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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Aug 02. 2021

그때 마을에는 별이 내렸다.

자정을 넘기고도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거리를 미애가 걷고 있었다. 집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하는 거리였다. 출근하는 날과 퇴근하는 날의 날짜가 다른 건 미애에게는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식당 일이란 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동료가 근무를 펑크 내거나 다치거나 식당에 손님이 그날따라 유독 많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미애의 퇴근 시간은 자주 다음 날로 밀리곤 했다.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그렇게 일을 해서 이제는 억울하지 않았다. 다만 흥분이 고조된 술집 거리를 뚫고 집으로 가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태생이 시골 출신이라 그럴까. 나이가 들어서 일까. 젊은이들이 달군 밤과 낮보다 눈부신 조명들이 미애는 거북스러웠다. 조용하고 아늑한 집 근처 골목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었다.


미애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은 충북 보은군의 한 시골 마을이었다. 그곳은 당시만 해도 전기가 없어서 촛불을 켜고 살아야 했다. 수도권에는 전기와 전구라는 것이 있어 밤에도 밝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진짜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다. 어른들이 "우리 마을에도 빨리 전기가 들어와야 할 텐데"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시는 걸 보며 미애는 그저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가 발표한 개발 계획으로 전국적으로 전기 공사가 시행된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때 비로소 전기란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미애가 5학년이 되던 해였다.


마을 곳곳에 원통으로 가공된 나무가 들어섰고 나무 사이사이에는 검은색 줄이 걸렸다. 말로만 듣던 전봇대라는 것이었다. 전봇대 외에도 전구라는 것도 집집마다 설치되었는데 생긴 것이 묘한 녀석이었다. 호리병 모양의 투명한 유리가 천장마다 매달리는데, 참으로 진귀한 모습이었다. 그날은 애나 어른이나 똑같이 눈을 반짝였다.


공사가 끝나고 마을 중앙에 설지된 확성기에서 몇 월 며칠에 일제히 불이 들어온다는 이장님의 안내 메시지가 나왔다. 모두가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을의 역사상 다시는 없을 격변의 순간이며, 모두가 그 역사의 산증인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약속의 날 저녁. 마을에는 촛불과 꼭 닮은 색의 별이 내렸다.


그로부터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미애가 한 번은 딸에게 외할머니 댁에 처음 불이 들어오던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고작 45년 전만 해도 한국에는 촛불로 살던 동네가 있었고, 티브이를 모르던 아이들이 태반이었다는 걸 딸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때와 지금의 시대는 그만큼 너무나 달랐고, 이 다름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은 너무나 짧기 때문일 거라 미애는 확신했다. 그 시간을 모두 건너온 미애조차도 자신의 기억을 의심할 정도이니 오죽할까. 티브이조차 상상할 수 없던 어린 미애가 지금은 손에 컴퓨터를 들고, 운전대를 잡지 않고 차를 몰고 있으니. 격세지감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변화에 미애는 가끔씩 세상이 낯설다.


미애가 퇴근길에 지나던 뜨겁고 빛나는 거리를 싫어하던 이유는 아마도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이 야속해서가 아니라 그 사이에 세상이, 이제는 어떤 감흥이나 기대도 들지 않는 곳이 되어서다. 촛불로 살던 동네에 불이 밝혀지고, 티브이가 들어오고, 전화가 들어오고, 컴퓨터가 들어오고, 서울로 상경해서는 그것들이 익숙해진 도시를 보며, 미애는 앞으로 발전할 세상을 한껏 기대했었다. 손에 들리는 전화기와 얼굴을 보고 통화하는 일이 상상에서 현실이 되던 때와 처음 불빛을 봤던 날을 지금도 생생하게 '놀라움'이라는 글자로 기억하는 게 바로 그녀였다.


그런데 이제는 어떤 새로운 것이 나와도 감흥을 느낄 수없는 세상이 되었다. 무엇이든 가능해진 세상이라 나올 것이 나왔다는 당연함만이 신기술에 대한 감상평이다. 이마저도 이미 발전한 세상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깨달을 수 없는 사실이다.


심심해진 세상에서 미애는 그저 어둠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아주 조용하고 불편하고 따분한 곳에 가서 추억만 하며 여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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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田性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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