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天桃) 복숭아
우리의 것이 아닌 듯했다.
#마흔일곱 번째
신화 속 전설의 과일
옥황상제曰 "오공아 심심하면 '반도원(蟠桃園)'에 있는 복숭아나무를 관리해보겠느냐"
제천대성 손오공曰 "음.. 그러죠 뭐 심심한데 (절호의 기회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묘약을 혼자 독차지하려 해? 그렇게는 안되지)
[얼마 후..]
옥황상제曰 "네 이놈!!!"
이 얘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손오공의 일화 중 하나다. 불로장생의 묘약인 열매를 몰래 훔쳐먹는 등 숱한 크고 작은 죄를 짓는 손오공이 결국, 신(神)의 노여움을 사 수천 년의 벌을 받게 되고, 훗날 '삼장법사'를 만나 속죄하며 산다는 이야기.
그 신화에 등장하는 열매가 바로 '천도복숭아'다.
pexels외형마저 하늘에 피는 노을을 닮은 '천도(天桃)'는 이름 그대로 '하늘에서 나는 복숭아'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기반 없이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최초에는 '유모종(有毛種)(과피에 털이 있는 복숭아)'뿐 이였던 복숭아에서 돌연변이체인 털 없는 '무모종(無毛種)'의 복숭아가 태어났고, 그것이 현대에 있는 다채로운 색의 천도가 되었다.
'무모종'이라 하여 천도의 종자를 하나로만 생각할 수도 있으나, 털복숭아에서 파생되었어도 그 역시 여러 종자로 나뉘는데, 여기서 우스운 점이 이름이 꼭 만화 주인공처럼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바로 썬골드, 판타지아, 천홍, 암킹. 이외에도 몇 개의 종자가 더 있는데 그것 또한 동일한 류의 이름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종자는 맛과 외형의 차이가 미미한 수준이기에 구별이 쉽지는 않다.
어느 날 갑자기 기존 복숭아와 전혀 다른 외형의 복숭아가 태어났고, 그때의 사람들은 그 복숭아를 전설에 등장하는 과일이라 여겼다. 현대에 들어서도 그 뜻을 담아 이름 지어진 '천도'는 전혀 거부감 없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시작과 꿈 같은 신화를 되짚으며, 생각해 본다. 어떤 이야기라도 기반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기에, "우리가 모르는 전설 속의 사실이 있지 않을까"라고.
pexels자두와 비슷한 천도
천도는 크기와 색을 제외한 외형이 자두와 흡사해서 씨알이 작은 건 자두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연히 자두와 천도복숭아는 생물학적으로도 전혀 연관이 없으므로 혹시나 하는 관계를 상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굳이 비슷한 점을 꼽자면 천도는 자두와 같이 '핵과(核果)('씨'라 불리는 핵을 과육과 과피로 감싸고 있는 과일)'로 분류되며, 단단해도 단맛이 좋은 털복숭아와 달리 천도는 단단할 땐 신맛이 강하고, 시간이 지나 익으면서 당도가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pexels천도를 맛보다
지나는 길에 천도가 눈에 띄어 몇 개 사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밤 10시를 넘겼기에 상점들의 불빛은 거의 꺼진 상태였고, 과일만 비추는 노란 백열구만 깜빡이며 빛났다. 붉은 천도에 백열구의 노을이 덧씌워지니 천도는 마치 소무대의 연극배우 같았다.
점원은 알아서 붉은 과피에 노란색의 점이 무수히 찍힌 윤기가 흐르는 천도를 단단한 것과 적당히 무른 것을 섞어 담아 주웠는데, 그 폼이 아주 마음에 쏙 들었다. 말랑한 것은 지금 먹고, 단단한 것은 조금 뒀다 먹거나, 아침잠이 덜 가신 오전에 깨물어 먹으면 정신이 번쩍 들거라 상상하니 미소까지 지어졌다.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20여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는데,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살살 꼬시더니 결국, 20여분의 거리를 조금 더 늘려 걷게 했다.
걷다 보니 "입이 심심한데. 천도 하나만 먹으면서 가자"라 생각이 들었고, 적당히 무른 천도 하나를 봉지에서 꺼내 옷에 비볐다. 물로 헹궈야 더 깨끗하겠지만, 옷에 묻대는 건 또 그 만의 맛이 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곧장 천도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살점과 함께 과즙이 주체를 못 하고 터져 나올 듯했으나, 노련하게 '호로록'. 아주 훌륭하고 깔쌈한 한입이었다.
밤바람이 아직은 시원한 탓에 과육이 전혀 미적지근하지 않았다. 적당히 시원한 살점이 과즙과 함께 가득히 퍼져 알고 있던 천도보다 몇 배는 더 달게 느껴졌다. 바람은 시원하게 불고 천도는 달고, 아주 좋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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