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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Nov 20. 2022

또 한 번 만난 청년 농부

양대준・김은영 감귤 농부

청년 농부였던 사람을 알고 있다. 과거형의 문장이 말하듯 그는 이제 농부가 아니다. 농부가 되기 전에 갖고 있던 직업으로, 터전으로 돌아가 지금은 다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나이와 성별, 키웠던 작물 등 그를 특정할 웬만한 건 말할 수 없는 지금, 유일하게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역시나 다른 청년 농부들처럼 그도 큰 기대와 뚜렷한 목표로 농부라는 이름을 처음 달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년 만에 그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농부였다가 다시 일반인이 된 다른 청년들처럼. 나는 그 실패를 아파했다.


한때 기성 농부님들의 이야기도 좋지만, 청년 농부님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적 있었다. 구세대에서 신세대로 건너가는 세상에서는 이미 많은 기회와 시간을 누렸던 분들보다 이제 기회를 만나야 할, 앞으로 농부로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청년들과 대화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지금의 세상도 딱 그걸 원했다. 미숙하고 어색하지만, 점차 농후해질 그들의 미래를 미리 점치며 나는 대화를 했다.


청년 농부들에게 더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또 있다. 능숙한 농부가 되기 전에 미숙했던 그들의 역사를 내가 먼저 기억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나는 서로의 부끄러운 역사를 아는 관계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을 알고 있다. 그런 의미로 농부님들이 새내기였던 역사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바람이 닿지 않은 농부는 언제나 나타났다. 농사의 어려움으로, 경제적 위기로, 이웃 간의 갈등으로. 이유는 다양했고 결말은 한결같았다. 농부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농부로 사는 동안 살았던 집을 팔고, 농촌을 떠나 농부가 되기 전까지 살던 회색의 터전으로, 농부 전의 자신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실패의 시간을 듣거나 목격할 때마다 그들과의 대화를 심지어 만남조차 후회했다. 몰랐으면 알지 못했을 아픔을 기어이 그를 알아버려 알게 되었으니까.


하여 앞으로는 청년 농부를 만나지 않으려 했으나, 나는 이번에도 나의 다짐을 번복하고 말았다. 이야기를 좇으며 글을 쓰니, 마음이 끌리는 곳에서 내가 먼저 말을 건넨 농부는 언제나 청년일 수도 청년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절을 살고 있다. 짐작은 간다. 아마도 나와 그들의 나이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세대는 같은 무언가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그 휘둘림에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성이 없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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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이번에도 청년 농부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만 것이다. 양대준・김은영 농부이다. 둘은 부부 사이로 감귤을 짓고, 딸을 한 명 키운다. 대준 씨의 나이는 나보다 대여섯 살 더 많고, 은영 씨는 나보다 서너 살 어리다. 그 벌어진 나이의 틈에 나의 나이가 껴있다. 이제 막 농부가 된 두 사람은 작년 초까지만 해도 각각 직장인과 주부였다. 그랬던 삶이 대준 씨의 급작스러운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대준 씨는 직장인에서 농부로, 은영 씨는 평범한 아내에서 농부의 아내이자 동시에 동료 농부라는 이름을 달았다. 결정은 급작스러웠지만 사실 농부라는 꿈은 아주 오래전부터 꾸었다고 대준 씨는 말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감귤 농부인 집안에서 자란 그는, 적어도 자신의 대까지는 감귤 농사를 이을 거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다만 그 시간을 먼 미래로 유보해 두고 종전까지는 평범하길 바란 것이었다. 바람대로 8년 동안 그는 무탈하게 평범했다.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리기 직전의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8년의 시간에 하루를 또 더하던 어느 날 그는 불현듯 농부가 될 미래를 앞당기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될 거라면 젊었을 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야만 농부이기에 가능한 꿈을 더 뚜렷하게 꾸고,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대준 씨와 은영 씨는 긴 상의 끝에 청년 농부가 되기로 결정했다.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스승이자 선배로 여기며 농사일을 배우는 한편, 농지를 얻어 하우스를 짓는 데에 일 년의 시간을 들였다. 그것이 작년의 일이다. 작년 말부터 완성된 자신의 농지와 하우스에서 귤 농사를 시작해 이미 지난여름에 첫 결실을 얻었다. 예상보다 수확량은 적었지만, 맛이 좋아 많은 관심과 좋은 말속에 판매가 끝났다는 후문이다.


그들과의 더 많은 이야기는 다가올 12월 4일부터 한 달간 독자들의 메일로 보낼 [땅과 붙어사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이 이상의 스포는 이쯤에서 그만둔다. 끝으로 조금 긴 한마디는 더하면, 자성에 의해 서로에게 끌리는 한시절을 살고 있는 우리는 또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염원한다. 부디 이번에 만난 농부는 계속해서 농부이길. 아주 오랫동안 농부이길. 그 무엇이든 자신이 바란 무언가를 모두 이루길. 하다 하다 평행 이론까지 이야기하며 나는 진심으로 염원한다.


3대에 걸쳐 농사를 짓는 대준 씨에게 평행 이론이라는 가설이 실재하는 현상임을 바란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은행원이었다가 아버지를 따라 농부가 된 그의 삶이, 수십 년간 농부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 아버지를 따라 계속해서 농부이길. 12월에 보낼 인터뷰의 시작에서 평행 이론을 말한 건 이러한 염원 때문이었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과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농부와 농산물을 주로 이야기하고, 삶에 산재한 상념을 가끔 이야기한다. 생生의 목표는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계속해서 농가를 위해 농부와 대화하고 그들의 농산물을 알리는 것이다. 그 글은 주로 밤이 비유하는 죽음의 위에서 쓰일 것이다. 조금 더 바라도 된다면 농부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도 쓰고 싶다. 당신일 수도 나일 수도 있는.


aq137ok@naver.com

https://linktr.ee/seongbae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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