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여름처럼, 진득한 단향과 단맛은 입안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흔아홉 번째 글
달콤함에 매료되는 대석
날이 더우니 여러모로 큰일이다. 잠깐만 밖에 서있어도 숨이 턱 끝까지 막히고, 피신하기 위한 커피 값은 장난이 아니다. 아,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될 텐데.. 앞으로 더욱더 온도가 하늘을 뚫을 듯이 오를 텐데..
요즘은 비 소식이 일주일에 반절을 차지할 만큼 비가 진부하게 내리는 장마철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햇빛이 내리쬐는 날이면 반가운 누군가를 만난 것처럼 설레기까지 한다. 그만큼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늘은 시련이라도 당한 듯, 수시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도 이 새콤한 자두는 그 고운 빛깔을 주눅들지 않고 한껏 드러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늘 말하려는 자두는 붉은색과 노란색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대석 자두'이다.
여보 나 자두가 그렇게 당기네, 새콤한 거 먹고 싶어!
드라마나 영화에서 임산부가 등장할 때면, 꼭 이런 대사를 한 번씩 던진다. 겨울이면 귤을 찾고, 여름이면 자두를 찾는다. 그런데 실제로도 많은 산모들이 임신 직후에 신맛의 과일을 찾는다. 그 이유는 개인 차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신맛의 과일이 임신 초기에 입덧을 완화시키기 때문이라 한다. 특히, 자두는 산모의 양수막을 튼튼하게 하는 엽산 성분과 임신 후에 찾아오는 변비를 해소하는데 좋은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대석'이라 불리는 자두
위에 언급했듯 신맛을 찾는 산모들에게 자두는 정말 안성맞춤의 과일이지만, 이 대석 자두만큼은 되려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자두, 자두라 하기에는 너무나 달콤하니까 the love
사실 난, 신맛을 선호하지 않기에 '자두'라는 과일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 이 대석 자두는 예외다. 신맛은 거의 없고, 오로지 달콤한 노란색의 과육만을 선사한다. 가장 빨리 사라지기에 매년 아쉬움을 남기는 녀석.
수십 가지로 나뉘는 자두의 품종 중 주를 이루는 품종은 대석, 후무사, 대왕, 피, 추희 등이 가장 비중이 크다. 색, 맛, 크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자두라는 큰 틀에서 새콤 달콤한 맛을 함께 선사한다 건 공통된 특징이다. 하나, 유독 이 대석 자두는 신맛은 거의 없이 달콤한 맛만 뽐내기에, 신맛 탓에 자두를 먹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단, 그 출하 기간이 매우 짧다는 것이 흠이다. 하우스는 5월 초부터, 노지는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만 재배된다.
딱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달콤한 속삭임과 같은 대석 자두
일본에서 온 달콤한 자두
자두가 처음 재배가 된 것은 고려 시대였던 12세기 말경으로 비교적 역사 속에서 그 기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하 임춘[1147~1197]이라는 인물이 은거하는 동안에 남긴, '서하 집(西河集)'이라는 책의 '장검행'시詩에서 "오얏 담근 이리주 한골로 내려"라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 '오얏'이 자두를 뜻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김천 자두)
이렇게 긴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현재의 자두는 과거의 그 자두가 아닌,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양과 일본 등에서 들여온 개량품종이다. 그중에서도 이 대석 자두는 일본 후쿠시마현이 원산지로, 1939년에 개발되어 1970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재배되기 시작했다.
재배되기 시작한 기간은 다른 품종에 비해 짧지만, 자두 품종 중 하나인 '홍자두'에 비해 숙기가 빠르고 뛰어난 맛을 낸다는 특징 덕에, 금세 대중적인 품종이 되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두 자체가 '추희'를 제외하고는 출하·보관기간이 짧기에, 이 달콤한 대석 자두가 더 사랑받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내 사랑은 확실히 많이 받..)
아쉬운 만큼 그리운 법
대석 자두를 맛보다
비가 내리는 저녁이다. 오전은 내내 우중충했고, 오후는 울먹이듯 조금씩 빗줄기가 내렸다. 올해는 대석 자두를 아직까지 맛보지 못했다. 여러 일이, '자두를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워낙 빨리 끝나는 녀석이기에 "이제 보이지도 않겠구나" 싶었지만, 지나치는 과일가게에 아직도 대석 자두가 자리해 있었다. 아무래도 거의 끝나는 무렵이기에 자두는 노란색보단 붉은색이 대부분일 만큼 익었지만, 다행이었다. 어찌 되었건 달콤한 맛은 변함없을 테니 말이다.
많이 먹지 못할 것 같아 3000원어치만 샀는데도 한 봉지 가득이었다. 여름은 여러 과일이 많이 등장하지만, 유독 핵과(核果)의 전성기라 할 만큼 지천에 천도, 복숭아, 매실, 살구, 자두 등 다양하게 깔리는데, 맛도 맛이지만 별다른 도구와 동작이 없어도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런 편리함 덕에 난, 이전에 먹었던 천도와 살구처럼 봉지에서 바로 꺼내어 한입에 넣었다. 자두는 살과 씨가 워낙 밀접해 있어 손으로 분리하기 어려우니, 이렇게 한입에 넣고 씹는 것을 선택했다. 자두 탈곡기라도 된 듯 오물오물.
자두는 익을수록 색이 붉어지면서 살이 말랑해진다. 대석 자두도 예외는 아니기에 붉어진 만큼 살이 연약했으나, 괘념치 않았다. 달콤했으니까, 과즙이 입안 가득 넘쳤고 부드러웠으니까.
비에 젖은 여름처럼, 진득한 단향과 단맛은 입안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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