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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Apr 13. 2022

당신이 없으면 이제 누가 그곳을 기억하지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전성배>를 말하며.


역사를 생생히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을 ‘산증인’이라고 해. 그리고 나는 역사를 생생히 전하려면 반드시 그 역사의 중심에서 함께 시간을 포개야만 한다고 생각해. 즉 역사를 직접 겪은 사람만이 산증인이라는 이름의 칭호를 얻고, 그 말이 가진 어떤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보는 거지. 역사는 글과 사진, 영상 등으로 얼마든지 생생하고 세세하게 기록될 수 있고, 그것을 보고 배우기만 하면 누구나 역사를 실감 있게 전할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나는 확신해. 그 시간을 산 사람이기에 오직 그만이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야. 그건 감정 혹은 그날의 생생한 감촉 같은 거야.


그 어떤 휘황한 단어와 기술을 써도 역사와 함께 과거에 남은 감각은 그리 쉽게 전달될 수 없어. 오직 경험자의 입에서 나오는 설명에 의존하며, 머릿속에 산란하는 설명들을 그러모아 상상으로만 그려야 하지. 듣기만 해도 아주 번거롭지? 차라리 감각 따위는 차치하고 정형화된 기록들만으로 역사적 사실만을 취하는 게 훨씬 쿨하고 심플하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말했지? 감각은 오직 그들의 입에서만 산다고. 그 감각이 진정으로 역사를 현대에 현현시킬 수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돼. 감각은 당사자의 기억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형태가 없는 것이나 분명 존재하는 ‘실재’이며, 역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결정적 키key야. 질량 없는 거대함이고, 입에서 입으로만 건너가는 신비로움이야.


그리고 나는 이 때문에 아주 많이 불안해하고 있어. 감각을 기억하는 이가 떠날까 봐. 그가 떠나면 그땐 차가운 물성의 기록물과 그들에게 전해 들은 게 전부인 어떤 이의 와전된 기억으로만 역사를 끼워 맞춰야 하잖아. 그런 역사는 감흥을 일으키기 어렵고, 점점 퇴화되다 잊히기 십상이야.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무감한 언어로만 대대손손 발음되는 게 고작인 채로.


그게 슬퍼. 언젠가 키 크고 가지가 촘촘한 동인천의 늙은 벚나무를 보겠다며 늦은 밤 송월동 자유공원을 찾았을 때, 어떤 노파가 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봤어. “그때 동인천은 엄청 번화했지. 저렇게 꽃을 보겠다고 찾아온 젊은이들의 수가 우스울 정도로 말이야.” 그녀는 이 말을 남기고 바스러질 것 같은 약하디 약한 몸을 이끌며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지. 그때 나는 불현듯 그녀와 같은 산증인들의 곁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 시절의 감각은 구전으로만 전해질 수 있지만, 눈을 감고도 달달 외울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입을 따라 발음한다면 혹시나 내게는 와전되지 않고 전해지지 않을까 싶은 기대 때문에.


하지만 역시 역사를 현대에 현현시키는 결정적인 ‘감각’은 내게 온전히 전해지지 않겠지. 감각은 결국 산증인과 함께 떠나고, 무감한 역사만 기록과 기억으로 남겠지. 유구한 인류사가 모두 그렇듯.



[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 ]

수익금은 작가의 집필 활동과 농가 홍보를 위해 쓰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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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 농산물 에세이

@_seong_bae : 미문美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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