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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Apr 05. 2022

우린 서로의 세상에서 죽었다.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전성배> 중에서


죽음이란 거북스러운 단어를 한동안 입에 달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죽음이 가진 원론적 의미로 누군갈 떠나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죽음이란 말이 꼭 명을 달리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절연과 연인과의 이별 같은 사람을 잃었을 때를 비롯해 영영 찾을 수 없게 된 물건과 장소, 심지어 기억에까지도 죽음은 널리 쓰일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내가 잃은 것이라면.


사는 동안 몇 명이나 되는 사람과 산 채로 헤어졌는지 모르겠다. 각각 전주와 울산, 수원으로 떠난 친우들과 열일곱부터 열아홉까지 사랑한 정이와 스무 살 무렵에 만난 현이, 스물여섯에 만난 희 등등 쓰기는 몇 명이 고작이지만, 이보다 더 많은 이들과 나는 산 채로 헤어졌다. 그들이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과 살아가는지 이제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과 정식적인 관계가 끝난 직후부터 몰랐으니, 그 기간은 적게는 수 년에서 많게는 십수 년에 달한다. 앞으로도 그들과 재회할 가망은 없으므로 이 기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테다. 그야말로 명을 달리해 누군갈 떠나보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처지인 것이다.


따라서 명이 붙어 있어도 만날 수 없다면 그 또한 형태만 다를 뿐, 죽음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그들은 내 세상에서 죽었고 나 또한 그들의 세상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저승 또한 대단히 특별하다거나 먼 곳에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박준 시인의 책 ‘계절 산문’ 속 “삶이 꼭 저승 같아졌습니다.”라는 문장처럼 삶 그 자체가 이미 저승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저승에 있는지도 모른다.



[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 ]

수익금은 작가의 집필 활동과 농가 홍보를 위해 쓰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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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 농산물 에세이

@_seong_bae : 미문美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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