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성배 Nov 23. 2022

가장 슬픈 일은 동인천이 사라지는 일이다.

한 6년째 동인천 바라기로 살고 있다. 하루 14시간의 노동과 일주일의 하루뿐인 휴무로 살아가던 시절에는 쉬는 날이면 새벽부터 일어나 서울로 떠났다. 아주 익숙한 종로 3가 일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이었으나 그것이 질려 갈 즈음에는 종각으로, 인사동으로, 광화문으로, 경복궁으로, 북촌으로 장소를 순차적으로 옮겨가며 시간을 보냈다. 하루뿐인 쉬는 날을 꼬박 서울 종로구에서 살았던 것이다. 공예가로 살던 1년과 시장 과일 장사꾼으로 살던 약 4년의 시간을 합치면 5년 치의 삶이 그곳에 있다. 여기에는 만났던 여인과의 시간도 포함된다. 그녀들 덕분에 가능한 시간이었다. 나보다 두 살 어렸던 여인과 나보다 두 살 많았던 여인이 고맙게도 나의 고리타분한 취향을 묵묵히 따라주었기 때문에 나는 인천에 연고를 두고 있음에도 서울을 제집처럼 다녔다.


시장 과일 장사를 그만두고 인터넷 판매로 전향하면서, 동시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고집이 서울에서 인천으로 옮겨갔다. 그중에서도 이번에는 동인천이다. 사실 이곳은 어릴 적부터 질리도록 다녔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월미도에서 디스코 팡팡을 몇 번이나 탔는지 모르겠고,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몇 그릇 비웠는지 모르겠다. 이런 추억은 나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천 토박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이야기이다. 필시.


서울 종로구보다 익숙하다 못해 질리고도 남을 그곳을 그럼에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어린 시절에는 낡고 허름해 시시했던 이곳의 모습이, 지금은 이보다 더 안정감을 주는 게 또 없을 만큼 편해서라고 말하면 이유가 될까. 그게 이유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이곳이 다시금 새롭고 편안하다.


내가 꽂힌 곳은 개항장거리와 송월동 자유공원, 인천아트플랫폼, 배다리, 애관극장이 있는 가구・웨딩거리 등이다. 이곳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그 틈새에 동화 마을과 차이나타운, 화평동 냉면거리, 신포시장, 패션거리, 세관역사공원, 부둣가가 자리해 있다. 길을 따라 걷고 걷다 보면 종국에는 월미도까지 이어지는 그곳을 여태껏 다니고 있다. 이곳에서 나의 첫 책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의 3분의 2가 쓰였고, 두 번째 책 <너와 나의 야자 시간>의 한 꼭지가 쓰였고, 연재를 하던 <전성배 산문>은 반절 이상이 쓰였다. 농부님의 인터뷰 글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글 작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산책을 했기에, 적어도 수십만 보는 될 나의 걸음이 여기 곳곳에 새겨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분량은 갱신된다. 이 한 편의 글과 이 카페로 오기까지 돌고 돌아 채운 5천 보 가량의 걸음이 더해지며.


이문재 시인은 그가 사랑하는 동료 박준 시인에게 새벽에 전화를 걸어 이런 말을 했다. “슬퍼서 전화했다. 가장 슬픈 일은 장소가 없어지는 일이다. 그러면 어디에 가도 그곳을 찾을 수 없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더 이곳을 찾을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제는 늙을 일만 남은 날, 더 낡고 낙후될 이곳은 더 오래 불러들일 것이다. 이곳은 사라지면 사라는 대로, 바뀌면 바뀌는 대로 나를 슬프게 할 것이다.



※ 아래 배너를 누르면 양대준・김은영 농부와의 인터뷰 구독 신청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2022년 12월 3일까지 구독 신청을 받고 있으니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부탁드리겠습니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과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농부와 농산물을 주로 이야기하고, 삶에 산재한 상념을 가끔 이야기한다. 생生의 목표는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계속해서 농가를 위해 농부와 대화하고 그들의 농산물을 알리는 것이다. 그 글은 주로 밤이 비유하는 죽음의 위에서 쓰일 것이다. 조금 더 바라도 된다면 농부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도 쓰고 싶다. 당신일 수도 나일 수도 있는.


aq137ok@naver.com

https://linktr.ee/seongbae : 홈페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또 한 번 만난 청년 농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