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그 날에 추억과 대립할 기억이 만들어지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쉰 번째 글
향을 타고 날아온다
마지막 봄꽃 하나를 말하려 한다. 한여름인데 아직도 봄꽃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의구심이 생기겠지만, 복숭아를 말하려면 그를 맺게 하는 '복사꽃'을 빼놓을 수 없다. 상상만으로도 꽃향이 날아드는 듯, 아득해진다.
'복숭아꽃'이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4월 중순부터 하순까지만 개화하며, 이후에는 복숭아를 달고 1~2개월을 키워낸다. 매화나 살구는 커봤자 손가락 두 마디를 넘지 않으니 금세 자라지만, 복숭아는 그 크기부터가 보통 주먹만 하니 오래 걸리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렇게 짧은 털이 밀생(密生)하게 나 있는 복숭아가 탐스럽게 익고 나면, 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한다.
한 여름의 바람은 어쩌다 마주친 그늘처럼 달콤하다. 그런 드문 바람이 불어온다. 복숭아 향이 묻은 채.
조상들도 좋아했던 꽃
복숭아 또한 천도와 마찬가지로 중국이 원산지이며, 중국에서는 자국의 농업과 기원을 같이하고 있다 평하고 있다. 기원전 1~2세기에 한 상인에 의해 페르시아와 아르메니아, 희랍·로마 지방으로 건너가면서 유럽 각국으로 차츰 퍼져 나갔고, 우리나라에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다. 당시 선조들은 '오얏'이라 불렀던 자두와 함께 핀 복숭아꽃을 보고 시詩를 지을 정도로 아름답다 평했다.
살구와 함께 유실수(有實樹)에 속했던 복숭아꽃을 집에 심어 일상 속에서 늘 곁에 두며 함께하셨다. 아름답고 귀貴이 여기며. 그 사랑은 구한말에 우리나라 국화(國花)를 복숭아꽃으로 하자는 반론이 있을 정도로 컸다. 하지만, 그런 사랑을 받은 복숭아는 아쉽게도 현대에는 20세기 이후의 개량된 품종만 남아있다.
비운(悲運)
사랑받은 만큼, 복숭아는 매년 비운(悲運)을 맞이 한다. 한창 무럭무럭 자라 세상에 나올 시기에 비를 맞으니 말이다. 농산물은 생물이기에 햇빛과 물, 바람을 필요로 한다. 하나, 과유불급(過猶不及).
장마철은 그 비가 너무도 많이 내린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는 비로 인해, 복숭아를 한창 출하하는 시기에 '맛이 없다'는 평을 받게 된다. 직접 맞거나, 땅속의 수분을 빨아먹는 등 살이 약한 만큼 물을 금방 흡수해버리는데, 그렇게 물을 흡수한 복숭아는 당연히 맛이 옅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출하 초기엔 가격이 나가는 반면 맛은 떨어지는 복숭아로 인식돼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늘 농민은 이 맘 때 마음을 졸인다고 한다.
셀 수 조차 없는 품종
복숭아는 크게 과육이 하얀 '백도'와 과육이 노란 '황도'로 나뉜다. 보통 복숭아 통조림과 같은 가공용으로는 황도가 많이 쓰이는데 이유인 즉, 상대적으로 '앨버트'라 불리는 막바지 황도 외에는 대부분 단단하면서 단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백도는 생과일로 섭취하는 편이다.
이렇듯 크게는 백도와 황도 또는 딱딱이(단단한 복숭아)와 말랑이(말랑한 복숭아)로 나뉘지만, 깊게 들어가면 백도와 황도, 딱딱이 복숭아는 각각 수십 가지의 품종으로 세분화된다. 그리고 그 품종은 매년 새로이 추가되거나 사라진다.
복숭아는 같은 자리에서 수년을 따다 보면 어느 순간 맛을 내기 힘들어지는 시기가 오는데, 그 시기가 되면 어린 묘목에 접하여 새롭게 키워 낸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조금씩 다른 복숭아가 열리게 되고, 자연스레 새로운 품종으로 추가되는 것이다.
복숭아를 맛보다
잊지 못하는 복숭아 맛이 하나 있다. 내 나이 20대 초반일 무렵 과일가게에서 먹었던 복숭아가 바로 그렇다. 그때 먹었던 복숭아는 '천중도'로 파스텔톤의 분홍색과 향을 내고 있었다. 처음 먹었던 복숭아. 그 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물론 천중도는 시중에 지금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시설의 추억들이 그 복숭아를 더 달게 했던 탓일까? 그 맛을 찾기는 어렵다.
늦은 저녁 불이 꺼진 시장에서 마지막 백열구 밑에 올려진 복숭아는 조금 익어 있어 그 향이 더 진해져 있었다.
작은 과도로 그 자리에서 복숭아에 칼을 대었다. 첫 번째 칼질은 직각으로, 두 번째 칼질은 조금 이격 하여 사선으로 슥. 복숭아가 움푹 파이면서 새하얀 속살이 굵게 떨어져 나왔다. 그것을 입을 벌려 살만 쏙 깨물어 빨아드렸더니 과즙이 입안에 가득히 흘러버렸다. 마치 통조림 황도를 먹듯, 부드럽고 달콤했던 그 맛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그 한 조각이 잊히지 않는다. 어제도 복숭아 하나를 사 먹었더랬다. 하지만 그 날의 한 조각이랑 아직은 비교하기 힘든 듯하다. 아직은 그 날에 추억과 대립할 기억이 만들어지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일부 사람들이 복숭아 알레르기 탓에 근처에만 가도 가려워 먹지 못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알다시피 '털'에 있다. 복숭아는 흔히들 '털복숭아'라고 부를 정도로 털이 많은데, 그 털이 워낙 세밀하고 많아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묻어 나올 정도다. 그 털은 결국, 습한 여름 날씨에 진득해진 몸에 달라붙게 되니, 따가움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려움에 복숭아를 먹지 못해 이 달콤함을 놓치는 건 너무나 아쉽다. 복숭아는 물을 잘 먹는 녀석이기에 물에 씻지 않고 깎아 먹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 남에게 닦아 달라고 하자. 깎아달라고도 하자. 그럼, 괜찮을 것이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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