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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Jul 17. 2017

참외가 죽는다.

못 생겼다고 죽인다.

예쁘고 향기로운


참외 향이 그윽하다. 한 개 두 개 정도에서는 느낄 수 없었으나,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탑을 쌓고 노란색으로 주변을 가득 채우니, 어느 놈에게서 시작됐는지 모를 향이 코 주변을 간질인다. 향이 좋다. 그 참외 앞에 서있을 때면, 마치 활짝 웃고 있는 어린아이 앞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어떤 비밀도 숨기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날 드러내고 있는 듯한 부끄러움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간과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천에 예쁘고 향기로운 녀석들만 보니, 그렇지 못한 녀석들이 어디쯤에 어떻게 있을지를 망각(忘却)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소식이 들려왔다.

죽이고 있다고 한다.
pexels

땅에 묻어 죽인다


공산품과 농산물의 절대적인 차이는, '생명의 유무(有無)' 있다. 당신과 내가 살아감에 있어 행하는 들숨과 날숨, 햇빛을 빨아 드리는 것과 마시는 물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근본이다. 그리고 이 농산물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같이 숨을 쉬어야 하며, 물과 햇빛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다른 점이라면 우리와 비슷하지만 절대적으로 약한 생명이라는 것. 조금이라도 햇빛이 과하면, 조금이라도 물이 넘치면 금세 본연의 모습이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그 상처는 올해, 너무나 깊었다.

kurly.com

예년과 달리 많은 참외가 열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땅이 갈라질 정도의 가뭄이었고, 장마로 인해 그나마 내린 비는 지역 쏠림 현상이 극심해 참외가 많이 열리기에는 버거울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을 다 이겨낸 참외는 올해 풍년(豐年)이었다.


하나, 좋은 일임에도 마냥 웃을 수 없는 게 현재 농민들의 입장이다. 소비자는 '예쁘고, 잘생긴' 녀석들만 찾는 반면, 재배량이 많은 만큼 저품질의 참외도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되는 풍년(豐年)과 흉년(凶年) 속에 국내 농산물은 늘 과부족 현상으로 죽는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올해는 B급 상품의 과다 공급으로 울상을 짓게 된 것이다.


전국 참외 생산량에 70%를 차지하는 지역인 성주 측은  B급 상품이 유통되면 품질을 저평가받게 되거나 가격 폭락의 우려가 있어, 몇 해 전부터 B급 상품을 'kg당 150원'이라는 가격에 수매해 퇴비로 사용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풍년(豐年)인 만큼 농민들이 요즘 매일 같이 퇴비장에 수천 톤에 달하는 참외를 쏟아 내고 있기 때문이다.

kurly.com

그래서 일부 농민은 되려 이 맘 때가 더 가슴이 아프다고도 한다. 참외가 많이 열리는 만큼 B급 상품의 발생도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결국, 자식 같은 새끼들을 대부분 헐값에 넘기는 방법 외에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유독 우리나라는 약간의 흠집이 있거나 중·소형과에 대한 선호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크고 예쁜 과일에만 편파적인 사랑을 드러낸다.


농민의 입장에서는 다 자식처럼 키운 새끼들이고 다 같은 양양을 갖고 맛 좋은 녀석들이지만, 소비자는 좋은 상품과 그렇지 못한 상품의 기준을 정해 그 가격 편차를 심하게 만들었다.


현재 농민들은 대부분의 과일이 한 자리에서 5개가 열린다 치면, 그중에 2~3개 정도만 수확하고 나머지는 튼실하게 키우기 위해 더 시간을 두고 기른다. 하지만 그마저도 성장 과정에서 작은 흠집이라도 생기면 B급으로 전락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A급과 B급의 가격의 차이는 몇백 원이 아닌 몇 천 원까지 벌어지게 된다고 하니, 결국 소비자는 애물단지가 된  B급 상품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더한 고비용으로 과일을 구매하게 된다.

pexels

이것은 농민의 입장에서도 답답할 노릇이다. 상대적으로 물량이 많은 B급 상품의 해소를 위한 방안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에 기업과 지자체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B급 상품을 이용한 식품 개발과 홍보에 시간과 금액을 투자 하지만, 지지부진하다는 게 문제다. 왜 일까,


아마도 우리의 인식 문제가 가장 크지 않을까? 무조건 보기에 좋고 예쁜 것만 찾는 우리의 인식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거라 생각된다.


저 예쁜 얼굴로 웃는 아이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햇빛을 받으며 커피 한잔과 책을 읽는 그녀는 사진을 찍히기 위해 일부로 분위기를 조성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런데, 저기 까무잡잡한 아이는 목소리가 참으로 곱다. 어머니 옆에서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을 타이른다. 운동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그녀는 빠져들 것 같은 눈으로 창 밖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귀하지 않은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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