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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Jan 17. 2023

보낸 겨울보다 보내야 할 겨울이 더 많이 남았지만

농부와 농산물에 관한 글을 쓰며 산 세월이 이제 제법 됩니다. 하지만 성과와 시간은 저의 깜냥으론 도무지 결부시킬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수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성과도 돈도 손에 쥐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여전히 글로는 아주 적은 돈을 벌며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결코 먹고살 수 없을 정도의 푼돈이요. 그러나 늘 최악을 생각하는 저의 성격이 이런 상황에서는 긍정적인 면모를 보인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좋아하는 글을 써 이런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값진 일인가.” “좋아하는 글을 쓰며 타인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미약하게나마 그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그리하여 저는 오늘도 이 마음을 견고히 하며 대화를 나눌 농부를 찾고, 그의 승낙을 기다립니다. 언젠간 제 깜냥이 성과와 시간을 결부시킬 수 있을 정도로 커지길 바라기도 하면서요.


이번에 기다리는 농부는 ‘대저 토마토’ 농부입니다. 저를 오랫동안 지켜보신 분이라면 알 수 있듯 다음 계절이 봄이기 때문인데요. 비교적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짧게 설명을 드리면, 봄을 대표하는 작물은 제게 있어 대저 토마토만한 게 없기에, 매년 겨울의 중간쯤엔 대저 토마토 농부를 찾아 나선답니다. 그렇게 지난해에는 심영호 농부님을 만났고, 지지난해에는 황수길 농부님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보니 매년 꾸준히 새로운 농부님을 만났네요. 참 다행입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제철에 농부를 이야기할 수 있어서. 혹 제가 항상 현재의 계절이 아닌 다음 계절에 움직이는 농부님을 찾는 게 궁금하시다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철에 맞춰 제철 농부님을 이야기해야 조금 더 많은 독자분들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제철이 되기 전에 제철 농부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써야 하는 거죠. 때에 맞춰 글을 보여드리기 위해. 이는 제가 유일하게 지키는 규칙입니다.


사실 제철은 매년 찾아오고, 한 번 써 둔 글은 어찌 됐든 때마다 노출이 될 테지만, 일 년이라도 더 오래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만은 지키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여건이 되지 않아서입니다. 시간이 있고, 제 능력이 잘 따라 줬다면 굳이 겨울에 봄의 농부를 찾아 나서지 않았을 겁니다. 겨울에는 겨울의 농부를, 봄에는 봄의 농부를 만나 이야기했을 테죠.


그래서 부족한 제게 농부를 만나고 글을 쓰는 일은 매번 다음 계절을 바라보는 일이 되었습니다. 겨울에는 꽃 피는 봄의 어느 날 초록 빛깔의 대저를 따는 풍경을 바라보고, 봄에는 곤충이나 풀, 바다 같은 온갖 생들이 격렬하게 울어대는 여름의 어느 날 초록으로 태어나 초록으로 익는 수박을 바라보고, 여름에는 모든 게 마치 생이 무르익은 노년의 모습이 되는 가을의 어느 날 두 번 익는 홍시를 바라보고, 가을에는 모든 게 얼거나 잠들 뿐인 겨울에 기어이 태어나고 마는 귤을 바라보는.


아직 겨울입니다. 보낸 겨울보다 보내야 할 겨울이 더 많이 남았지만, 그런 이유로 저는 일찍이 봄을 바라보겠습니다. 봄으로 가겠습니다. 당신은 겨울이 서운해 하지 않토록, 조금 더 오래 머물다가 오십시오.



전성배가 만난 농부의 이야기

[땅과 붙어사는 말]

※ 아래 링크에서 농부님들의 인터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litt.ly/aq137ok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과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농부와 농산물을 주로 이야기하고, 삶에 산재한 상념을 가끔 이야기한다. 생生의 목표는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계속해서 농가를 위해 농부와 대화하고 그들의 농산물을 알리는 것이다. 그 글은 주로 밤이 비유하는 죽음의 위에서 쓰일 것이다. 조금 더 바라도 된다면 농부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도 쓰고 싶다. 당신일 수도 나일 수도 있는.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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