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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Apr 08. 2022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전성배>를 말하며.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우리의 순수가 있던 시절에 곧잘 울려 퍼지던 소리다. 발원지는 너와 나의 입이었고, 도착지는 서로의 귀였던. 숨어야 하는 이와 찾아야 하는 이의 기분 좋은 화합이 그 시절에는 있었다. 꼭꼭 숨어 찾지 못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나를 찾아 주길 바라던 모순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역설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과 마찬가지로 어딘가에 이미 숨었거나 숨으려 애쓰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런 모순적인 생각은 갖지 않는다. 나를 영영 찾을 수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숨는 것이 더 이상 놀이가 아닌 채로.


먹고사는 일과 사랑하는 일 같은 개인의 서사에 더해 세대와 성별, 업주와 노동자 사이 팽배한 갈등으로 세상이 혼란하기 때문이다. 그 혼란 속에서 각각의 명제들은 내게 어떤 대답을 종종 요구한다. 이를테면 노조의 존속, 세대 간의 경제적 격차, 남녀 갈등 등에 대해서. 하지만 무지한 나는 어떤 위치에 서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도무지 확답을 내릴 수가 없어 결국 입을 닫고 눈을 감은 채 오직 귀만을 열어 두고 숨어들었다. 저 멀리 들리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가 가까워 올까 두려워하며.


무형의 말이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다. 확대 해석과 와전, 오해 등으로 말은 어느 물리적 무기보다도 위험한 무기가 되었다. 공멸을 야기하는 핵처럼 때론 내가 뱉은 말이 상대와 나를 동시에 죽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순수가 있던 시절의 숨바꼭질을 하기로 했다. 나의 말에 나와 타자가 죽지 않도록. 그것이 설령 비겁한 것이라도.



[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 ]

수익금은 작가의 집필 활동과 농가 홍보를 위해 쓰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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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 농산물 에세이

@_seong_bae : 미문美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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