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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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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글 Oct 24. 2019

왜 살아야 하나요?

우울증에 걸리면 찾아오는 질문

우울증은 흔히 죽음을 향해가는 병이라고 한다. 더 적나라하게는 우울증의 끝은 자살이라는 것을 유명인들의 사례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사실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기도 하는 만큼 우울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감기가 낫듯 회복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초기에 치료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증상이 깊어져 오랜 기간의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이 된다. 몸이 약하면 감기가 천식이 되고 폐렴이 되듯 마음의 병도 그렇게 커갈 수 있다. 우울증의 수순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처음 우울증이 찾아오면 깊은 무력감을 경험하고 증세가 깊어지면 살아가는 것에 흥미를 서서히 잃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들고 결국에는 스스로 고립되게 된다. 그 후에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도대체 왜 살아야 하나요?


나는 언제부터 우울증이 시작된 거지?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었다. 모든 것을 중단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한참이나 가진 후에야 그때의 내가 왜 힘들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어떤 노력을 해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무력감을 경험한 것이 컸던 것 같다. 사회, 회사에서의 무력감, 인간관계의 회의감, 경제적인 압박감 등이 나를 짓눌렀던 것 같다. 또, 가진 능력은 빤한데 경쟁에서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나 자신을 옭아맸었다. (그렇다고 내가 1분 1초를 다투며 긴장감이 폭발하는 금융권 같은 데서 일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쉬어야 할 타이밍을 계속 미루다가 아 내가 많이 아프구나 라고 느꼈던 일이 있었다.



퇴근길 달리는 버스 바퀴


2년 전 즈음, 늘 그렇듯이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회사 앞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 당시 다니던 회사는 서울에서 외진 곳에 위치해있어 버스로 2~3 정거장을 가야 지하철로 환승할 수 있었다. 외진 곳이지만 규모가 꽤 큰 회사들이 위치해있었고, 퇴근시간만 되면 각 빌딩에서 나온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버스정류장 앞 2~3차선 도로에 퇴근을 하는 차로 도로가 꽉 막혀있다가 버스가 한대 오면 우르르 사람을 삼켜 지하철역에 나르곤 했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버스의 커다란 바퀴가 눈에 들어왔다. 정류장으로 굴러오는 커다란 바퀴. 사람을 태우고 냅다 달리는 바퀴. 빠르게 굴러가는 차들의 바퀴를 보면서 "지금 저 바퀴에 뛰어들면 죽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몇 초 후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데 흠칫 놀랐다. "아 나는 지금 정말 아프구나. 나는 쉬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이 든 건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명절에 엄마에게


작년 추석이었나 설이었나. 겨울옷을 입고 있었던 게 기억나는 거 보니 설이었나 보다. 이미 곯을 대로 곯은 나를 만나러 엄마가 오셨다. 반포 고속터미널 근처에서 밥을 먹고 다시 내려간다 하셨다. 그래도 명절이니 평소보다 좋은 밥을 먹고 싶어서 백화점 식품관으로 향했다. 마침 회사에서 줬던 상품권도 있었다. 한정식 집에 가서 점심을 시켜먹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그럭저럭 별 건더기 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엄마는 이제 그만 버스 타고 내려가시겠다고 해서 동생하고 차표를 끊고 있으라 하고 후다닥 ATM기로 가서 엄마 드릴 용돈을 뽑아왔다. 엄마는 늘 그렇듯이 뭘 이런 걸 주냐고 너 쓰라고 하시며 손사래를 치셨는데... 순간 짜증이 확 솟구쳐서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내일은 못줄 수도 있어!! 줄 때 그냥 받아 쫌!!"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하냐며 먹먹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를 마중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왜 그랬을까 계속 생각했다. "응. 엄마가 생각한 게 맞아. 나는 내일 죽어도 아쉬울 게 없어."



엄마에게 독한 소리를 내지른 지 일 년쯤 지난 것 같다. 그 사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자'라는 마음으로 8개월을 푹 쉬었고, 우연한 기회에 새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명쾌한 답을 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처럼 "인생 아름다운 거예요.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와요"라고는 절대 못하겠다. 다만 무해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적당히 벌고, 덜 탐하고, 덜 소비하고, 내가 사는 땅에 해를 덜 끼치는 방향으로 살아나고 싶다. 더 가지는 게 좋다고 하는 사회에서 덜 가지는 방식으로 살아나가고 싶다. (그런 질문은 아무도 하지 않겠지만) 누가 왜 사냐고 묻거든 "죽을수만 있었으면 죽었을텐데 그럴 용기는 없고요, 다만 무해하게 살아나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이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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