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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Jul 16. 2022

죽음, 그 자연스러운 상태 - 김상욱 물리학자

나는 왜 그날 새벽, 떠난 그를 애도하던 빈소에서 다가올 아침을, 출근을 떠올렸을까. 그토록 사랑하던 이가 절연이 아니라 절명으로 떠난 자리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일말의 희망조차도 없는 최악의 절망 속에서 다가올 업무를 떠올리고, 지난 업무적 사고를 걱정하고, 그런 와중에도 염치없이 허기를 느꼈을까. 기어이 살겠다고…. 그 자리에서까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온몸을 지배 당했을까.


이에 얽힌 이야기는 나의 산문집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의 열 번째이자 마지막 글인 ‘기어이 살겠다고’에 담겨 있으니, 지금은 이 물음을 멈추고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에는 열 편의 서로 다른 제목과 내용의 글이 실려 있지만, 앞서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결국에는 모두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가 꼭 생물학적인 죽음만을 다루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까지. 관계의 단절, 어떤 기억이나 물건의 소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어떤 노년의 젊은 날 등등. 글은 현재의 내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죽음으로 떠넘겼다. ‘죽음’이란 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상태를’의미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 보내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이제야 고백하건대 죽음으로 점철되는 수많은 글을 쓰면서 나는 사실 단 한 번도 편한 날이 없었다. 그중에서 열 편의 글을 추려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라는 총칭을 부여하던 날조차 나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건 아마 내게 위안을 삼을 게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것도 알겠고, 그래서 애도해야 하는 것도 알겠고, 그럼에도 꾸역꾸역 살아야 하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 모든 단계를 밟는 마음은 단 한 순간도 기댈 곳이 없었다. 이성에 멱살이 잡혀 끌려다니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독자들에게 이 공허를 꼭꼭 감춘 채 책을 팔았다. 감히 내가 아직 위로받지 못한 그 모든 사연들을 이성으로만 팔았다. 미안하다. 다만 다행인 것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에 나의 위안이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김상욱 교수 덕분이다.


내가 사랑하는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지난 7월 13일에 tvN에서 방영하는 ‘유퀴즈’에 출연해 자신의 죽음에 관한 의견을 전했다. 그의 말을 조금 다듬어 아래에 옮겨 적는다.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

※ 책 판매 수익금은 집필 활동과 농가 홍보를 위해 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마치 ‘기이한 현상’처럼 느껴집니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이 우주를 보면, 이 우주에는 죽음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산다는 것. ‘생명’이 우주적 관점에서는 더 이상한 것이죠. 우리 주변을 보세요. 당장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이 죽어 있어요. 돌과 땅과 바닷물, 자동차 등등 수많은 것들이 죽어 있습니다. 시선을 지구 밖까지 확장해도 여전히 우리는 지구 이외의 곳에서는 생명체를 본 적이 없어요. 즉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고, 죽음이 오히려 가장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아시죠. 원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죽은 상태로 있다가 아주 우연한 이유로 모여서 ‘생명’이 됩니다. 당신과 나, 우리 주변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으로. 그건 몹시 이상한 상태입니다. 원자는 그런 이상한 상태로 잠깐 머물다가 죽음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이 찰나의 순간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다만 이런 생각은 막상 죽음을 직면한 사람 앞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런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드리자면, 원자는 영원불멸해요. 지금은 내 몸을 이루고 있지만 죽으면 다시 뿔뿔이 흩어져서 나무가 될 수도 있고, 가벼운 원자는 지구를 떠날 수도 있어요. 그러면은 다른 어떤 별에 가서 별의 일부가 될 수도 있죠. 우리는 원자의 형태로는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한편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원자의 형태로 함께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그럼 위안이 될 수도 있겠죠."


그의 말에 의하면 아니 이미 규명된 사실에 의하면 우리는 그저 아주 우연한 계기로 모여 생을 이룬 것일 뿐. 시간이 지나 죽는 것은 그저 원래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릴 적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냐는 나의 질문에 “별이 된다”라고 답한 어떤 이의 터무니없는 판타지는 사실 물리학적으로 온당한 말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나의 숱한 죽음에 관한 글은 드디어,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는 드디어 쓰여진 이유와 위안을 찾았다. 우리의 죽음은 그저 형태를 달리하는 것일 뿐 실은 언제나 함께이기 때문에, 나는 기어코 밥을 먹고 내일을 살았던 것이다. 잃어도 잃지 않은 것처럼 살았던 것이다.


다시 한번 더 사과를 전한다. 그 이유와 위안을 이제야 찾았다. 끝으로 바람이 있다면, 이제야 우리의 죽음이 기댈 곳을 찾은 걸 당신도 온 마음으로 나와 함께 기뻐해 주었으면 한다.


사랑하는 나의 독자들에게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를 읽었고, 읽을 독자들에게

전성배




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 농산물 에세이

@_seong_bae : 미문美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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