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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글 Jan 29. 2019

서울에서 ‘베란다'의 가치



서울에서 ‘베란다'의 가치

서울에 올라와서 이제까지 10번정도 이사했다. 보통 집을 구하려면 열군데의 집을 본다고치면, 이제까지 본 집이 백군데는 넘을 것이다. 사회초년생때 적은 예산으로 집을 보러다니다 보니 기형적인 구조의 집들을 많이 봤다. 대부분 원래 원룸이 아닌 집을 구조변경한 집들이다. 한 집을 쪼개 두집으로 바꾼집도 있었고, 많으면 3개, 4개로 쪼개 원룸으로 만든 집도 봤다. 이렇게 오래된 집의 구조를 변경한 집들은 구조자체가 이상한 집도 많다. 집 한채를 두채로 나누면서 벽 공사를 덜 했는지 두채의 사이에 문이 있다던지, 베란다에 욕실을 만들었다던지, 1층인데 주소는 1층 오른쪽이라던지. 그 외에 주로 보게되는 유형은 ‘원룸신축’으로 분류되는 수익형 원룸건물들로 정형화된 구조를 띄고 있다. 대부분 정사각형 구조에 풀옵션인데, 주방수납장에 드럼세탁기가 같이 있고, 창은 방에 큰거 하나, 욕실에 하나다. 베란다는 없다. 서울의 평범한 1인 가구들은 대부분 이런 집들에서 자취를 시작한다. 


이런 작은집들은 대부분 베란다가 없다. 아마도 베란다가 수익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것이 살 '방'도 없는데 베란다같이 ‘잉여공간'을 두는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땅 값이 너무 비싼 서울에서는 그런 잉여공간을 갖추지 못한 집들이 많다. 그래서 작은 공간에 주방, 욕실, 방, 베란다의 기능이 겹쳐진 공간을 구성하게 되는데, 지극히 '생존을 위한 방' 에 가깝다. 원룸방에 빨래를 널어놓고 밥을 먹는 순간들이 누적되면 집 다운 집, 베란다가 있는 집이 고파진다. 고향에서 가족들과 살 때는 베란다가 없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베란다의 결핍을 느껴본적이 없었다. 서울에서 혼자 살아보고 나서야 베란다의 소중함에 대해 깊이 느낀다. 


빨래건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빨래 좀 밖에 널고 싶다.


누구나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울에서사는 1인 가구에게 '베란다'는 특별하다. 베란다는 사용자에 따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잉여공간' 이자 삶의 여유를 대변하는 공간이다. 필요없는 물건을 넣어두기도 하고, 식물을 기르거나 야채를 말리기도 하는 '노는 공간' 이다. 원하는대로 쓸 수 있는 이 '노는 공간'은 삶을 분명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예산안에서 베란다 있는 집 찾기

베란다가 있는 집으로 옮기고 싶었다. 기능이 혼재된 '방'에서는 그만 살고 싶었다. 햇볕이 바짝들 때 빨래를 널고, 식물을 몇 가지 기르다가 작은 베란다 텃밭도 만들수 있다면 즐거운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베란다는 몇 평 안되는 공간이지만 베란다가 있는 집을 구하려면 최소 10평 이상은 되어야 한다. 최소한 빌라의 투룸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원룸에 비해 예산이 1.5배로 훌쩍 뛰었다. 서울의 중심부와 가까운 곳에 투룸이상의 쾌적한 공간을 구하려면 신혼부부집 정도의 예산이 든다. 입지냐 공간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나는 이미 역세권 원룸에 살면서 효율을 추구할 수 없는 인간임을 깨달은지라, 입지를 조금 포기하더라도 공간이 더 쾌적한 곳으로 정하고 노원의 소형아파트를 알아봤다. 5년전쯤 노원의 소형아파트에서 2년 정도 산 경험이 있는데 주거환경의 장점이 많았던 기억도 한 몫 했다.


노원에 있는 아파트들은 대부분 1990년 즈음 지어진 건물들이 대부분이라 연식이 오래되긴 했지만, 대부분 세대수가 많고 공실률이 낮아서 관리가 잘 되는 편이다. 찾아보면 리모델링이 된 아파트도 많다. 아파트가 딱히 건물의 개성은 없지만, 편의를 위한 시설과 공간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점은 매력적이다. 원룸에서 몇 년 살다 보면, 주방과 방이 분리되어 있고, 베란다와 창고로 쓸 수 있는 작은 공간을 갖춰져 있는 아파트가 너무나 쾌적하게 느껴진다. ‘방'이 아니라 ‘집'이라 부를 수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노원에 있는 소형아파트는 대부분의 서울 직장인들이 전세로 살 수 있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우연히 마음에 쏙 드는 집과 만나게 되었는데, 무엇보다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와 탁트인 전망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집을 보러 갔던 때는 늦가을이었는데, 집 밖으로 펼쳐진 공원에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빨갛게 노랗게 수놓고 있었다. 원룸에 살았을 때는 가을을 만끽하기도 전에 계절이 겨울로 바뀌어있곤 했다. 이 집에서라면 회사를 정리하고 완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평수의 잉여공간이 내 삶에 여유를 불어넣어주기를 바라며 이사를 준비했다.


*다음편에서는 '비자발적 미니멀리스트' 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서울의 삶에 대한 생각 나눠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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