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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Aug 03. 2023

전자책이 넘어설 수 없는 종이책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를 만든 지 약 1년 4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시간은 하루하루 더해지고 있습니다. 이 전자책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정식 출판물이면서 저의 첫 책이기도 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와 두 번째 책 <너와 나의 야자 시간>과 달리 자체 제작 및 판매한 독립 출판물입니다. 두 책은 언제든지 인터넷에 검색하면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같은 대형 서점 사이트에서 구매가 가능하지만, 이 전자책은 필연적으로 저의 스토어와 블로그에서만 구매할 수 있었어요. 그런 난점에도 불구하고 1년 4개월 동안 제법 많은 분들이 구매해 주셔서 이 자리를 빌려 새삼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를 “썼다”가 아니라 “만들다”라고 말한 이유에 대해 꼭 말하고 싶은데요. 만드는 작업이 쓰는 작업보다 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여러 달 동안 썼던 연재 수필 중 몇 개를 추려 순서를 정하고, 디자인을 하고, 글자의 크기, 행간, 자간 등을 조절해 최적의 형태로 만드는 건 제게는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이 책을 만드는 시간만큼은 작가보다 작가의 글에 물성을 부여하기 위해 움직이는 여러 사람들을 더 존경하게 됐어요. 그들의 고충이 얼마나 클지 아주 조금 가늠도 해 보면서. 앞으로도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는 “썼다”가 아닌 “만들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자책을 만드는 수고는 결코 종이책을 만드는 수고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되레 전자책을 만드는 건 종이책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홀가분하고, 비교적 안심이 되는 작업이니 수고가 덜하다고 말하는 게 맞을 거예요. 종이책은 앞선 전자책 제작 과정에 몇 배는 더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인쇄 업체를 선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내지와 표지의 재질, 인쇄 방식, 유통 등등 무수한 공정이 수반돼요. 그나마 유통은 일명 ‘배본사’를 이용한다면 책의 보관부터 대형 서점 공급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해 나름 수월한 편이지만 제작은 다릅니다. 이미 한 번 인쇄가 되어 세상에 나온다면 돌이킬 수가 없다는 불변의 진리 앞에 온갖 변수와 실수를 가늠하고 계속해서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죠. 인쇄 업체를 정하고 재료를 고르는 일은 그에 비하면 일도 아닐 만큼.


작가이자 헤엄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한 이슬아 작가는 그 부담감으로 인해 인쇄가 잘못된 책이 시중에 유통되어 패닉에 빠지는 꿈을 꾼 적도 있다고 말합니다. 종이책을 만드는 일에 대한 부담과 책임이 그만큼 크다는 거겠죠. 그에 비해 전자책은 설령 오타가 있더라도, 비문이 있더라도 언제든 재수정해 배포할 수 있습니다. 정보가 잘못되어도 문제없어요.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면 어제든 리뉴얼할 수도 있고요. 디지털 속에만 사는 건 그렇게 언제든 뜯어고칠 수 있으니 부담이 덜합니다.


나름 책을 만들어 파는 사람인데, 너무 무책임한 말일 텐데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은 전자책을 만들면서 그런 이점 앞에 단 한순간도 소홀해진 적 없습니다. 그 이점을 활용하게 될 미래를 꿈꿔 본 적도 없어요. 전자책을 만드는 모든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저 종이책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겁니다. 저는 그 수고와 부담과 책임을 다 질 수 없어 제 글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왔고, 이번에도 역시나 제 글을 전자책으로 만들려고 하니까요. 저도 종종 저의 이름의 출판사로 저의 책을 내는 것을 상상하곤 하지만, 아직은 마음도 실력도 준비가 되지 않아 이번에도 전자책이라는 계책으로 여러분과 또 만나려고 합니다.


이번 책은 되도록 가벼운 이야기만을 담으려고 합니다.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는 그 제목처럼 이별하는 것들에 관해 주로 이야기했어요. 거기에는 이별이 가장 극단적으로 해석되는 죽음도 있었고, 버젓이 어딘가에서 각자의 삶을 사는 우리지만 이제는 볼 수 없으므로, 그 또한 죽음으로 인한 이별과 다를 바 없다는 일명 ‘관계의 죽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꼭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고. 내게서 서서히 멀어지거나 잊히는 기억, 청춘, 장소, 물건과의 이별도 죽음과 다를 바 없다는. 살아 있지 않은 것들과의 죽음도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여전히 저는 이 책이 그 이름과 내용이 참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미래인. 예정된 생물학적 죽음에 모든 이별을 빗댄 것. 그것들을 그리워하는 일을 ‘애도’로 표현하고, 그 모든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계속해서 살아가려는 의지를 ‘허기’로 표현했습니다. 자화자찬 같은데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약간 무거워진 것도 사실입니다. 가볍게 산책길을 오르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싶었던 분들은 읽어 내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 누가 이별과 죽음을 두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 글을 읽기 위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가볍게 글로 책을 채우고 싶습니다. 미리 써 둔 글에서는 되도록 그런 글만을 추리고, 부족하면 새로 쓰기도 하면서 이번 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언제든 무심히 꺼내 들어 읽을 수 있고, 언제든 다음번에 계속을 기약하며 덮어둘 수 있는 가볍고 그러나 친근한 책으로. 성정을 버리지는 못하므로, 행여나 조금 무거운 글이 섞여 들어갈 수도 있겠습니다. 그건 너그러이 읽어주시고, 그 또한 사랑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되도록 여름 안에는 완성하는 것이 목표이고, 늦어도 가을을 넘기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아울러 동시에 이제는 저의 한 분야가 된 ‘인터뷰’글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난봄에 소개한 여성 경매사님의 인터뷰가 마지막이었으니, 글을 쓰지 않은 지 어느덧 4개월 정도가 지난 것 같습니다. 본업이 바쁘기도 했고, 올해 들어 유난히 섭외 쉽지 않아 피로감을 느껴 도외시한 것도 있는데요. 그러는 사이 농산물과 함께 사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쓰는 일이 목말라졌습니다. 얼른 누군든 만나서 몇 시간이 수다를 떨고 싶어요. 그 이야기를 아주 잘 다듬어 여러분께 들려 드리고 싶고요. 여전히 섭외가 녹록지 않겠지만, 인터뷰이는 언제나 반드시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하루빨리 그를 찾아 이야기를 듣고 쓰고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

https://smartstore.naver.com/siview/products/6445352915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땅과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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