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골에서 혼자 사는 여자

by 전성배

집이 전부인 마을에 사는 여자가 있다. 정확히는 슈퍼, 병원, 경찰서 등 어떠한 편의 시설도 없이 집과 논과 소와 산이 전부인 곳에서 여자는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여생마저도 이곳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가까운 미래에는 한 여자의 생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들었다 말할 수도 있겠다.


몸이 마음과 같던 시절, 떠나고 돌아오고를 제 몸으로 마음껏 할 수 있던, 남편이 아직 살아서 정정했던 날의 이곳은 여자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었다. 종종 자식들이 있는 도시에서 며칠을 보내도 보았지만 이곳의 그리움만 더 키우는 시간이었다. 심지어 외국을 나가서도 아주 잠시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는 감탄이 전부일 뿐 여자는 아니 부부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이곳을 그리워했다.


“아유 도시는 복잡해. 우린 이런 곳에서 살기는 글렀어. 시골이 좋아”


스스로를 울타리에 두는 걸 알면서도 그 안식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을, 자신들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아는 마음이었다.


사람이 머물만한 제대로 된 이유 하나 들 수 없는 이곳에도 사람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 정도가 아니면 대부분의 지역이 고만고만하던 때였다. 서울에서부터 차츰 전기가 보급되다가 충청도 차례가 되었을 때, 부부의 집에도 드디어 불이 들어왔다. 도로와 인도에도 가로등이라고 불리는 게 세워졌다. 밤이면 어둠이 전부인 곳에 드디어 윤곽이 드러난 것이다. 낮에는 기세 좋게 자신을 보여주던 것들이 밤에는 작은 불빛에 기대 겨우 모양새만 보여주는 모습을 여자는 경이롭고 또 아름다워했다. 후문에는 이웃집에 찾아온 자식들은 그 모습을 무서워했다고. 낮이면 밝고, 밤이면 어두운 게 당연한 시골 사람에게는 어둠과 무서움은 같은 선상의 말이 아니었다.


마을의 발전은 수십 년 전 불이 들어온 역사를 끝으로 더 이상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도로가 나고, 가로등이 좀 더 좋아지고, 귀농하는 사람들에 의해 곳곳에 조금 더 현대스러운 집이 지어지는 정도가 전부였다. 근간만 겨우 잇는 발전만 이어지는 사이 마을 주민은 서서히 줄어갔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 서울에서 살다가 노년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줄어드는 수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줄어드는 수는 곧 둘이었다가 혼자가 되는 사람의 수였다. 한쌍의 부부가 한날한시에 떠나는 요행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기에, 마을 사람들은 결국에 가서는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한참을 혼자 살다 겨우 자신도 떠나는 삶을 살았다.


여자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소를 잃은 외양간과 작은 별채 그리고 본집을 혼자서 지키게 되었고, 그러자 비로소 이곳의 어둠이 무서워졌다. 실은 둘이었기에 무섭지 않았던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된 지금, 이곳이 마치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이곳에 혼자 남아 이 지독한 외로움을 홀로 견뎌야 할까” 매번 스스로에게 묻고, 답은 하지 않은 채 괴로워한다. 그러다 가끔씩 자신을 돌보기 위해 찾아오는 자식들과 손녀들을 만나며 아주 잠깐 모든 괴로움과 두려움을 잊는다. 여자는 이 짓을 수년 째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이곳은 여자에게 더 이상 좋은 곳이 아니게 되었다. 돌아가고 싶은 울타리도, 어디에서나 그리워하는 장소도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이곳을 떠나지는 않는다.


이유는 모두가 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식들이 서울에서 같이 살자고 하는 말에는 요지부동이면서도 외롭고 힘들고 아프다는 말은 입에 달고 산다.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으니 너희가 나를 많이 보러 와 달라고, 이 어둠과 두려움에서 나를 아주 잠깐만이라도 지켜 달라고 바라면서. 결단코 떠나지는 않는다.


자식들은 알면서도 기어이 모르는 척 여자의 부름에 볼멘소리를 하며 그곳을 간다. 집이 전부인 곳에. 그 집마저도 상당수가 이제는 아무도 없어 흉물이 되어버린 마을로. 맨날 아프다 짜증 내는 엄마의 말에 잔뜩 불만을 가지면서도, 여자가 먹고 싶은 음식을 잔뜩 싸 들고 가서 여자를 먹이고, 집의 안과 밖을 쓸고 닦는다. ‘엄마’ ‘엄마’하면서 잔뜩 수다를 떨며 웃게 하는 것으로, 아주 잠깐 여자를 살게 한다. 그리고 끝내는 여자를 혼자 남겨둔 채 떠나간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아마도 여자의 생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 끝이 날 때까지 계속 반복할 것이다.


이제는 자식들도 안다. 둘이었기에 스스로 들어갈 수 있었던 울타리였음을. 그리움이었음을.



과일 장사꾼을 위한 이야기 <내가 팔았던 계절>

https://litt.ly/aq137ok/sale/Zm0Fk1U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대는 사랑을 저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