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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Feb 04. 2023

아이 돈 라이크 워칭 유 고

좋은 글을 보면 자꾸만 쓰고 싶어진다. 그 글이 좋을수록 이 욕망은 도무지 주체할 수 없게 내 손가락을 달달 보챈다. 어서 쓰라고. 어서 떠오르는 것들을 활자로 새기라고. 그럼 나는 떠오른 영감을 행여 잊을까 서둘러 욕망의 명령을 따른다. 그 명령을 행하는 과정에는 늘 읽다만 좋은 글이 내 옆에 놓여 있다. 마저 다 읽는 것조차 욕망은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정의한 좋은 글은 단순 명료하다. 박준과 이슬아, 김초엽과 목정원이 쓴 글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들이 쓰는 모든 글은 내게 가장 좋은 글이다. 훗날 또 어떤 작가의 글이 또다시 내게로 와 좋은 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도 이 네 명의 작가는 기세 한 번 꺾이지 않고 왕성할 것이다. 그들은 작금에서도 미래에서도 나의 쓰고 싶은 욕망을 마구마구 푸시 할 것이다. 지금 내 옆에는 이슬아 작가의 ‘아무튼, 노래’가 놓여 있다.


떠나보내는 것과 떠나가는 행위는 언제나 동시에 존재한다. 내가 떠난다면 나를 떠나보내는 이가 있기 마련이니까. 이는 반대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떠난다면 그를 떠나보내는 내가 있다. 이 두 행위는 동시에 존재하는 것도 모자라 자주 같은 공간에서 일어난다. 이슬아의 ‘아무튼, 노래’ 속 ‘아이 돈 라이크 워칭 유 고’에서도 이 두 행위는 같은 공간에서 발생한다.


‘검정치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가수 조휴일 씨의 노래 ‘I don’t like watching you go’와 같은 제목의 이 글에는 이슬아의 새로운 연인이 등장한다. 이슬아의 오랜 연인이었던 ‘하마’가 아니라 ‘민자’라는 가칭으로 불리는 새로운 연인의 등장이라 조금 놀랍지만,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남일 같지 않으니 차치하기로 한다.


나는 단 한 번도 두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떠나는 사람이었을 때에도, 떠나보내는 사람이었을 때에도 예외는 없다. 당장 그 시간을 떠올리면 나는 그저 서둘러 떠나고 서둘러 배웅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과연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역시 나의 오랜 연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 그녀만큼 나와 떠나고 배웅하는 일을 자주 한 이가 없으니.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안될 때였지? 그때 우리 얼마간은 나름 장거리라면 장거리인 연애를 했잖아. 대체로 내가 네가 있는 곳을 찾아오는 편이었지. 너의 동네에서 함께 밤까지 포함해 하루를 꽉 채워 시간을 보내면 다음 날 오후에나 헤어지는 데이트 코스. 혹시 헤어지던 날 기억해?


“그건 기억하지. 매번 내가 아주 많이 서운해했지. 우리 동네에서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시간이 좀 걸리다 보니 너는 항상 동네에서부터 혼자 가겠다고 했었잖아. 그때마다 나는 매번 찾아오는 네게 미안해서 또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기어이 버스 터미널 근처까지 동행했고. 일 때문에 마중도 못 가는 마당에 배웅은 꼭 하고 싶었거든. 매번 실랑이가 있었지만 나는 꾸역꾸역 시외버스 터미널 정류장까지 같이 갔어. 그런데 문제는 기껏 터미널 근처까지 왔는데 넌 버스 정류장에서 터미널까지 또 거리가 머니까 여기서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한사코 거절하면서 넌 부랴부랴 터미널로 뛰어갔어. 게다가 한 번도 뒤돌아 보지도 않고 말이야. 항상 그랬어. 나는 그게 고마우면서도 참 서운하더라. 너야 내가 번거롭지 않도록 행여 피곤하지 않도록 애써 먼저 가는 거였겠지만, 그럼 나는? 나는 뭐가 돼. 고마웠지만 서운했어.


몇 번은 내가 네가 있는 것으로 갔을 땐 또 반대가 되더라? 내가 버스를 타고 떠나는 모습까지 넌 항상 다 보는 거야. 자기는 집에서 터미널까지 가깝다면서. 나도 그렇게 배웅하고 싶었는데.”


‘아이 돈 라이크 워칭 유 고’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락은 마지막에 있다.


“민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돌아선다. 민자에게 등을 보인 채로 걷는다. 민자는 내가 가는 걸 본다. 민자도 내가 가는 걸 보는 게 싫을 테지만 뒷모습을 봐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도 있다. 웃으면서 돌아서는 건 나의 사랑 방식. 조금 더 쓸쓸한 사람이 되기를 자처하는 건 민자의 사랑 방식. 민자는 내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져서 먼지만큼 작아질 때까지 뚫어지게 쳐다본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그걸 안다.”


나리와의 대화 뒤로 아이 돈 라이크 워칭 유 고의 마지막 단락을 다시금 반복해 읽었다. 떠나고 떠나보내는 서로의 방식. 그 사랑의 방식을 존중하며 멀어지는 두 사람이 내 눈앞에 보였다. 뒤에서는 배려를 앞세워 제 사랑의 방식만을 고수하는 내가 나리에게서 서둘러 멀어지고 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내가 버스를 타고 멀어지는 나리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다. 민자와 이슬아와 달리 우리는 서로의 사랑 방식을 모르고 있다. 아니 나리는 대체로 나의 사랑 방식을 알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나리의 사랑 방식을 간과하고 있다. 나리의 서운함은 제 사랑을 몰라주는 내 모습이 계속된 끝에 나타났다.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는 일도 잘 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주고받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기에. 너무 사랑하면 주고 싶어진다. 그 사람이 잘 받아 주었으면 한다. 그때도 지금도 나리는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



전성배가 만난 농부의 이야기

[땅과 붙어사는 말]

※ 아래 링크에서 농부님들의 인터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litt.ly/aq137ok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과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농부와 농산물을 주로 이야기하고, 삶에 산재한 상념을 가끔 이야기한다. 생生의 목표는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계속해서 농가를 위해 농부와 대화하고 그들의 농산물을 알리는 것이다. 그 글은 주로 밤이 비유하는 죽음의 위에서 쓰일 것이다. 조금 더 바라도 된다면 농부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도 쓰고 싶다. 당신일 수도 나일 수도 있는.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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