산하여 플레이어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일 뿐. 플레이어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연산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플레이어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구현할 경우 게임의 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해당 정보를 연산하기 위한 컴퓨터의 사양은 끝도 없이 높은 사양을 요구하게 되며, 불필요한 연산으로 인한 추가적인 에너지 소모가 발생한다. 그래서 게임 제작사는 파일의 용량을 줄이고 컴퓨터의 사양에 맞추기 위해 최적화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보이는 부분만 연산하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연산하지 않는다.


마치 이중 슬릿 실험에서 관측이 되냐 되지 않느냐로 자신의 상태를 결정짓던 전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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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보면 내가 이 같은 실험의 결과를 빙자해 세상이 가상현실이라 말하는 일부 음모론자들의 주장에 힘을 싣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미시 세계의 현상을 통해 중요한 하나를 깨달았기에 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나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관측의 유무 즉, 상호 작용에 의해 상태가 결정되는 빛과 물질을 보며 그만큼 관측자의 의미와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79년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 (Eugene Wigner)가 말한 "우주는 그 자신의 존재를 위해 의식을 가진 생명체를 필요로 한다"라는 이 한 줄의 문장을 빌어 이야기하고 싶다.


"작디작은 한낱 푸른 점에 살아가는 우리가
실은 우주를 그 자체를 유지시키는 존재였다."


지금까지 "너의 삶에서는 네가 가장 중요하다"라는 말을 설득하기 위해 뱉어졌던 수많은 설명들이 한 곳으로 귀결되려 한다. 때론 처연하기까지 했던 그 설명들에 점차, 한 명의 인간이 가진 존엄성과 가치가 바래지던 현실 속에 비로소 절대적인 증거와 힘이 생겼다.


한 영상에서 "내가 없어지면 온 우주가 멸망하는 거야"라고 말한 노년의 유튜버, 밀라논나의 말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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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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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田性培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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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이면》 : 전자 수필집 / 2020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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