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힘들거라 하셨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응원도 하셨지만
저희는 농부가 되겠습니다. 나무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요.
코로나로 들끓는 세상과 대비되는 맑음. 순순한 바람이 귤나무를 때리는 제주의 땅에서 김경호 농부는 감정의 격동을 느꼈다. 기쁨과 미안함, 안도와 의구심이라는 격동의 파고에서 그는 자식들을 응시했다. 아비인 자신이 땅과 살며 울고 웃는 모든 걸 보았던 아들과 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부를 선택한다는 것이 그는 기뻤지만, 의구심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는 농부로서 단 한 번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이따금 드리우는 폭풍 속의 햇볕을 희망 삼아 농부로 산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은 도통 그 변덕스러운 희망을 보기가 어려웠던 것이 이유였다. 그의 삶은 쌓고 무너지고를 반복하는 싸움? 아니 얄궂은 하늘이 주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 시작은 박정희 정권이 막바지였던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농업 정책의 일환으로 미래 농업인 육성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농업 고등학교 내에 자영농과를 설립하여 농업인을 꿈꾸는 학생들을 모집. 농업에 대한 이론과 현장 지식 등을 공격적으로 가르쳤다. 제주 본토박이었던 소년 김경호도 해당 학과의 첫 번째 입학생으로서 농업인의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82년. 그는 열아홉 살에 학교를 졸업한 뒤 곧장 농업에 뛰어들었다. 때는 이미 아버지께서 수 년째 귤농사를 짓던 중이었다.
"82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3년 동안 받은 농업 교육 덕분에 나름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론과 현장 실습에 대한 내공을 노력이라는 단어와 버무려 농업에 임한다면 큰 성과를 얻으리라 굳게 믿었지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이미 귤 농사를 짓고 계셨으니, 조건 또한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처음부터 귤농사가 꿈은 아니었습니다. 저만의 작물을 기르고 싶었죠. 그것이 무엇일지 고민과 탐구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당연히 두 손 놓고 고민한다는 것은 농부에게는 사치이니, 아버지의 농사를 도우며 손은 일상을, 머리는 미래를 고민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약 1~2년의 시간이 흐른 뒤 김경호 농부는 제주도에 일고 있는 파인과 바나나 재배 열풍에 주목했다. 당시 열대 과일은 농부들 사이에서 귤 이상의 소득을 가져다는 작물로 평가되던 중이었다. 청년 김경호 농부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결국, 열대 과일에서 자신의 길이 있다고 판단. 아버지의 귤이 아닌 자신만의 작물로 파인애플을 선택해 재배하기 시작했다.
"처음 파인 애플을 재배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운이 좋게도 수익이 났습니다. 아버지의 오랜 귤 농사와 비교해서는 미미했지만, 호기로웠던 과거의 제게 있어서는 큰 성과였고, 자신감이 붙기에는 충분했지요. 점차 성장해 나가 언젠가는 제주에서 파인으로 유명해지리라 목표도 잡았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갔습니다. 저의 첫 번째 실패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80년대 후반 정부에서는 바나나와 파인 애플, 키위 등의 농산물 수입을 개방했다. 그로 인해 기존에 비쌌던 열대 과일의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고, 피해는 대부분 제주도가 떠안아야 했다. 해당 품목들 모두가 제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입 과일을 기르던 기존의 농가가 순식간에 살길을 고민해야만 했다. 정부 측에서도 기존 농민의 피해를 고려, 작물 전환을 지원하는 등의 사업을 펼치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농민의 반발이 거셌다. 작물을 어디 옷 갈아입듯 바꾼다는 것이 쉬우랴. 대비를 하기도 힘들었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뒤늦게 작물 전환을 하려 해도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마음에 깊이 뿌리내려 크기만 키워갈 뿐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결국 많은 농부가 모험을 감수하며 작물을 전환했다. 살기 위해서. 이때 많은 농부가 귤을 선택했다. 지금의 제주 하면 감귤이라는 이미지는 아마도 이맘때가 효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도 이때 파인 애플 농사는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바나나는 당장에 파인처럼 극적인 피해는 면할 수 있어,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지요. 더불어 87년에 농민 후계자로 선정된 덕에 정부 지원을 받아 한우 사육도 겸할 수 있었습니다. 농장에서 나오는 거름을 한우를 육성하는 데 사용한다면 시너지가 좋으리라 판단하였죠. 하지만 그맘때 또다시 농업은 실패를 가져다주었습니다. 90년대 중반 무렵 쇠고기 파동이 일어난 것이죠. 당시 저는 파산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96년. 때는 광우병 파동과 함께 병든 소 유통이라는 일부 파렴치한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전국민적으로 쇠고기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던 시기이다. 소 농가의 피해가 막대했고, 대부분의 농가가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파산했다.
"사연이 어떻건 제 운명이니 누구를 탓할까요. 아버지의 귤이 아니라 제 스스로 선택 해 이르게 된 결말입니다. 제 선택의 귀착점이 '실패'를 가리킨 것이지요. 원망하고 자책하기보다는 당장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한 푼도 남지 않은 빈 몸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농기계 수리, 막노동 등등 돈이 되는 것이라면 찾아다녔고, 그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세월이 흘렀을까요? 청년이었던 저는 어느덧 머리가 새어진 중년이 되었고, 딸과 아들의 키는 그 사이 부쩍 커지고 목소리는 굵어져 있었습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형편이 조금씩 나아졌죠. 그리고 불현듯 귤나무를 잡고 있는 땅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먹고살기 위한 필연적인 방황 끝에 다시금 귤의 향내를 맡기 시작했다. 김경호 그의 어린 시절과 호기롭던 청년의 혈기 일부가 아버지의 귤과 함께 했기 때문이리라. 다시금 고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귀소 본능처럼 그의 손에 밴 귤 향이 그를 다시 고향으로 이끌었다. 이것이야 말로 운명. 그는 다시 농부의 직업을 등에 업기로 했다.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무작정 바로 귤농사를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제주의 귤 시장은 넘칠 대로 넘쳐 특별한 귤을 길러야만, 보다 맛있는 귤을 전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먼저 고민했습니다. 어떤 귤을 어떻게 기를 지를. 큰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오래 귤 농부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별화된 맛의 귤을 기르고 전해야 했습니다."
힌트는 타이백 감귤에 있었다. ('타이백'이라 불리는 다공질 필름을 귤나무 밑에 전체적으로 깔아줌으로써 귤 맛의 악영향을 주는 빗물 유입은 차단하고, 귤 맛을 북돋아 줄 일조량은 극대화시켜 당도를 높이는 농법) 기존 노지 귤보다는 재배법이 까다롭지만 당도가 월등히 좋다는 장점이 있다. 그 정도가 비가림, 하우스 귤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뛰어나며, 반면 초기 투자 비용은 비가림, 하우스보다 저렴해 시도해볼 가치 또한 충분했다. 더불어 대부분의 노지 귤의 단점인 일정치 못한 맛도 타이백 감귤에서는 잡을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었다.
"타이백 감귤은 열 개면 아홉 개는 동일한 맛을 갖고 있어, 맛의 편차가 심한 일반 귤보다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일반 귤과 비교해 농사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노동력은 더 많이 소요되지만, 그만큼 좋은 맛과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으니 당연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지요. 그러나 자칫 필름 설치를 잘못하게 되면 빗물 유입이 생겨 일반 귤보다도 못한 당도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경험과 기술을 요한답니다."
그의 황금향 또한 눈여겨볼 작물이다. 황금향이란 천혜향과 한라봉의 교잡종으로 '부와 명품의 향기'라는 뜻을 품고 있다. 모체인 천혜향과 한라봉의 맛에서 예상할 수 있듯 황금향 또한 그 맛과 향이 제법 좋은데, 한라봉보다는 천혜향에 좀 더 가까운 맛을 지녔다. 껍질이 얇고 과육이 연해 부드러운 귤 맛이 인상적인 품종이다.
"저의 황금향은 타 농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재배됩니다. 우선 제초제를 사용하기보다는 최대한 손수 김매기와 예초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예초를 한 뒤 생긴 풀은 고스란히 거름으로 재활용하지요. 땅에서 자라는 황금향에게 땅이 주는 영양분 만한 것이 또 없으니까요. 거기에다 토양의 유산균 증식을 위해 막걸리 농법을 활용합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막걸리 효소는 직접 발효시킨 것이고요. 덕분에 황금향 나무의 뿌리는 더욱 강건하게 뿌리를 뻗고, 자연히 황금향의 당도도 올라갑니다. 해거리 현상도 현저히 줄고 말이죠. 이러한 노력 끝에 올해 2020년 8월 29일부로 GAP 인증 제1006566호 까지 획득하게 되었답니다."
다시 농부로 돌아와 농부라는 직업의 향기를 처음 심어주었던 귤을 짓는 김경호 농부. 그에게 있어 귤은 아버지 세대부터 이어온 만큼 '김경호'라는 인물의 삶의 골자다. 파인과 바나나, 소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다른 직업을 선택한 순간에도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김경호 농부를 키웠던 귤 농사를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그가 겨우 겨우 삶의 숨을 고르게 되었을 때 다시금 귤이라는 고향으로 연어가 되어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마땅히 '귤'이라 정의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을 자식들이 이어준다면 그만한 행운이 없을 것이다. 김경호 자신과 달리 일찍이 귤에 인생을 받치고자 생각하는 자식들에게 최대한 완만한 길을 제시할 수도 있을 테니,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그러나 험난한 물길 질 끝에 되돌아온 귤이라는 고향도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만하면 시련은 농부라는 직업에 기본 값인 게 분명하다.
"다시금 시작한 농부와 다시 만나게 된 귤과의 삶임에도 여전히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저를 궁지로 내몰았지요. 언젠가는 귤 농사 풍년으로 되려 귤 값이 폭락해 이익은 고사하고 인건비와 비료대금 조차도 지불하지 못해 빚을 져야 했습니다. 또 언젠가는 귤 밭에 열심히 깔아 두었던 타이백이 강풍에 전부 날아가 버려 그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치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시련이 베인 손끝처럼 저를 수시로 괴롭혔습니다. 그러니 어찌 자식의 귤 농사를 마냥 기뻐할 수 있을까요. 미묘한 감정의 격동을 애써 누를 뿐이죠. "
그를 아니 그와 같은 농부의 마음이 절절히 이해가 되는 답변이었다. 어찌 자신과 같은 힘든 길로 자식들을 떠밀 수 있겠는가. 굳이 이 길을 간다면 응원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자신과 같은 고된 길은 밟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바닥에 뉘어 등을 내어주어야 했다. 어떻게든 아픈 삶은 살지 않도록. 자신이야 이제는 아픔에 이골이 난 고수이니.
김경호 농부의 걱정을 그의 딸과 아들이 모를 리 만무했다. 아니 그의 자식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의 농부로서의 삶의 파고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며 성장한 것이 그의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였다. 하지만 아들과 딸은 아버지와 같은 농부가 되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수시로 닥치는 하늘의 시련과 아픔을 빠짐없이 지켜봐 왔음에도.
"귤나무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요"
농부가 되려는 이유를 묻는 아버지의 말에 딸과 아들이 뱉은 저 단출한 한마디가 내게는 수많은 의미를 함축한 시의 한 구절처럼 들려왔다.
"농부라는 직업이 아버지에게 가져다 준건 어려움뿐만은 아니었잖아요. 그 이상의 보람과 행운이 찾아왔었죠. 저는 거기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땅이 시련과 보상을 번 가르며 주는 것이 아닐까요? 아버지의 포기하지 않는 굳은 심지 덕분에 땅도 온전히 시련과 보상을 번 가르며 아버지에게 줄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리고 아버지는 이따금 주어지는 행복과 보상 덕분에 농부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고요. 하물며 떠났다가 다시 농부로 돌아가기까지 하셨으니, 아버지도 그 보상이 꽤나 마음에 드셨던 것 같고 말이죠. 저는 거기에서 나무의 진실을 보았어요.
제가 경험했던 세상은 불합리였어요. 무언갈 기대하고 행동해서는 안 되겠지만, 분명 최선을 다한 인물에게는 마땅한 행운과 보상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언갈 바라서는 안된다지만, 무언가 주어지지도 않는데 젊음과 생명을 태우라는 것은 불합리하기 짝이 없죠. 하지만 세상은 그 불합리한 순간을 끊임없이 제시했어요. 반면 농부는 아니었죠. 열과 성의를 다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흉작을 맞이할 수 있지만, 다음 해 아니면 그다음 해 라도 반드시 햇살이 드리웁니다. 귤나무는 아버지에게 그것을 약속했고, 아버지도 귤나무가 그것을 지켜주기에 여태껏 농부로 살아가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농부가 되기로 했습니다. 귤나무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요." 라고.
이제는 가족이 함께 농사를 짓는 김경호 농부님의 농가. 나는 그의 일생과 그것을 잇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을 아버지의 삶에 교접한 딸과 아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덕분에 수많은 농부에게 내재된 심지를 더욱 사랑해야 할 이유를 얻었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aq137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