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기 전 살던 집은 나름 최대한의 효율을 생각해서 구한 2호선 역세권 원룸이었다. 2호선 낙성대역 근처였는데 집에서 역까지 5분, 강남역까지 지하철로 15분이라 출퇴근하기 좋았다. 1인 가구에 유용한 서비스와 상점이 즐비한 곳이라서 편리한 점도 많았다. 게다가 관리비와 약간의 월세를 합쳐서 집에 관련된 유지비가 한 달에 20밖에 들지 않는 곳이었다. 집주인이 수리도 해주기로 했고, 그 주변에서 둘러본 곳 중에 조건이 가장 좋았다. 잘만 버텨내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집을 계약하기 전 전에 살고 있던 남자에 대해서 듣게 되었는데, 직업은 공무원이고 6년 동안 이 집에 살다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나가는 거라고 했다. 집을 보러 갔을 때는 방 안에 라면박스로 가득차 있고, 박스들 사이에 침대가 파묻힌 모양새였는데,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는 궁서체로 ‘인생 2막’이라고 적혀있었다. 인생 2막이라... 그의 인생 2막은 집 같은 집을 산 후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쌓아둔 짐이 공간을 잠식했다고 할 만큼 여유공간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당첨되기 전에 적은 것인지, 당첨 후에 적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그 '방'으로 이사를 마음먹었을 때 그 남자처럼 그 방에서 인생 2막을 맞이하는 꿈을 꿨던 것 같다. 회사에서 잘 버텨서 연봉도 올리고 목돈도 모아 아파트를 사는 꿈.
도배, 장판, 화장실 공사는 집주인이 해줬고, 주방은 시트지를 새로 붙이고 손잡이도 바꿔주고, 옥색칠이 되어있던 창문은 떼서 흰색 페인트로 칠해줬다. 안 쓰는 물건을 거의 다 버렸고, 짐이 1톤 트럭이 헐렁할 만큼 적었다. 그렇게 다 버리고 나니 마음이 놓이고 정도 붙었다. 그렇게 애정을 많이 쏟아부었지만 그 ‘방'에서 사는 2년 동안, 가장 힘든 시기를 거쳤다. 자전거 사고, 우울증, 회사와의 관계... 마음과 몸 모든 것이 힘들었다. 집 때문만은 아니지만, 집이 영향을 안 끼쳤다고 할 수도 없었다.
장점만 가득 있을 것 같았지만,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은 시기에 좁은 공간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마음의 우울이 더 커졌다. 급기야는 몸과 마음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회사도 쉬게 되었다. 나는 효율을 추구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었다. 그 방은 일과 삶에 ‘감정'을 배제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사람에게 어울리는 방이었다. 나는 일에도 집에도 그게 참 안되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이사를 결심하고 집주인 할아버지께 만기에 이사할 거라고 말했다.
“진짜 나갈 거야?
계속 있으면 보증금 그대로 해줄게.
공인중개사에서 이 방 좀 고쳐서 보증금 1억 받으래.”
내가 사는 2년 동안 '방'의 보증금은 더 올라 1억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홍콩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4~6평 되는 원룸의 전세가 1억. 낙성대였으니까 1억이지, 이수나 방배동으로 가면 1억 5천은 줘야 했을 거다. 억 소리 나는 서울생활. 침대에서 집안의 전체를 살펴볼 수 있는 방에서 살면서, “한 사람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은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만, 나의 결론은 “최소 10평 이상은 되어야 한다.”였다. 집을 옮겨야 했다.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