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여성 경매사님과 인터뷰를 나눴다는 이야기를 전해 드렸죠. 남자도 쉽지 않은 경매사 일을 여성이, 그것도 저와 동갑내기의 여성이 한다는 게 그저 놀라운 마음으로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평소 신체적 차이에서 오는 불가항력의 범주를 제외하곤 직업에 남녀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제가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는걸. 여성도 충분히 가능하고, 도리어 서글서글하면서 섬세한 그녀에게 경매사는 참 잘 어울리는 직업이라는걸.
3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눈 만큼 그녀가 제게 남긴 말은 참 많은데요. 그중에 유독 더 강하게 남은 게 있습니다. 그건 직업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실은 누가 먼저 꺼낸 말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우리가 함께 내민 대답은 이랬죠. "어떤 직업이든 그게 내 것이라면 결국 사랑하게 된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지도 몰랐던 경매사라는 직업을 수년째 이어가는 그녀. 직업 특성상 새벽에 일을 해야 해서 처음에는 잠조차 편히 잘 수 없는 이 직업이 어렵고 미웠지만, 이제는 경매사 일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애증의 관계지만 사랑도 있다는 점에서 이것도 엄연히 사랑이라며.
그녀와의 인터뷰도 끝나고, 글도 다 완성해 이미 선보인 지금도 저는 그녀와 나눈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못합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저는 제가 가졌던 모든 직업을 사랑했어요. 광기사, 과일 장사꾼, 작가 등 작가를 제외하곤 어느 것 하나 원해서 시작한 일은 없지만,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미워도 했지만 결국 사랑하게 되었죠. 작가 일도 그렇습니다. 처음으로 원하던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니 초창기에는 갓 시작한 연애처럼 매일매일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러던 게 어느 시점을 넘기자 미워졌어요. 써도 써도 늘지 않는 실력과 발전 없는 인지도에 괴롭고, 아무리 해도 큰돈이 되지 않는 현실에 환멸감을 느꼈습니다. 그런 중에도 무언갈 쓰는 제 모습은 속절없이 좋았고요. 누군갈 만나 대화하고, 그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건 언제나 짜릿했습니다. 아이러니하죠? 미워하다가도 그럴 때면 다시 사랑을 하는 게.
바라지 않던 직업을 가져 미워하다 사랑하는 것과 바라던 직업을 갖고 사랑하다 미워하고 다시 사랑하는 지금. 이렇게 보니 직업을 갖는 우리가 닿는 곳은 결국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미워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순서만 다를 뿐, 결국 모든 직업은 우리의 애증이 되는 게 아닐까요.
오늘은 이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열아홉에 처음으로 가졌던 직업, 광기사와 스물셋에 시작한 과일 장사꾼 그리고 서른하나에 어쭙잖게 이름을 달게 된, 제게는 그저 황송한 이름의 작가까지. 이 직업들과 함께였던 저의 삶과 이 직업들을 사랑하게 된 사연을 순서대로 들려 드립니다.
"바라지 않던 직업을 가지고 미워하다 사랑해 보았다. 바라던 직업을 갖고 사랑하다 미워하고 요즘은 다시 사랑하고 있다. 직업을 갖고 사는 한 그건 아마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땅과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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