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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Dec 03. 2023

2017년 겨울에 만난 감귤 농부

문득 내가 알고 있는 타인의 이야기가 몇 개쯤 될까 궁금해졌다. 딸기, 포도, 자두, 참외, 감자, 토마토, 귤, 한라봉, 고구마의 농부들과 도매시장의 과일 중도매인, 전통시장의 과일 장사꾼 등 지금껏 써 온 수백 편의 글 중에 적어도 수십 편은 그들의 이름으로 쓴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땅에 신세를 지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누구든 만날 것이기에, 언젠간 타인의 글이 나를 주제로 한 글의 수를 앞설 건 자명한 사실이다. 자신을 주제로 한 글쓰기는 끝내 한계에 봉착하고, 그때가 되면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를 극복한다는데, 나는 타인을 말하는 걸로 극복하려는 듯싶다.


글을 쓰기 위해 누군가와 대화를 했다는 것이, 글의 주인공이 타인이라는 것이 인터뷰와 진배없다면, 나의 첫 인터뷰는 2017년 11월의 어느 날에 이뤄졌다. 지금보다 더 부족했던 시절의 글이라 지금은 내려놓은 상태지만(블로그를 뒤져보면 나올지도 모른다) 그때 제주도에서 만난 농부가 내가 처음 만난 농부이자 나의 첫 번째 ‘인터뷰이’였다. 오래된 기억이라 그와 어떻게 알게 되어 인천에 사는 내가 제주까지 향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때 분명 그의 귤밭 한가운데 있었다. 그를 만나게 된 계기 빼고는 거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뭐든지 ‘첫’이라는 관형어가 붙으면 기억력은 악착같이 그걸 붙드는 듯하다.


2박 3일의 일정이었지만, 인천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출발해야 했기에 첫날은 바로 숙소로 향했다. 늦게 도착하기도 하고, 예나 지금이나 운전을 두려워해 뚜벅이 신세다 보니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다가 발견한 게스트 하우스였다. 공항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가니 약 20분 만에 숙소에 도착했고,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나니 시간은 밤 9시를 가리켰다. 그리고 바로 시작되는 게스트 하우스의 술 파티. 생판 모르는 남녀가 한날한시에 같은 숙소를 예약했다는 우연 하나만으로 술을 먹고 논다는 게 다소 위험한 문화였지만, 당시 나는 그런 문화를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어 그저 웃고 떠들며 한껏 즐겼다. 그러고 보니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의 술 한잔도 그때 처음 이뤄진 것이구나. 처음 먹어 보는 제주의 소주 ‘한라산’과 처음 말을 섞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밤은 생각 이상으로 재밌었고 그만큼 후유증도 컸다. 다음 날 정오에 농부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새벽 내내 숙취에 시달리고 만 것이다. 다행히 오전 9시쯤 겨우 정신을 들어,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해 서귀포에 있는 농부님의 농장으로 출발했다.


귤 농부는 당시 삼십 대 중후반 정도의 청년이었다. 처음 전화 통화를 했을 때, 거친 사람일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는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성정의 사람임을 만나기 전부터 스스로 증명했다. 제주시에서 정반대 편에 자리해 있던 그의 농장을 대중교통으로 가기란 쉽지 않았다. 시내에서는 원활했던 버스 배차 시간이 시내를 벗어나 환승을 하려고 하니 기약 없이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미리 경로를 보고 시간을 계산한 것이었는데. 환승하려는 버스는 도무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의 환승이 남았는데 그건 또 어찌해야 할까. 택시를 탈까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비용이 들어 난감한 상태였다. 그때, 농부님한테 전화가 왔다. 역시 자신이 데리러 가는 게 낫겠다고. 앞서 공항까지 마중 나오겠다던 그의 호의를 한 번 거절했었는데, 또다시 물어왔다. 겉치레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실례를 무릅쓰고 현재 있는 위치를 말했다. 생각보다 많이 오셨다고, 거기라면 20~30분이면 도착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웃으며 끊는 그였다.


도민의 시간 예측은 정확했다. 20분 정도 지났을 때, 오래된 무쏘 차량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목소리로만 만났던 농부님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편안하게 농장까지 갈 수 있었다. 가는 길 내내 돌담과 그보다 약간 더 큰 귤 나무가 이어졌다. 잎새 사이사이로 바람이 거세게 드나들었고 볕은 좋았다.


우리가 보폭을 맞춰 귤밭을 걷는 동안 농부님께 지금은 극조생귤이 끝나고 조생귤 출하가 한창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러면서 제때 농장을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도 했다. 극조생귤은 여전히 푸른기가 남아 있는 귤이라 깔이 예쁘지 않아서가 이유였다. 오늘날 극조생귤은 전용 품종으로 길러지고 있어 맛은 걱정 없지만 깔이 예쁘지 않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왕이면 세간이 바라보는 귤의 자태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날씨가 궂었는데, 그의 바람을 하늘이 도와 우리는 아주 탁월한 날에 만났다. 


한편에서는 베테랑 이모님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귤을 따고 있었다. 색이 곱고 다부져 보였다. 사이즈를 보니 대체로 S~M 사이즈가 많았다. 귤 시장에서 가장 맛있다고 소문난 크기의 귤. 귤은 자고로 작은 것이 가장 맛있다고 알려져 있어, 장사꾼들은 S~M 사이즈의 귤을 소위 ‘로얄과’라 칭하며 판매를 하는데 그야말로 지천에 로얄과가 널려 있었다. 청명한 하늘 아래 초록이 짙은 잎새 사이로 짙은 주황빛의 귤이 흔들리는 모습은 설명하기 힘든 어떤 자태를 지녔다. 그건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시장에서 “조생귤 20개 3,000원”을 외치며 이 귤을 팔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그저 주머니를 배불리는 수단에 불과했던 그것이 완연한 생으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그럴 수밖에. 나는 지금까지 이토록 대단한 걸 얼마나 무심하게 다뤘던가.


흔들리는 귤에 심취한 사이 농부님은 넌지시 우리가 탁월한 날에 만났음을 한 번 더 짚었다. “귤을 따는 날이면 날이 참 좋아요. 내가 일부러 날이 좋은 날만 골라 귤을 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부모님 때부터 셈하면 수십 년을 귤을 따온 건데 그때마다 하늘이 오늘처럼 좋았거든요. 마치 귤 따는 날을 미리 알고 그때마다 누군가가 궂은 날씨를 거둬들이는 것 같달까. 생각해 보세요. 귤은 따야 할 시기가 정해져 있고 그때를 넘기면 상품성을 잃잖아요. 하늘은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꼭 제때 맑아져요. 오늘처럼.”


나는 그날부터 줄곧 농부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과일, 야채, 생선 장사를 ‘생물’ 장사로 칭했으나 단 한 번도 ‘생물’로 생각한 적 없던 날들을 뒤로하고. 비생물이 갖지 못한 생물만의 이야기가 너무도 반짝거리고 장황해서, 이를 기르면 서도 동시에 신세를 지고 사는 사람이 너무 고와서, 그들을 말하지 않으면 아깝기 그지없어서 쓰고 있다.


나는 운이 좋은 것이다. 적어도 쓰고 싶은 글이 없어 무너지지는 않을 테니. 도리어 써야 할 사람과 생을 채 다 쓰지 못할까 걱정이지.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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