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있겠죠. 현재적 휘말림에서 벗어나는 자신만의 방법이. 그건 때론 장소일 수도 있고 때론 어떤 행위일 수도 있으며 때론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고, 당신은 이 세 개를 전전하거나 혹은 하나에 정착해 주기적으로 현실에서 도피할 텐데요. 하나 더 확언하면, 세 개라고 말은 했지만 그 아래 개인의 답들을 집어넣으면 수를 세는 건 더 이상 무의미해진다는 겁니다. 그저 그 수많은 답들을 보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가 이렇게나 많구나”라고, 작게 입을 벌려 읊조릴 수밖에 없어지죠.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답이 몇 개든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걸.
결국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것을 말한다는 겁니다. 익숙한 것에 마음을 두는 성정은 개인의 것이 아닌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본능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마음을 두고 있는 건 농산물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걸 바라보며 어떤 상상을 하는 거예요.
농산물이라는 작은 생이 인간에게로 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영원’을 시작으로, 내가 우주를 보며 변방의 먼지만 한 행성에 사는 나 자신을 하찮게 보듯 농산물도 인간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우습기도 한 상상을 합니다. 그런 우주만 한 상상을 하다가 그럼에도 나는 존재하고, 농산물은 계속해서 살고 죽기를 반복한다는 현실을 되새기는 것. 농산물을 바라보며 저는 이런 우주만 한 상상을 하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어느 날 문득 그게 참 고마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농산물은 저를 돈 벌게 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피난처도 되어 주어 저를 더 살게 합니다. 하지만 이 고마움을 단 한 번도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농업계의 현황, 농산물을 기르는 농부, 농산물을 먹는 사람, 농산물이란 카테고리에 속한 작물들의 역사 등등 참 많은 걸 썼지만, 정작 농산물을 향해서는 써 본 일이 없더군요.
그래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수신자는 ‘농산물’. 이 편지의 전문은 밑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편지란 자고로 발신자와 수신자의 만남 없는 밀회. 밀지로도 바꿔 써도 무방할 텐데요. 이번만큼은 농산물과 저의 밀회를 당신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수신자는 농산물입니다>
"당신 앞에서 이런 우주만 한 상상을 하는 게 현재적 휘말림을 벗어나는 저만의 방법이었던 겁니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땅과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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