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本보기 / 이기주 작가의 문장

by 전성배

풍전등화와 같은 삶이라 의지하고 본보기로 삼을 곳을 찾는 건 우리의 본능이다. 무언갈 따르지 않으면, 본받을 무언가를 두지 않으면 흔들리는 이 삶을 지탱할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지대를 찾지 못한 삶은 주인을 불안하게 만든다. 모든 길이 잘못된 것 같고, 모든 길이 점멸로의 지름길인 것 같다. 여기서도 아이러니한 게 그 불안감은 필히 어둠으로 향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도 특정할 수 없는 게 미래이건만, 환하고 온화한 빛으로 향하는 희망은 도통 떠올리지 못한다. 무언갈 따르지 않으면 삶은 어둠이 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참 웃기면서도 서글픈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롤모델을 찾는다. 그리고 내게도 롤모델이 있다. 글을 쓰는 삶과 농산물을 전하는 삶에 각각 롤모델을 갖고 있다. 나는 이기주 작가를 좋아한다. 혹자는 그의 책과 글에 감정 과잉이라 말하며, 이러한 글이 그렇게나 많이 팔렸다는 것에 의심과 혹평을 늘어놓지만 상관없다. 내게는 가슴의 저 밑바닥까지 닿았던 글이다. 내게는 너무나 달콤한 문장이었고, 때론 씁쓸하고 적나라 해 재차 곱씹는 것을 포기한 문장이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단지 그 사람들의 가슴까지는 두드리지 못한 것일 뿐. 나는 그의 글이 좋다. 수십수백 만의 독자로서도 작은 작가의 입장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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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을 전하는 일에도 다소 귀여운 상호를 지닌 한 대표를 몰래 롤모델로 삼고 있다. 그는 그 흔한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나 옥션, 쿠팡, 11번가 같은 오픈 마켓에 일절 자신의 상품을 올려두지 않는다. 오직 자사의 홈페이지에 상품을 올리며, 해당 홈페이지는 오롯이 회원제로만 운영한다. 그가 전하는 농산물은 그가 허락한 회원들에게만 알음알음 판매된다. 그 흔한 리뷰도 없다. 덕분에 기존 오픈 마켓에 범람하는 상품평들 속에서 혼선을 빚는 소비자에게는 오롯이 상품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가 전하는 상품의 정보만을 보고 농부의 이야기만을 보며 소비자는 구매 유무를 결정한다. 그렇다고 상품이 이상이 있을 때 대처가 어설픈 것 또한 아니다. 노련하게 대처하니, 수 천명의 회원을 이끌며 여태껏 과일 장사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마치 진득한 유대로 똘똘 뭉친 모임의 장인 듯 농산물을 이야기한다. 그와 함께하는 소비자는 판매자와 소비자라는 관계를 넘어 친근한 이웃과 같다.


나는 이렇듯 두 사람을 롤모델로 삼았다. 하다 하다 그들을 닮으려 글을 쓰는 중에도 과일을 파는 중에도 이따금 그들의 자취를 복기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결과물은 그렇지 못했다. 내 글 어디에서도 이기주 작가와 같은 품위 있는 문장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 대표와 같은 노련한 대처를 잘하지도, 나와 함께하려는 소비자가 아닌 이웃도 여전히 만나지 못했다.


닮고자 했던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하나 같이 멀어지는 것 같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내 발전이 그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언젠가 만났던 두 사람 덕분이다. 한 사람은 자기 낭만에 빠져 글을 쓰는 작가였다. 타인의 글은 배제하고 오직 자신의 글만을 우위에 두는 교만한 사람이었다. 누구의 글이든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 베고 찢어내기 바빴다. 그 와중에 자신의 글은 후방에 두어 다가오는 모든 평가를 적대시했다.


나는 그를 닮지 않기 위해서 차라리 내 글을 탓하기로 했다. 좋지 않은 부분에만 눈을 두기로 하였고, 차라리 타인의 평가가 정답이라는 확신으로 글쓰기에 매달렸다. 어느샌가 자존감이 떨어진 나를 발견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러한 부정이 스스로 나의 글의 의심까지 품게 했지만, 종국에는 글의 품격을 높였다. 독자가 생겼고, 칭찬이 들렸다. 출간 제의를 받았고, 이미 원고가 마무리된 순항 궤도에 오른 상태다. 이러는 와중에도 나는 나의 글에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신하는 것으로 나의 글의 윤문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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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장사에서도 그러한 사람을 만났다. 자신의 입맛과 자신이 전하는 상품에 설명하기도 벅찬 믿음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소비자 불만의 대부분을 그들의 책임으로 돌렸다. "당신이 입맛이 잘못된 것이고, 당신의 부주의로 상품이 훼손된 것이니 책임은 온전히 당신에게 있다."는 말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그의 성미는 제 아무리 큰 자본력으로 싸운다 해도 득 보다 실이 더 많았다. 평가는 바닥을 치고, 현재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나는 그를 닮지 않기 위해 먼저 억양과 말투에 신경을 썼다. 모든 불만에 먼저 소비자의 마음을 살폈고, 불만의 책임 유무는 마음을 어루만진 뒤 천천히 따졌다. 후에 소비자에게 책임이 있다면 정중히 양해를, 내게 있다면 기꺼이 보상과 사과를 전했다. 덕분에 나는 적지만 단골이 생겼다.


닮지 않고자 하는 사람은 지치지도 않고 나의 뒤를 쫓는다. 잠시라도 머물면 나의 삶은 어느 순간 그들에게 발을 잡힐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따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 악착같이 따라 잡히지 않기 위해, 그들의 자취를 어떻게든 피하며 발악했다. 그것이 어느 틈엔가 나를 성장시켰다. 닮고자 했던 이들은 되려 멀어져 가는 순간에도 말이다.


지난 11월 18일 이기주 작가의 인스타 스토리에는 이러한 문장이 올라왔다.

사회생활에서 내게 가르침을 준 사람은 현명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릇된 언행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삶의 힌트는 대개 닮기 위함보다 닮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데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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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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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田性培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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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bae91 : 페이스북

《삶의이면》 : 전자 수필집 / 2020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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