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을 상징하는 건 무엇인가요. 뭔지는 몰라도 그건 분명 독자님 스스로 말할 수 있으면서 타인이 말할 수도 있는. 드물게 나와 세상이 동의하는 대답일 거예요. 아마 개수도 몇 개는 될 거고요. 저라는 사람을 상징하는 건 현시점에서 글과 과일, 농부가 아니지만 ‘농부’, 농산물, 농업 그리고 전통 시장 등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내게로 와 상징성을 띠려면 적어도 수 년은 함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것들 모두가 저와 족히 5년은 함께했습니다. 실은 더 긴 것도 있고 조금 모자란 것도 있지만 큰 차이는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같이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신기한 마음뿐입니다. 전통 시장 과일 가게 일을 계기로 농부를 만나기 시작했고, 그래서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누구든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요. 문득 “농업에서 태어난 과일을 파는 일을 시장에서 처음 했다”라는 명제는 사실 너무 당연한 거라 연관성을 찾을 필요도 없었겠다 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여간 다시 상징성을 이야기하면, 상징성은 비단 사람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국가에도 있고, 사물에도 있고, 형태가 없는 특정 기념일에도 상징성은 있습니다. 밸런타인데이는 초콜릿, 로즈데이는 장미, 빼빼로데이는 빼빼로 같은 게 그렇습니다. 이런 기념일은 비교적 구체적인 물질을 상징으로 제시하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에 보냈던 추석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전 국민 공통 기념일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대단히 전통적인 데다 규모도 큰 기념일이, 정작 손에 쥘 만한 상징성은 마땅히 없는 겁니다. 그러나 수많은 정황이 물질적 상징을 대신합니다. 귀향길, 안부, 장보기, 일 년에 두 번 가족들이 한데 모여 나누는 반년치의 대화, 차례, 선물 등등. 나열해 보니 관점에 따라선 만져지는 것도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역시나 가장 큰 기념일이니만큼 양도 많고요. 낭만에 살고 죽는 저는 기념일이면 꼭 그날의 상징적인 일을 하는데, 이렇게 물질과 비물질을 넘나들며 물량 공세로 상징을 밀어붙이는 명절에는 제 낭만의 행방은 묘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 낭만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급기야 제멋대로 낭만적인 상징을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전통 시장의 대목 장사에 뛰어든 것입니다. 제게는 그게 명절을 가장 진하고 길게 보내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무나 쉽게 생각할 수도, 따라 할 수도 없는. 준비도 길고 여운도 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고단한 명절을 보내는 게, 제게는 명절을 상징하는 것들 중 가장 으뜸인 일이었어요. 전통 시장 과일가게에서 수 년을 일하다 그만둔 뒤로 처음이니, 족히 4~5년 만에 명절 대목 장사에 여념이 없는 시장을 피부로 느끼고 왔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시장은 사실 제가 원래 일하던 시장은 아니었습니다. 전통 시장에서 일하는 동안 늘 함께였던 과일 가게 일도 아니었고요. 같은 인천에 있다는 점이 그나마 공통점이겠습니다. 아, 지역구로 따졌을 때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시장이라는 점도 똑같은데요. 이번에 그 시장에 있는 정육점에서 이틀간 대목 장사를 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일반화화하면 안되겠지만, 시장의 모습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도무지 지울 수 없습니다. 그때에 비해 첨단적으로 바뀐 부분을 제외하고도요. 고객의 나이대가 그때보다 많이 높아졌고, 조부모나 부모를 따라 장을 보러 다니는 아이들과 청년들의 수는 현저히 줄었습니다. 애당초 명절 장사는 시장 안 인파가 마치 성수기 캐리비안베이의 파도풀장처럼 빼곡해야 마땅하는데, 사람이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널널했습니다. 그때 제가 일하던 시장은 여기보다 통로가 훨씬 넓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산과 바다를 이루었는데.
그때 그 시장에 비해 여기는 주변에 대형 마트도 별로 없고, 똑같이 온통 주택가뿐이라 더더욱 의아했습니다. 그 시장과 적어도 비슷하거나 도리어 더 잘 되어야 하는 정도의 입지였으니까요. 시장이 변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백종원 씨가 충남 예산의 한 상설 시장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여 지금 한창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죠. 시장의 제2 전성기 아니 새로운 바람이 일었다고 평가되며 전국 지자체가 예산 시장을 벤치마킹하거나 아예 백종원 모셔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전통 시장은 어쩌면 지금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봐야 할 수도 있어요. 그에 비해 제가 본 시장은 몇 개가 고작이니, 이것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을 겁니다. 높은 확률로 제가 틀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테죠. 그러나 저는 자꾸 시장의 미래를 그리는 캠퍼스에 채도 낮은 물감을 올리게 됩니다. 예산 시장에 직접 가, 그 어마어마한 인파를 보고 왔는데도 말이죠.
우리나라 시장은 어떻게든 존속되기는 할 겁니다. 예산 시장처럼 식자재를 사고파는 기능뿐만 아니라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모습이 되어서든, 전통적인 기조를 유지하며 한길만을 걷든. 시장 앞에 '전통'이란 이름이 붙은 이상, 나라와 국민은 시장을 최대한 지킬 겁니다. 다만 그렇게 존속될 시장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탄생보다 사라지는 것이 더 많은 세상에서 시장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요?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런 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해요. 미리 말씀드리면, 사실 시장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을 거예요. 저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을 겁니다. 그 글은 밑에 링크에서 전해드립니다. 모쪽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독자님이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마음을 최대한 많은 이가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전통 시장은 사라져 가고, 나는 떠나고>
"아주 많이 전통적인 어른들이 덜 전통적인 젊은 세대들과 함께 사는 한 당분간은 계속될 풍경이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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