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이라는 말이 참으로 묘하다. 때에 따라서는 명확한 형태를 갖추어 존재하니, 이때는 알아채기가 용이하다. 상흔이나 무언갈 고친 자국, 화마가 지나간 뒤 남은 잔재 같은 것들이 그렇다. 하지만 형체가 없는 흔적은 도통 알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러한 것이 진짜 존재하기는 할까 의심이 들 정도다. 어쩌면 삶의 잔여물을 쓸어 담으며 살게끔 나를 속이기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낸 말은 아닐까? 흔적이란 무조건 형태를 갖추고 있어야 설명되고 성립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정답은 '아니다'. 자각하지 못했지만 나는 형태가 있는 흔적보다 형태가 없는 흔적들 속에서 더 많이 허우적거리며 살았다. 내게는 삶과 관계, 거기서 파생된 감정과 기억이 특히 그러했다. 인간은 간직할 수 있는 기억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담지 못한 기억은 장소와 시간, 사물, 계절 등 나 이외의 것에 위탁하는 것으로 정해진 총량을 피하는 편법을 쓴다. 생각해보면 그 행위 자체가 '흔적'이라는 가치를 활용한다. 흔적이라는 자국에 기억을 담아 나 이외의 것에 맡긴다. 또 내가 누군가를 잊지 못해 뜬눈으로 지새우던 어린 시절의 밤도, 그녀가 내게 남긴 흔적이 원인이었다. 그녀가 머물었던 나의 방과 손댔던 물건들, 채 날아가지 못한 향기 등등 모든 게 흔적이라는 이름이 되어 방안을 배회하니 잠을 이루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그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알게 모르게 그녀는 수많은 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렇다면 다시 정정해야겠다. 흔적이란 형태를 갖은것보다 갖지 못한 것이 더 많다.
예는 또 있다. 이번에는 내가 남기는 흔적 중 하나의 이야기다. 지난밤 연인에게 집필했던 원고의 한 꼭지를 보여주었다. 윤문 과정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어, 연인에게도 의견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약 10분 동안 한 편의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렸다. 잠시 후 다 읽은 그녀가 뱉은 첫마디는 내 글이 맞냐는 물음이었다. 순간 흠칫했다. 사실 그 원고는 출판사 측에서 내게 의견을 구하기 위해 한 차례 윤문을 해서 넘긴 꼭지였다. 나는 우선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기 전에 출판사에서 편집하지 않은 같은 내용의 초고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간은 또다시 10분가량이 흘렀고 그녀가 말했다.
"이게 자기 글이네"
순간 놀랐다. 윤문한 원고와 초고를 비교했을 때, 골자와 분량 자체는 동일하게 흘러가며, 반복되던 문장이나 불필요한 내용 정도만 걸러진 것일 텐데 단 번에 알아보다니….
"왜 그렇게 느껴진 거야?"
"음.. 자기의 말투가 아닌 것 같았어. 나는 초고가 더 좋다고 느껴져. 내가 자기의 글에 익숙해져서 일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수정된 원고의 간결한 문장은 분명 군더더기 없이 전달되는 깔끔함과 편의성은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너무 덜어낸 나머지 밋밋하게 느껴졌어. 색깔도 없어진 느낌이었고. 자기는 분명 자기만의 색이 있거든. 자기가 문장에 붙이는 그 살들이 문장을 무겁게도 하지만, 동시에 문장에 힘을 실는다고 할까? 다 읽었을 때면 중요한 무언가를 한 번씩 느끼거든. 자기 글은 전부 그랬어. 작가마다 색이 진짜 있기는 한가 봐. 신기하네."
문체文體라는 말이 있다. 문장의 개성적 특색 혹은 글쓴이의 특성이 고스란히 문장에도 담긴 다는 뜻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의 실존도 무형의 흔적만큼이나 믿지 않았다. 차라리 그림이라고 한다면 작가마다 새기는 '선'과 넣는 '색채'가 천차만별이니 화체畫體는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필기체로 새기던 과거만 해도 문체文體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글이 타이핑으로 통해 쓰이는 만큼 문체란 건 사라진 줄 알았다. 글에 사용되는 미사여구는 거기서 거기다. 세상에 정립된 문법조차 한정되어 있어, 그것이 조합되는 경우의 수는 분명 한계가 있다. 거기에 다 같은 글씨체를 사용하기까지 하니, 문체는 더욱 찾기 힘든 것이 된 줄 알았다. 그런데 버젓이 문체가 살아있다고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숱하게 써온 글에 나의 흔적을 담았던 것 같다. 그 흔적을 보고 느꼈던 이들은 하나 같이 내가 쓴 글들에서 어떠한 의미와 느낌을 동시에 찾았다. 나의 연인뿐만 아니라 그녀의 동생도. 어느 작가님도. 나의 친우와 몇몇의 독자님들까지 나의 색을 찾아냈고 좋아해주었다.
우리는 역시 어떠한 행태로든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 그것이 손에 만져지건 만져지지 않건 반드시 우리가 스쳐간 곳에 내가 남는다. 이제는 글뿐만 아니라 모든 만남과 다녀간 곳에도 내가 남는 다는 걸 잊어서는 안되겠다. 설령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내가 남을 테니.
"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전성배 田性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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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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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이면》 : 전자 수필집 / 2020 .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