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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Sep 23. 2022

저는 자꾸만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요즘 제가 즐겨 먹는 건 곱창이에요. 당신 앞에서 매번 학을 떼던 그 음식이요. 맥주 한 잔에도 알딸딸해 하던 저의 주력은 이제 소주가 달달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 곱창을 먹을 땐 웬만하면 소주와 함께 먹습니다. 그땐 왜 이 맛을 몰랐을까요. 당신께 싫다고 말했지만 오늘날에는 좋아하게 된 것들은 곱창 말고도 많아요. 소주를 먹더라도 도수가 낮으면서 실제로 단맛이 가미된 것 위주로 먹던 저는 웬만한 독주도 달게 느낄 정도가 되었고, 닭발, 닭똥집, 오돌뼈, 편육, 향이 짙은 동남아 음식 등도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참 많은 것들이 불호에 호로 바뀐 것인데요.


이유는 역시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간 쌓인 경험 그리고 이를 체득하는 세포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인간이란 존재를 자꾸만 새롭게 만들어요. 세포가 죽고 살기를 어느 정도 반복한 나이가 되니 요즘은 종종 제 스스로가 새삼스럽습니다. 이걸 좋아한다고? 이걸 참는다고? 시간이 이 몸을 거름망 삼아 지나가면서 거기에 걸러진 것들은 죄다 제게 남아 버렸습니다. 좋아하게 되는 것들로 혹은 무뎌지게 되는 것들로. 네, 이번에는 무뎌진 것에 관해서도 말해보겠습니다.


이제 저는 누군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마음에 다 담아두지 않습니다. 제게 불필요하다 느껴지는 것들은 웬만하면 마음에 격벽을 세워 침입 자체를 막아요. 나이가 들수록 아집을 부리는 아저씨로 바뀌어가는지도 모르겠네요. 나름 부연 설명을 하면 제게 이롭지 않은 말들을 담지 않을 뿐이지, 여전히 그 외 수많은 말들은 제 안에 들어와 저를 개변시키고 있습니다. 부족한 실력을 지적하며 발전을 바라는 말이라던가 때론 공익을 위한 희생을 부탁하는 말 등이 그러해요.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는 비교나 열등감의 소지가 될 누군가의 잘난 말 같은 게 주로 제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는 말들이고요. 옛날의 저라면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문을 열어 두고 사는 시골의 어느 집처럼 들어오는 말들은 속절없이 다 받아들이고,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처럼 떠난 말들의 흔적은 떨치지 못한 채 자주 흔들리는 날들을 살았었으니까요.


그리하여 저는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세포는 7년을 주기로 새로이 바뀐다는 말은 약간의 어폐가 있어요.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올라프 버그만 씨의 말에 따르면, ‘피부’와 ‘장’의 세포는 몇 년이 아니라 수개월 만에도 새로워진다고 합니다. 7년보다 훨씬 빠르죠?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한 장기도 물론 있습니다. ‘간’의 경우는 약 3년 정도가 걸린다고 해요. 골격 세포는 자그마치 10년이 걸리고. 심장의 심근 세포는 일생에 걸쳐 약 40% 정도만 새로워지며, 뇌의 세포는 예외적으로 거의 교체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모든 세포는 7년을 주기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닌 기관마다 그 주기는 다르고, 어떤 기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 한 번의 생만 사는 거예요.


그렇기에 세포가 새로이 바뀔 때마다 전승되는 정보와 영원히 바뀌지 않는 세포로 말미암아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신빙성이 있어요. 어쨌든 세포가 죽고 살기를 반복하며 물리적인 변화를 거듭하는 만큼 본성은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말 또한 일리가 있고요. 저는 어느 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을까요? 짐작하시다시피 저는 변한다고 믿습니다. 스스로도 저의 바뀐 모습에 종종 놀라니까요. 여전히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제게 있어 시간은, 그 어떤 사람이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강인해요. 그렇게 믿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그 시절 저를 알던 당신이 저를 잊었으면 한다는 겁니다. 질투 많고 예민하고 부끄러운 줄 몰랐던 저를, 당신이 좋아하던 음식이나 술 한 잔을 제대로 함께해 주지 못하고 제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니던 이기적인 나를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마음은 미련이나 그리움 때문이 아니니 행여라도 염려 마시고요. 그저, 그저 한때 제게 특별했던 당신에게 한없이 이기적이었던 저를 당신의 기억에서 개변시키고 싶을 뿐입니다. 내가 당신을 아주 영롱하고 온화한 사람으로 기억하듯 나도 당신에게 그렇게 되고 싶어요. 나도 당신에게 따듯하게 떠오르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요. 이미 그 시절의 나는 당신의 안과 그 시간에 박제되었으니….


역시 사람은 변할 수 없나 봅니다.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

※ 책 판매 수익금은 집필 활동과 농가 홍보를 위해 쓰입니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aq137ok@naver.com

https://linktr.ee/seongbae : 홈페이지

@_seong_bae : 미문美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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