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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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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글 Jun 13. 2019

[유서 수집-4] 자살한 사람들의 유서를 분석한 논문

친구 K로부터 '자살한 사람들의 유서'를 분석한 논문이 있다는 걸 듣게 되었다. 논문에는 약 450개 정도의 실제 유서가 실려있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던 유서와 달리 논문에 실린 유서에는 지금 당장 눈앞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질듯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죽음을 앞둔 감정은 매우 생생하고 절망적이기도 때론 냉정할 정도로 이성적이기도 했다. 위태위태한 생각을 활자로 읽으며, 절벽으로 걸어가는 사람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바라봐야만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가지 이 연구의 독특한 관점은 자살이 삶의 프로젝트의 일부일 수 있으며, 성찰의 과정을 거친 후의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자살을 미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연구자도 자살을 예찬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논문에서는 연령별로 유서를 모으고 자살 원인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아래는 논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이다. 유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참고 논문]

자살행위의 '성찰성'과 '소통 지향성' : 1997년~2006년 유서 분석과 '소통적 자살'에 관한 연구 = 'Reflexivity' and 'Communication-orientedness' on suicide action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62320d408eb94fceffe0bdc3ef48d419


본 연구는 자살이 실패와 좌절 속에서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포기해 버리는 회피적인 행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한 의도를 가진 적극적인 행위일 수 있다는 것임을 보이고자 하였다. 따라서 자살자들이 선택한 죽음은 단지 끝이 아니라 '성찰적으로 구성되는' 삶의 프로젝트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며, 이와 같은 죽음의 선택은 자신의 과거의 삶과 미래의 죽음의 결과에 대한 성찰의 과정을 거친 후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4p


이 연구는 자살을 삶을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기획의 일부로서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인식하고자 하며, 자발적인 죽음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말하고자'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자살을 성찰적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바라보자는 제안이 결코 자살이라는 행위에 대한 예찬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살자들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문제와 실패는 그들의 왜곡된 인지로 인하여 실재의 현실보다 과장되어 이해되었을 수도 있으며, 그들이 기획한 죽음의 전략이 객관적으로 최선의 선택인 경우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죽음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의도 역시 그들의 바람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 역시 없는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통념적으로 생각하고 있듯이 자살을 선택하기보다는 그 결심으로 삶을 선택하는 것이 그들이 바라는 것을 더 확실히 이룰 수 있는 타당한 방법인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는 것이다. -14~15p


[관련 책]

도서관에 들렸다가 위 논문을 쓴 박형민 박사님의 책도 발견하여 읽어보았다. '자살, 차악의 선택'이라는 책인데, 논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물론 우리 엄마는 책상 위에 놓인 이 책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 나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냐며... 그만큼 '자살'이라는 말은 활자 자체로도 충격적이다. 논문과 중복되는 내용이 많으니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042144


또 유서와 자살에 관한 연구를 담은 책이 있다. '이제 그만 생을 마치려 합니다.'라는 책인데 절판되어서 중고서점에서 구매하거나 도서관을 이용해야 한다. 위의 책보다는 더 쉽게 읽을 수 있고 이 책에도 해외 사례이지만 실제 유서가 여러 개 담겨 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50426



내가 유서에 관심을 가지게 계기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생을 어떻게 마감해야 할지 생각에 빠지면서부터이다. 다소 절망적인 심리상태였을때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유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었다. 첫 유서에 대한 글을 쓰고 몇 달이 지났다.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니 자기 철학의 부재로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던 게 더 큰 이유였다.



몇 달간 마지막 여생을 그린 영화를 보고 남의 유서를 찾아보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나의 쓸모를 발견하여 세상에 도움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던 무엇이든 간에 사랑하는 것을 찾아 삶을 누릴 수 있어야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삶의 유한함을 느끼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나의 유서도 완성해봐야겠다. 누군가 한다던 매년 유서를 쓰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유서를 검색해서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극단적 결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더 잘살아나가기 위해서 유서를 써보시기를 부탁드린다.




*

해당 글에서 생각을 발전시켜 '80년대생들의 유서'란 책을 만들었습니다. 

80년대생 14명의 인터뷰와 유서를 담았습니다. 

https://linktr.ee/hong_g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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