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글 May 01. 2019

때론 밥보다 더 고픈 대화

소규모 워크숍, 살롱 등 참여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흔하다. 이런 곳에서 펼쳐지는 대화는 나도 모르게 디저트가 떠오른다. 그 날의 주제가 일생의 고민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취향과 여가시간의 영역에 가까워서일 것이다. 반면 매 끼니 먹는 밥만큼 간절한 대화도 있다. 끼니를 챙기지 못했을 때의 허기만큼이나 영혼에 허기가 졌을 때 그러하다. 특히 관계의 결핍 또는 어떤 이유로든 대화의 단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필히 대화에 굶주려 있을 것이다. 최근 대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경험이 있었다.




이웃 할머니의 영업


이사 오고 첫 분리수거 날 버려야 하는 박스가 산더미였다. 낑낑대며 끌고 가고 있는데 같은 층에 사는 할머니가 날 보시더니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고 기다려주셨다. 감사하다고 건네자마자 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이사 왔어? 전세야 자가야? 누구랑 사는 거야? 회사는? 고향은?" 애매하게 대답하며 적당히 둘러댔다. 불쾌한 호구조사 때문에 분리수거를 하면서 더 이상 마주치기 싫다고 생각했다. 먼저 올라가시길 바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엘리베이터를 잡고 기다리고 계셨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물어보지 않았는데 당신의 신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셨다.

"아들내미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는데 봐줄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내가 같이 살면서 봐주고 있어. 며느리는 회사에 다니고..."대충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급하게 발걸음을 뗐다. 불행하게도 같은 방향이라 복도를 걸으며 좀 더 듣는 둥 마는 둥 해야 했는데, 이번엔 옆 아파트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옆 아파트가 임대아파트라서 못살아서 얘들도 질이 나쁜 것 같아. 걔네는 저기 중학교로 따로 간다지? 우리 아파트는 그런 사람들은 없어서 다행이야. 아가씨도 이사 잘 온 거야." 호구조사에 이미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버렸는데, 옆 아파트 험담을 하기 시작하니 아침에 받았던 배려까지 다시 돌려드리고 싶었다. 당신이 집으로 들어갈 찰나에 나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셨다.


차나 한잔 들고 갈려?


할머니는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아침부터 나에게 나름 자신의 방법으로 영업을 했던 것이었다. 자기 이야기해주기, 동네 비밀을 가장한 험담 나누기로 밑밥을 뿌리면서 말이다. 나는 요즘것들처럼 "저는 할 일이 있어서요^^" 하고 쌩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할머니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낯선 사람에게 대화를 청할 만큼 대화가 고파보였다. 물론 노인들뿐 아니라 대화가 고픈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을 테지만.





노인이야기 들어주는 청년예술가 프로젝트


서울시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년예술가를 뽑는다는 글을 보았다. 노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청년예술가와 나누고 그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을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기반으로 프로젝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일방적 소통은 아닐 것 같다. 노인들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연스레 젊은층과 대화가 이어질 것 같다. 대화가 고팠던 어르신들에게도 신나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아 보인다. 이 프로젝트 관련 서류를 보다가 청년예술가 심사평을 발견했다. 


갈수록 고령화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기보다는, 우려의 대상으로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미래와 관계한다. <노인이야기 들어주는 청년예술가 프로젝트> 2019년도 청년예술가 공모에는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고령화’ 문제를 거시적 관점에서 혹은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고민하는 지원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본 프로젝트의 속성상 노인들의 삶을 마주하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고, 또 이 과정에서 청년예술가는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동원하여 모두가 공감할 만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이중과제를 안고 있다.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지금까지 작업 활동에서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작업해온 경험이 있는지, 또 이 과제에 대한 본인 작업과 연관성이 있어 이 경험이 본인 작업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검토하였다. 이 사업이 작게나마 노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모두에게 ‘행복하게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 http://spp.seoul.go.kr/main/news/news_report.jsp#view/282720?tr_code=m_snews)


노인들의 소외된 삶의 원인을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즉 '대화의 결핍'에 있다고 본 지자체의 깨인생각에 놀랬다. 세대 간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이니만큼 잘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좀 더 찾아보니 지자체에서 건강돌봄사업의 일환으로 '말벗'을 만들어주기도 한단다. 말을 나누는 벗. 나는 말벗이 있다. 그냥 적어보는 것인데도 치유되는 느낌이 있다. 이렇게 지자체에서 힘쓰고 있다는 것은 대화를 나누는 게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몸의 건강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대화


친구 A가 얼마 전 아기를 낳은 친구 B에게 물었다.

A : "지금 너한테 가장 결핍된 게 뭐야?"

B : "대화"


아기가 100일이 되기 전에는 엄마들은 장시간 외출이 불가능하고 외부인도 방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우리는 B의 집에 놀러 가서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마구 수다를 떨었다. 육아로 힘들었을 친구가 그 시간만큼은 즐거워 보여서 기뻤다. 노인, 육아를 막 시작한 엄마를 빼고도 대화의 결핍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이라도 그럴 수 있다.


최근에 나 또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점 점 허기가 지지만 아무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다. 관계나 대화나 책이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매번 깨닫기 때문이다. 소소한 바람이 있다면 소설의 제목에도 있듯이 '내게 무해한 사람'을 만나 일상을 나누고 용기를 북돋고 위로하고 싶다. 나 또한 상대에게 '무해한 말벗'이자 허기진 영혼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