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를 나로 만드는 외적인 것과 나를 나이게 하는 내적인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머리칼과 얼굴, 몸매, 옷차림, 나의 경력, 기술 등은 나를 나로 만드는 외적인 요소에 해당될 것이다. 나의 목소리와 내가 습관적으로 뱉는 단어, 억양, 버릇 등은 나를 나이게 하는 내적인 요소에 해당될 것이다. 어떤 것이 나를 나로 만드는지에 대한 생각은 타인의 '그'다움에 대한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내가 사랑하는 연인은 갈색의 머리칼과 특유의 애교, 미련할 정도의 책임감, 지나칠 정도로 좋아하는 노란색과 개나리꽃 등이 그녀의 '그'다움이다. 나의 친구는 험한 입과 달리 다정한 행동과 진중한 생각, 마른 햇볕을 연상케 하는 목소리가 그의 '그'다움이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당신들만의 '그'다움이 있고, 나아가 세상의 모든 개인에게는 그들만의 '그'다움이 있다. 그리고 '나'다움과 '그'다움에 대한 생각은 지금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로 확장되고 있다.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시작으로 소와 돼지, 닭 등의 가축과 풀, 나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제 그들의 '그'다움도 생각한다. 그를 그답게 하는 것을 찾아 존중하고,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나를 희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반려동물에 국한된 이야기다. 우리가 살기 위해 죽이는 생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구하는 입이 더 많다. 타자의 '그'다움에 대한 생각은 이제 나를 위해 내가 죽이고 사는 것들에 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불가피한 살생을 당장 멈출 수 없다면 적어도 생명의 경중을 함부로 잴 게 아니라, 나를 위해 희생되는 거룩한 생에 조의를 표해야 한다. 그들이 사는 동안에라도 그들답게 살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나의 시간과 정성을 기꺼이 내어주어야 한다. 지금 당장 구체적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앞으로 이어질 손영수 씨의 삶에, 그리고 이 글에서 이어질 그의 문장들에 힌트가 숨어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전성배 안녕하세요.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먼저 지난번에 작업하던 원고에 도움을 주셔서 다시 한번 더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대표님 덕분에 좋은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축산물품질관리원 측에서도 만족스러워했습니다. ( 농부와의 대화 참고. 축산물 이력제와 등급제에 관한 이야기)
손영수 안녕하세요. 작가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작가님과 나눈 이야기가 꽤 즐거웠습니다. 이번에 또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어 반갑고요.
전성배 지난 대화에서는 제 작업 때문에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번에야말로 듣고 싶어요. 대표님의 삶과 대표님이 소를 사랑하는 모양, 아직은 생경한 '방목생태축산'에 대한 것들을요. 대표님은 축산인이 되기 전에 요가강사였다고요? (지금부터는 '농부님'으로 호칭)
손영수 네, 요가강사로 수년간 일했습니다. 그러다 한우농장을 운영하시는 어머니의 건강 악화로 농장 일을 물려받게 된 것이 지금에 이른 거죠. 그때가 2014년이었으니, 시간이 참 빠르네요.
전성배 축산업과 요가라.. 어감에서도 조금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데, 특이한 이력입니다. 그럼 어머니 때부터 방목생태사육을 하셨겠군요.
손영수 아닙니다. 어머니는 일반적인 한우농가와 마찬가지로 축사에서 주로 한우를 기르셨고, 제가 어머니에게 농장을 물려받고 나서 방목 목초 사육으로 바꿨습니다. 소를 소답게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시발점이었죠.
전성배 '소를 소답게 기른다'라…. 전북 정읍에 위치한 농부님의 '다움농장'의 이름이 '소다움'이었죠? 소를 소답게 기르고 싶다는 농부님의 마음이 아주 잘 표현된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다움. 소를 소답게. 자꾸 읊조리게 되네요. 농부님이 제게 해주셨던 말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농부님이 보내셨을 지난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기존 사육 방식을 바꾼다는 건 필시 아주 큰 모험이었을 테니까요. 크고 작은 충돌이나 높고 단단한 벽을 수시로 만나셨겠죠?
손영수 그 벽과 충돌을 지금도 이따금 만나는데, 처음은 오죽할까요. 소를 소답게 기르기 위해 방목 사육과 조사료만을 먹이겠다고 어머니에게 가장 먼저 말씀드렸을 때, 꾸지람보다는 많은 우려를 들어야 했습니다. 빤히 보이는 편한 길을 놔두고, 대부분의 농가가 가는 길을 가지 않고 굳이 어려운 길로 가려는 아들이 심히 걱정되셨던 거죠. 게다가 그 길을 밟는 농가도 많지 않았으니까요. 주변 한우농가분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농장을 물려받겠다고 내려온 젊은 놈이 이상만 좇으려 하니 좋게 볼 수 없었던 거죠.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방목생태축산에 대한 이론적인 공부와 함께 실제로 한 발 앞서 실천하고 있는 농가를 돌며 공부했고, 적당한 부지를 찾기 위해 사방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 정읍시 북면에 있던 넓은 부지를 찾았고, 2년의 시간을 들여 방목 사육의 기초가 될 초지를 만들었죠.
전성배 듣자하니 그 규모가 49,500㎡ 달한다고요. 제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그게 얼마나 큰 규모인지 상상이 잘 안 됩니다. 그런 곳을 농부님이 손수 가꾸고, 농부님의 소가 마음껏 뛰논다는 사실에 감탄하는 것이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손영수 구체적인 금액은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금액이 들었고, 지자체의 지원 하나 없이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던 자금과 대출을 통해 꾸렸습니다. 진정 원하는 방식으로 더 열심히 소를 길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죠.
전성배 역시…. 그렇다면 더더욱 알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소를 위하시는 건가요? 농부님의 어머니나 주변 농가분들의 말마따나 더 편하게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쉽게 소를 기르고 돈을 벌 수도 있었을 텐데요.
손영수 작가님은 저의 말 중에서 "소를 소답게"라고 했던 말을 가장 기분 좋게 들으셨다고 했죠. 그뿐입니다. 요가강사를 하던 시절에 사람들에게 강조했던 게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하나가 아니라고. 본연의 모습이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라고. 사람들은 미적인 것을 위해 몸 좋고 잘생기고 예쁜 것을 표준 삼아 거기에 자신을 맞추려 듭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단 하나의 표본을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는 거죠. 그것이 굉장히 안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게 진정한 나 자신이고, 그게 진정 행복한 길일 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살아온 제가 소를 기르게 되니 소에게도 그런 감정이 싹트더군요. 안쓰러웠습니다. 미안했고, 죄스러웠습니다. 맛과 돈을 위해 몸에 맞지도 않는 곡물을 억지로 먹어가며 좁은 축사에서 일생을 보내는 소의 모습이 슬펐습니다.
전성배 축산업과 요가강사를 발음하며 조금의 공통점도 없다고 말씀드렸지요? 다시 정정해야겠습니다. 요가강사였던 농부님과 소를 소답게 기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지금의 농부님은 아주 많이 닮았습니다. 그리고 농부님이 느꼈던 그 죄책감을 저도 통감합니다. 우리는 맛을 위해서 농가는 돈을 위해서 가축들을 학대하며 살아가고 있죠. 등급제를 운영하면서 소답지 못하게 큰 소에게는 더 높은 등급을 매기는 아이러니를 수십 년째 반복하고 있죠.
손영수 그렇습니다. 현행 등급제는 조직감과 육색도 물론 중요하지만, 소의 근육에 얼마나 많은 기름이 골구루 잘 퍼져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높은 등급의 소일수록 고기에 기름이 골고루 껴있고, 그런 고기일수록 풍미가 굉장히 좋죠. 원뿔이나 투뿔로 불리는 고기가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초식 동물인 소가 근육에 그렇게 기름이 끼려면, 초식 동물로 살아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곡물을 먹여 필요 이상으로 살을 찌우고 활동량은 극도로 줄여야만 가능하죠.
전성배 마블링 우선주의가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사실이 과거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한편에서는 계속해서 "마블링이 꽃처럼 피었다." "등급이 높으니 풍미도 좋고 고소하다." "원뿔은 투뿔은 역시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와 같은 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좋다고 말하는 입과 나쁘다고 말하는 입이 동시에 존재하니, 이만한 모순이 또 없는데요. 그럼에도 계속되는 건 오랜 시간에 걸쳐 소비자에게 각인된 "등급 높은 고기가 더 맛있다."라는 인식과 등급에 따라 편차가 큰 소 가격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농부님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사실일 텐데요.
손영수 맞습니다. 그래스패드. 그러니까 '완전 목초 사육'으로 나온 소는 지방질이 적기 때문에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 당연히 제값도 받을 수 없으니 고스란히 농가의 적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죠. 나의 가족을 위해서라도 소를 소답게 기르자는 최종 목표를 위해서라도 이런 적자를 계속해서 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이상만 좇는 어리석은 사람이죠. 현재를 유지해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도 찾고 기력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두 가지 방법으로 소를 기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소의 육성기인 1개월부터 15~16개월까지 소가 초지를 마음껏 뛰놀며 풀을 먹을 수 있게 하고, 이후에는 마블링을 위해 축사에서 배합사료를 먹입니다. 이때 소가 생활하는 축사는 관행 농가보다 넓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먹이 또한 직접 만든 발효 사료를 먹이고 있고요.
두 번째는 소와 제가 원하는 대로 완전 목초 사육으로만 길러 출하하는 겁니다. 이 방법은 현재 저희 농장이 국립축산과학원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실험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소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고기 성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인데요. 해당 실험의 표본이 되는 소는 곡물사료와 풀사료를 모두 급여하지만, 비육으로 갈수록 곡물사료 비중이 더 높아지는 관행사육 군과 육성기까지는 풀사료만 급여하고 비육기에는 관행사육하는 군, 육성기와 비육기 모두 풀사료만으로 사육하는 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해당되는 군이 제가 지금 두 번째로 하고 있는 사육 방식이죠. 이 소는 내년 초에 출하가 될 예정이라 결과도 그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성배 초식 동물답게 자란 소와 그렇지 않은 소가 어떤 점이 다를지 몹시 궁금하네요. 내년 초 결과를 저도 기다려보겠습니다. 구체적인 자료가 나온다면 목초 사육을 소비자에게 알리는데도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손영수 네. 그럼 더 크고 강하게 방목 목초 사육을 해야 한다고 소리 높일 수 있겠죠. 그런데 꼭 그게 아니라도 계속해서 거론되고 있는 동물 복지를 위해서라도, 소에게 맞는 환경에서 소에게 맞는 먹이를 먹이며 소를 기르는 건 필수가 되어야 합니다. 복지뿐만 아니라 함께 화두가 되는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요. 유럽의 사례를 보면 풀만 먹고 자란 소가 배출하는 메탄의 양은 그렇지 않은 소보다 훨씬 적다고 해요. 그도 그럴 게 자기 속에 맞는 걸 먹으니 소도 속이 편한 거죠.
전성배 우리가 기름 많은 소가 맛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 그 맛을 느끼고 좋아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겠죠. 우리가 조금 더 빨리 타자의 생을 사유했다면 소뿐만 아니라 돼지와 닭, 오리도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었을 테고, 그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못된 마음도 우리가 더 빨리 알아챌 수 있었겠죠. 우리보다 더 빨리 깨닫고 움직인 농부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손영수 오랫동안 해왔던 지금의 방식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언젠간 바뀔 거라 확신합니다. 각각의 생명이 그들답게 살아가는 걸 존중하고 지켜주는 세상이 올 거라고. 지금도 보세요. 자신만을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동물 복지를 발음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작된 거나 다름 없는 것이죠. 저와 우리 소가 살아가는 이 모습은 그 세상으로 가는 수많은 걸음 중 하나일 뿐입니다.
왜 그랬을까.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어느샌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리고는 휴대폰의 스피커로부터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와 조금 거리를 벌렸다. 스피커 모드로 해놓은 덕에 휴대폰을 가까이에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왠지 그의 생각을 언어로 바꾸는 그의 목소리가 나는 조금 무겁게 들렸다. 그 목소리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내 빈약한 생각의 근육들이 그의 생각을 지탱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그의 목소리와 조금 거리를 두어 나를 지키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나의 엉덩이 모양으로 짓눌려있던 의자의 형상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느린 회복을 지켜보았다. 내가 아주 잠깐 머물렀던 자리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와 오래 했던 만큼 나의 생활감이 깊게 배여서 더 오래 걸리는 걸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살을 비비고 사는 세상은 어떨까.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나와 비비고 살 세상에는 내가 얼마나 깊고 진하게 배일까. 나의 흔적에 상처 입은 세상은 내가 떠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내가 있기 전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그 회복의 시간은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은 예감이다.
내가 손영수 씨에게서 본 건 소를 소답게 기르고 싶다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마음뿐 아니라, 자신이 머물다 갈 세상에 대한 책임도 보았다. 그건 후대를 위한 전대의 자세였다. 그는 자신이 머물다 갈 자리를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었고, 생명의 경중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2021. 12. 09
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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