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취향보단 생존 방식이 된 ‘미니멀리즘'
2년 전, 어떻게 하면 이 작은 공간을 좀 더 넓게 쓸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던 중에 마침 미니멀리즘에 대해 푹 빠지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심플하게 산다'라는 책을 통해 미니멀라이프가 많이 알려졌다. 나는 ‘심플하게 산다'와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을 본 뒤로 지난 2년간 적은 물건으로 단순하게 살아가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해보았다. 작은 공간도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해법을 찾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미니멀라이프를 선택한 이유는 취향, 가치관 이전에 물리적인 공간이 좁았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협소한 공간에 사는 사람 중에는 나처럼 비자발적인 미니멀리스트도 많지 않을까.
먼저 공간을 잠식하고 있는 쓰지 않는 물건들을 처분했다. 현재의 내가 쓸 공간도 부족한데 언제 쓸지 모르는 물건에게 내줄 수 있는 공간이란 없었다. 갖고 있는 물건의 개수를 줄이고, 종류를 줄일수록 물건을 관리하는 비용은 줄어들고 삶과 공간의 여백은 커졌다. 수납용품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예를 들면 수납용품이나 수납용 가구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의 티셔츠만 소유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냉장고에도 오래된 음식이 없도록 적게 사고 제때 소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화장품 개수도 계속해서 줄여나갔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한 개 사서 말끔하게 다 써보는 경험은 꽤나 쾌감을 주었다.
그 쾌감 덕분에 생활 전반에 걸쳐 실천하게 되었는데, 엄마가 커다란 반찬통에 음식을 챙겨 보내주면 그게 그렇게 싫었다. 냉장고에 빈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집에 쓸모가 없는 물건은 단 하나도 없었으면 했고, 부피가 커다란 물건도 다 치워버리고 싶었다. 오래된 앨범 사진까지 버리려다가 나쁜 년이 된 기분이 들어 다시 주워 담은 적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강박이 생기고 있었다. 쇼핑할 때도 불필요한 소비를 막아주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무언가 사고 싶은 욕구를 많이 참았다가 가끔 쓸데없는 걸 사는데 터뜨리고 그 물건을 또 버리지 못해 안달 나곤 했다.
미니멀하게 살다 보면 도 닦는 사람처럼 구매욕도 줄어드는 것 아니었어?
약간의 강박을 느낄 만큼 물건의 가짓수를 줄이고 기능이 없는 제품을 사지 않다 보니 집은 쾌적해졌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더 이상 나에게 필요한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애착을 가진 물건이 집에 하나도 없음이 씁쓸했다. 그러다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나타내는 물건으로 가득 찬 친구의 집에 다녀오면 장식품에 대한 구매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디퓨저, 캔들, 벽장식... 기능적으로 필요하진 않지만 예쁜 건 사실이잖아.
왜 나는 소유와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이렇게 고민할까.
첫째는 서울에서 넓은 공간에서 살기 힘들기 때문에 해법이 필요했고,
둘째는 해법이라고 찾은 미니멀한 라이프가 삶에 애착을 줄어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식물을 기르면서부터 미니멀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게 되었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은 포기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식물들이 집안에 애착을 가진 물건이 있다는 건 삶에 큰 활력을 준다는 걸 상기시켜주었다. 애착을 가진 물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물건을 통해 집에서 안락함과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때론 소비가 탐욕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욕망을 소비로 해소하지 못한다면 무엇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인간은 소유하는 물건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존재가 아닌가.
작은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 중에 혹시 나처럼 쾌적한 공간을 위해 미니멀한 삶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내려놓고 좋아하는 품목 하나쯤에는 기분 좋게 소비하고 공간도 내어주자고 말하고 싶다. 힘든 서울살이, 작은방에 살지라도 삶에 더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쓰다 보니 외래어를 남용한 기분인데요.. 미니멀리스트, 맥시멀리스트를 대체할 한국어가 없네요. 읽으시면서 마치 영어 용어가 난무한 패션잡지 기사를 읽을 때의 기분이 드셨다면, 저도 쓰면서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