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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Feb 19. 2023

한 번은 꼭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다음 달부터 연재할 수필 ‘봄이여 오라’에 실릴 열세 편의 글을 구상 중이다. 글감과 쓸 순서 정도는 사전에 정해두어야 써야 할 날에 쓰는 데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기에, 연재 때면 반드시 하는 사전 작업이다. 다만 계획과 현실의 보폭은 자주 어긋나기 일쑤라 이번에는 계획대로 될지 의문이다. 그래, 늘 나는 계획이 다 있었지만 계획대로 글감을 다 마련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매번 몇 개의 글감 정도만 마련하는 걸 끝으로 나머지는 연재 당월의 나에게 맡겼다.


다행히 전적은 올 승. 마감일을 코앞에 둔 때의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내가 아닌 내가 그간 있었던 여섯 번의 연재를 모두 무탈하게 치러냈다. 일곱 번째 연재도 그럴 것이다. 평소에 나는 사사로운 것에 집착하고 언뜻 무념해 보이기까지 하나, 마감이라는 책임이 생기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그런 녀석은 믿을 수 있는 놈이다.


하지만 ‘봄이여 오라’는 예외적이다. 조금 더 욕심이 난다. 이번에는 내 안에서 길어낸 글감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다양한 코너를 내세워 타인에게서 길어낸 글감으로도 쓰고 싶다. 아주 오랜만에 하는 연재이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누군가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막상 재회를 앞두면 있는 힘껏 자신을 치장하는 심리와도 같다. 나는 독자들과 재회한다. 염두에 둔 코너 중 하나는 농부 인터뷰인 ‘땅과 붙어사는 말’의 외전 격인 ‘상인 인터뷰’이다. 내가 가장 크게 마음을 둔 글쓰기이다. 대상자는 나의 본래 글쓰기 분야를 따라 농산물을 다루는 상인으로 정했고, 더욱이 나는 과일 장사꾼 출신이니 과일가게 상인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기까지가 이번 주 초반의 계획이었다.


[격간 전성배 산문] 3월호 '봄이여 오라'

-2023년 3월 2일 자정까지 구독자 모집 중-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forms.gle/2DueAyafUB26byBG9


지난 수요일부터 실행에 들어가 금요일까지 인천 일대에서 나름 규모 있는 시장을 선정, 그간의 경력을 살려 내 눈에 띄는 가게를 몇 개 찾았다. 총 네 곳이었다. 그중 인천 연수구 옥련동의 옥련시장 과일가게 한 곳과 미추홀구 용현동의 토지금고시장 과일가게 한 곳은 반드시 인터뷰를 따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곳에서 제안을 거절당했다.

용현시장

여담인데 과일 장사꾼뿐만 아니라 나는 올해 단 한 명의 인터뷰이도 발굴하지 못했다. 앞서 몇 명의 농부와 과일 중도매인, 과일 경매사에게 인터뷰를 제안했지만, 거의 대부분 답변조차 받지 못했다. 익숙한 일이다. 매년 인터뷰를 시도하면서 승낙보다는 거절을 곱절은 더 많이 받았다. 하물며 이제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고 있다. 농한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에 농부님들이 인터뷰에 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경매사와 중도매인, 장사꾼은 오죽할까. 일 년을 내내 농번기로 살아가는 그들이다. 거절이 반복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진심이 닿는 분을 찾아 또다시 문을 두드리면 될 일이다. 단지 이 헛헛한 마음을 말하고 싶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들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들려주고 싶다. 푸념처럼 들릴 수도 있을 텐데, 착각은 아닐 것이다.


숱한 농부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을 글에 올렸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로써 그들의 수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우리나라 농업이 하루라도 더 연명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이는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이다. 내 글이 제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이런 마음에 근거한다면 '나'라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중도매인과 경매사, 상인 같은 유통인을 만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농부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이 글에 올린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농업에는 선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옥련시장

도매시장의 경매사

경매사를 먼저 보자. 현재 경매사 중에 청년은 거의 없다. 대다수가 경매제로 운영되는 전국의 도매시장에서 경매사란 필수불가결의 영역이다. 도매시장이 현 체제를 유지하는 한 언제까지고 함께 가야 할 직업이다. 하지만 현재 경매사들의 평균 나이대는 50대 전후로 파악되는데다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 경매사 직군은 현재 인력 부족 문제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청년들을 향한 직업 홍보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 단, 이 직업의 문제점도 동시에 알려야 한다. 인력 부족이나 고령화에 시달리는 직업군은 반드시 어떤 문제를 안고 있다. 경매사의 경우 모든 근무가 새벽에 이뤄진다는 점과 시대에 뒤떨어진 주 6일 근무가 아직도 성행한다는 점, 이런 열악한 조건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급여 수준이 청년의 진입을 막고 있다. 나는 경매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직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소리치며, 개선만 된다면 청년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도매시장의 중도매인

도매시장의 주축인 중도매인을 만나려는 건 인식 개선의 차원이다. 오늘날 도매시장 상품은 산지 직송 상품보다 더 비싸다는 고정 관념 속에 놓여 있다. 농부가 직접 보내는 상품과 달리 어쨌든 중간에 유통 단계가 끼는 것이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소비자가 간과한 사실도 있다. 도매시장은 여러 농부의 상품이 동시에 모여 경쟁을 치르는 장이라는 것. 사과 하나에만 최소 수십 명의 농부가 동시에 경쟁을 하고, 중도매인은 저마다 자신만의 품질 기준을 길잡이 삼아 좋은 품질의 상품을 낙찰하는 곳, 그곳이 바로 도매시장인 것이다. 가격도 품질도 천차만별이니 이미 여기서부터 도매시장 상품이 무조건 더 비싸다는 건 성립될 수 없다. 다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는데 이건 경매 체제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으니 밑에서 따로 말하겠다.


소비자의 오해는 또 있다. 산지 직거래라고 해서 더 저렴한 경우는 도리어 드물다. 중간 유통이 빠졌으니 그만큼 저렴하게 받는 농부도 있겠지만, 빠진 중간 유통의 마진을 제 마진으로 편입시켜 그에 상응하게 받는 농부가 압도적으로 더 많다. 사람이 그렇다. 반면 도매시장은 가격이 다양하니 얼마든지 소비자가 본인에게 맞는 가격대의 상품을 찾을 수 있다. 또 도매시장은 입고되는 상품 모두가 시장에서 사전에 고지한 규격으로 생산 및 선별된 것만을 기본으로 한다. 품질 기준에 강제성이 없는 대다수의 산지 직송 상품과 비교하면 품질에서도 뒤떨어질 게 없는 것이다. 귤을 예로 도매시장은 5kg 기준 2S, S, M, L, 2L 등으로 사이즈를 나눠 포장된 상품만이 정상적으로 입고 가능하지만, 인터넷의 일부 판매자들을 보면 2~3가지 사이즈를 한데 묶어 '혼합과'로 판매한다. 엄연히 맛이 달라 크기를 선별하는 것인데, 묶어서 판매를 하면 소비자는 일관된 맛을 느끼기 어렵다. 이런 상품이 꼭 저렴하지도 않다. 물론 모든 산지 상품이 그런 것은 아니다. 저렴하면서 맛 좋은 상품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런 합리성을 도매시장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토지금고시장

도매시장의 경매제에도 오래된 문제점은 있다. 경매제는 더 높은 품질의 상품이 더 많은 값을 받게 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지금 가격을 좌우하는 건 그날의 물량이다. 사과를 또 예로, 그날따라 시장에 사과 물량이 많으면 사과값이 전체적 하향세를 그린다. 품질에 상응하는 가격을 받으려다 자칫 물량이 처질 수도 있기에 싼값에 거래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무시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는 농부의 상품은 예외적이지만 대체로 그렇다. 경매제의 놓인 생물의 비애이다. 아이러니 한 건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소비자는 도리어 산지 직거래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상품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중도매인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전통시장의 과일 장사꾼

일반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최종 단계의 상인도 중도매인과 비슷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 그들도 그들만의 눈으로 중도매인들에게 고품질의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매입해 자신의 오픈라인 매장에서 판매한다. 자신들도 경쟁 시장의 놓여 있는 만큼 여러 가격과 비교해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해서. 어느 동네든 손님들에게 나름 인정받는 과일가게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지금 당장 그 과일가게로 가 인터넷에 널려 있는 산지 직거래 가격과 비교해 본다고 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산지에서 구매하는 가격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농부가 직접 판다고 해서 저렴한 것도 아닐뿐더러 농부와 소비자 사이에 중개인이 껴있다면 차이는 더욱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신선도가 다르지 않냐”라는 말이 나올 것 같으니 이 얘기도 잠깐 하자면, 맞는 말이지만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먼저 산지를 보자. 산지도 결국 소비자에게 상품을 보내기 위해선 택배를 이용해야 하는 만큼 하루 이상 상품이 묵혀진다. 도매시장은 농부가 낮에 작업한 물량을 차량에 실어 보내면 당일 밤에 도착, 가락시장의 경우 과일은 자정 즈음부터 경매를 시작해 다음 날 이른 아침까지 이어간다. 소매 상인들은 경매가 거의 막바지일 때쯤 시장에 나가 그날 경매가 치러진 상품을 중도매인을 통해 매입해 그날 오전부터 가게에서 판매를 한다. 계산해 보면 여기까지 하루 정도 걸리는 것이다. 차이를 찾을 것도 없이 산지 직송과 신선도 면에서 거의 동일하다.

토지금고시장

나는 전통시장의 과일 장사꾼과 인터넷 산지 중개인의 경험을 모두 갖고 있다. 이 두 분야의 차이와 비슷함을 모두 알고 있기에 감히 말할 수 있다. 가격도 신선도도 결국 파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상품이냐, 자신이 얼마큼의 마진을 남기고 언제 작업된 혹은 매입한 물량을 판매하느냐에 따라 가격과 신선도는 천차만별로 나뉜다. 그러니까 산지라고 좋고, 중도매인과 소매인의 상품이라고 나쁠 건 없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인터뷰 제안

나는 이 모든 분야의 이해를 돕고자 농부뿐만 아니라 유통인도 만나 글을 쓰고 싶었고, 이를 ‘봄이여 오라’에 한 번쯤은 싣고 싶었다. 그것이 마음처럼 안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고 말았다. 결국 푸념이 되었다. 제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지만, 이에 호응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쓸쓸한 기분과 허무한 마음에 매몰되어 요 며칠 우울함을 금할 길 없다. 그러나 이렇게만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독자들이 있으니. 나의 글에 호응해 봄이여 오라를 기다려주는 당신들이 내 옆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마음이 위로가 된다. 다시 제안을 하고 싶어진다.


“안녕하세요. 전성배라고 합니다. 저는 농산물을 주제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저의 독자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잠시 대화 가능할까요?"


봄이여 오라에 꼭 싣고 싶은, 지금은 알 수 없는 그를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땅과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농부와 농산물을 주로 이야기하고, 삶에 산재한 상념을 가끔 이야기한다. 생의 목표는 힘이 닿는 한 계속해서 농업을 위해 농부와 대화하고 그들의 농산물을 알리는 것이다. 그 글은 주로 밤이 비유하는 죽음의 위에서 쓰일 것이다. 조금 더 바라도 된다면 농부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도 쓰고 싶다. 당신일 수도 나일 수도 있는.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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