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저의 가장 친한 친구, 현이와 처음 만난 건 한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였습니다. 저의 집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이었지만, 동네에 마땅한 놀이 시설이 없다 보니 놀이터에서 놀고 싶을 땐 꼭 그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에 가 그네와 정글짐을 타고 놀았습니다. 현이를 만난 건 그 놀이터가 제법 익숙해졌을 때였어요. 한낮에 놀이터에 도착했을 때 처음 보는 아이가 정글짐을 타고 있었습니다. 정글짐부터 타려고 했던 저는 우선 비어 있는 그네를 먼저 타야 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맞은편 정글짐 안을 종횡무진하는 아이에게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자꾸만 시야에 들어오니 저도 모르게 궁금해졌어요. 그 놀이터는 근처에 더 큰 놀이터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지 않았습니다. 낡기도 낡아서 아이들에게는 더욱더 여기에 올 이유가 없었어요. 반면에 저는 어찌 됐든 외부인이기도 하고, 사실 그때부터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성정이 발현된 탓에 그 놀이터만 찾았습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아예 없는 곳은 또 아니라 제가 방문할 땐 높은 확률로 아무도 없거나 끽해야 두세 명 정도 있는 게 전부였죠. 그런데 저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제가 좋아하는 정글짐을 타고 있으니 궁금해질 수밖에요.
새로 이사를 온 걸까? 혹은 그저 단 한 번의 우연도 겹치지 않았던 것뿐일까? 그네의 등속 운동에 힘을 가하지 않자 얼마 안 가 그네는 멈춰 섰습니다. 그네에서 내린 저는 모래 바닥을 살살 밟아 나가며 그 아이를 따라 정글짐에 올랐어요. 그리고 은근슬쩍 말을 걸었죠. 넌 몇 살이냐고. 이사를 온 거냐고. 나는 저기 있는 빌라에서 왔다고. 현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제가 던졌던 질문의 길이보다 몇 배는 더 긴 대답들을 내놓았습니다. 현이(가명)의 본명도 그때 들었죠. 나처럼 놀이터뿐만 아니라 캐릭터 카드도 좋아한다는 것도. 그게 포켓몬이었는지, 유희왕이었는지 아니면 디지몬이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날 다음에 만날 약속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예상하시듯 절친이 되었습니다. 날이 좋을 땐 놀이터에서 놀고, 날이 좋지 않거나 새로 생긴 카드를 보여 줘야 할 땐 현이의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고깃집 2층에서 놀았습니다. 카드를 자랑하고, 여분의 카드로는 "누가누가 가장 멀리 날리나" 같은 내기를 했어요. 현이와 함께한 2년 동안 내내 반복한 취미. 그때 제게 가장 친한 친구는 분명 현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죠. 생면부지의 사람과 그렇게나 가까운 친구가 된다는 게. 지금의 저는, 청년인 저는 일면식 하나 없는 사람과는 일체 대화를 하지 않아요. 일이나 친구를 통해 만나게 되는 인연은 좀 다른 문제지만, 애초에 어떤 연결 고리도 없던 사람과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불편하고, 지나친 상상에 조금은 두려워서. 그 시절 현이를 만났을 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분명 같은데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두려움 없는 관계의 형성이 꼭 아이여서 가능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중년의 어른들을 볼까요. 아니 그보다 더 멀리 있는 노년의 어른들을 보죠. 주위를 둘러보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분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에서, 공원에서, 관광지에서 처음 보는 게 분명한 두 사람이 혹은 몇 사람이 말을 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화가 시작된 후에는 누가 보아도 원래 알던, 그것도 아주 친한 사이처럼 보이죠. 당시 그 관계들이 현장을 벗어나서도 유효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현장에서만큼은 어린 시절 제가 현이와 친구가 된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어르신들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게 순수에 가깝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봐요.
누가 봐도 순수에 가까운 아이는 서로의 순수를 알아봅니다. 그 사이에 어떤 불순물도 없다는 걸, 자신이 순수로 다가서면 상대도 순수로 응대한다는 걸 알아봅니다. 그래서 쉽게 말을 트고 친구가 돼요. 저와 현이가 그랬듯. 노인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치열한 생을 지나 잔잔한 물살만을 바라보는 시간에 접어들면 남은 건 추억과 순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그간 쌓아 둔 추억을 회상하는 것과 이 추억을 잊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최대의 목적.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요. 누군갈 해하거나 의심하거나 미워하기에는 애초에 그럴 여유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회상과 잊지 않는 데에 온 힘을 쓰며, 남은 순수로 그저 상대를 대하는 게 노인이고, 누군갈 미워하거나 의심하거나 해하는 걸 배우지 못한 아이는 순수뿐인 몸과 마음으로 상대를 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쉽게 친구가 됩니다. 순수에서 가장 멀어지고, 아직 돌아갈 길이 먼 청년의 저는 그런 이유로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어렵고요.
어쩌다 보니 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순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현이를 말하려면 우리가 친구가 된 계기부터 말해야 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다시 현이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 이야기의 결말은 아니 관계의 말은 현이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함께한 지 2년 정도가 되었을 때 현이는 롤러블레이드 사고로 그만 생을 달리했고, 그때 저는 무언가에 쫓기듯 현이에 대한 모든 걸 정리했습니다. 참 미안하면서도 아쉬운 일이에요. 지금 다시 현이를 잃는다면 더 잘 애도하고, 더 잘 보내 주었을 텐데.
4월의 봄이 끝나자 한낮에는 여름처럼 햇볕이 뜨겁습니다. 이런 날이면 여름 내내 목덜미가 시커멓게 타 있던 현이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현이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제가 가장 순수했던 시절에 만난 현이에 대한 보다 많은 이야기는 밑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여름이면 목덜미가 시커멓게 타던 아이>
"나는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그걸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도 몰랐기에 그저 나보다 더 많은 슬픔을 아는 어머니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땅과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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