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모님 집에 갔을 때 엄마가 김치를 새로 담갔다고 했다.
-오빠한테 보내줄 건데, 너도 보내줄까?
-힘들게 뭘 보내, 조금만 가져갈까?
김치, 파김치, 알타리....뚜벅이는 가져가기 힘들다. 이미 집에 오갈 때 조금씩 가져간 일은 있었지만 김치 냄새가 조금 신경 쓰이기도 하고, 여러 종류를 가져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냥 조금씩만 보내주라.
-보내는 김에 다른 것들도 보낼까 해. 오빠한테는 종종 이렇게 보내.
나는 아무렇게나 배를 채우는 타입은 아니지만, 제대로 먹는 타입도 아니다. 집에서 혼자 있으면 즉흥적으로 먹고 싶은 대로 해 먹고, 배달도 시켜 먹는다. 하지만 엄마의 반찬이 우리 집에 있다면, 나는 매 끼니마다 조금씩 그 반찬들을 클리어해야 하는 미션처럼 수행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난 우리 엄마의 음식을 사랑한다. 순두부찌개만 빼고, 엄마가 한 음식은 다 맛있다.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바깥에서 사 먹는 순두부찌개가 훨씬 맛있고, 엄마도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실을 충분히 안다. 하지만 내가 그 음식들을 사랑하는 것과 그것들을 택배로 받고 싶지 않은 것은 정말 별개의 문제이다. 이 사실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일까?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지만 나에게는 정말 그렇다.
엄마와 나는 충분한 대화를 했고, 나에게는 김치만 보내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오늘 택배를 받았다. 절반 이상이 김치가 아닌 다른 반찬인데, 내 의사 전달이 약했던 걸까? 화가 조금 났지만 엄마에게는 조금만 티를 내기로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기분이 나쁜 듯하지만 귀여운 말투를 이용해서, 약간만 표출했다. (옹졸한 딸이라서 미안) 바로 전화가 왔고, 엄마는 귀여운 말투로 김치가 녹을까 봐 다른 반찬들도 함께 보냈다고 했다. 다른 반찬들과 국, 찌개를 얼린 것도 있었다. 이건 엄마가 정말 매번 사용하는 수법이다. 날 사랑해서 그런 것이니, 고마워하고 넘어가면 좋겠지만, 매번 이러면 정말 화가 난다. 이럴 거면 대화는 왜 하는 걸까?
- 왜 이렇게 화를 내.
- 아니, 나랑 약속했잖아. 엄마도 그러겠다고 했잖아. 이렇게 고생해놓고, 엄마도 내 짜증 듣고 싶지 않잖아, 나도 짜증 안 내고 싶단 말이야.
- 알았어, 끊어..
- 하...알았어, 잘 먹을게.
뚝. 전화가 끊겼고 내 기분은 정말 최악이었다. 반찬을 보낸 게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한 대화는 뭐였을까? 이번뿐만이 아니라 매번 비슷한 이유로 싸우는데, 나는 그 정도면 내 의사를 충분히 밝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일부러 귀여운 말투로 넘어가려 한다. 마치 그 사이의 대화는 없었던 것처럼. 사랑으로 베푸는 호의인데 그냥 좋게 넘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나도 내가 나빴다. 하지만 사람이 수백 번 말하면 그 의견도 조금 반영되면 좋겠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 행복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행동으로도 이어진다면 좋지 않을까? 내가 엄마의 바람대로 집에서도 엄마의 반찬을 먹는 대가로 엄마는 나에게서 큰 짜증을 받았다. 저울의 균형이 쏠려도 너무 쏠렸다.
기분을 조금 전환한 뒤 반찬 정리를 했다. 지퍼백에 포장된 반찬들은 정말 잘 정리되고 꼼꼼하게 포장되어 우리 집에 도착했다. 힘들었겠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맛있게 먹을까 기대하며 요리하고, 포장을 했을까.
반찬통으로 옮기고, 저녁을 먹을 그릇에 덜어두고 엄마표 비지찌개도 끓였다. 정리한 반찬통과 오늘의 밥상을 찍어서 엄마에게 보냈다. 하트를 가득 안고 있는 곰돌이도 함께.
- 잘 먹을겡
일부러 귀여운 말투를 사용했고, 밥을 다 먹어 갈 때쯤 엄마에게 답장이 왔다.
-ㅇㅋ
엄마는 기분 전환을 했을까. 기분 전환이 될 일이 과연 있었을까. 오늘도 엄마에게 못을 박았다. 마지막으로 보냈던 메시지들이 다른 과정 없이 엄마에게 전달됐다면, 엄마의 고된 노동은 행복으로 전환됐을 텐데.
엄마 미안해. 그렇다고 해서 내 의사 표현을 무시하진 말아줘. 끝까지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이게 엄마 딸인걸. 하지만 엄마를 사랑하는 내 마음도 알아줘. 다음번에는 10초 생각하고 짜증을 줄여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