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하지만 만족은 못합니다

감사O 만족X

by 이정우 글

오늘이 며칠인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글을 며칠만에 썼는지는 항상 잘 기억하는 편이다. 글이라는 일정으로 시간들을 기억하는 것 같다. 일부러 나에게 기억되기 쉬운 날짜들을 업로드 날짜로 고르기도 한다. 20, 21, 25, 30이 왠지 업로드 날짜로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그 정도 날짜가 되면 저절로 글들을 더 올리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몇 달 전부터 문서 한 쪽을 차지하고 있던 글도 공개된 날짜로만 기억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까지 기억되는 것이니 감사하려 한다. 이 글은 사일만에 업로드된다. 보통 5일에 한 번 업로드를 하는 편이었고 한 번은 더 자주 올려보기 위해 4일만에 올렸다가 일상의 박자를 놓쳐서 글을 꾸준히 쓰면서도 6일만에 새 글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이 글은 다른 글들과는 다르게 업로드 날짜를 생각해놓지 않았다. 3일 정도 후에 글 하나를 더 올려야겠다는 어렴풋한 생각은 있었지만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부담감에 더 준비할 시간을 가지고 돌아오려고도 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금방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혹시 몰라 브런치에 접속해보니 로그인이 풀려있지 않았다. 보통은 잠깐 창을 닫기만 해도 로그인이 풀렸는데 며칠만에 하는 접속에도 로그인 상태인 걸 보니 더 늦어지며 자책하기 전에 글을 쓰라는 신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거기에 여유와 남은 생각들을 더해서 이 글을 완성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면서도 그만큼 거짓된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감사한다는 말을 할 때엔 의도하지 않아도 눈을 마주치며 얘기하지 않게 된다. 부끄러워서 그렇다기엔 나는 너무 좋은 말이나 너무 나쁜 말을 했을 때만 돌이켜보면서 부끄러워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말은 했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진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감사하다는 대답을 했을 때는 화가 나 있는 상태였을 때가 많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저 빨리 대화를 피하고 싶어서 적절한 대답을 한 것 같았다. 내가 어떤 하루에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인데 나보다 더 높은 꼭대기에서 나를 걱정하는 시선에 남의 이야기에 끄덕여주듯 해야했다. 결국엔 걱정해주는 질문들인데 걱정은 그 순간만을 책임지는 것이어서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기분에 뜨거운 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내 미래를 나보다 걱정해주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냥 지나가야지.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의 나는 화가 낮은 꼭대기까지 나 있었다.


만족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좋다고는 말하지만 더 좋은 것 옆에라도 가면 좋다고 하던 것도 나쁘다고 말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래서 원래 내가 놓여있던 곳을 돌아설 기회가 없었다. 내 인성은 그게 지켜줬다. 나는 어느 장소에서나 쉽게 만족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그 자리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 다른 이가 욕받이가 되어 지켜주었다. 모든 게 시작될 때만 해도 같은 위치였는데 한때는 나와 비슷한 것 같아서 질투하기도 하던 그 사람이 어느새 먼지 쌓인 구석에 놓여있는 처지가 되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상황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나는 이미 여러 사람들과 가까워졌음에도 목재 같은 사이의 사람들이 아닌 그 욕받이와 더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욕받이가 아닌 존재 자체의 이름을 터득하게 하고 싶었고 그 자리는 내가 지킬 가능성이 높은 장소였는데 꽤나 잘 적응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에게 넘어간 것이 미안해지기도 했다. 어디서나 그 자리를 비워놓지 않고 꼬박꼬박 채워내려 한다는 것이 더 따뜻해질 수도 있었던 나의 마음을 내려앉게 만들었다.


감사와 만족이 섞일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감사하며 만족하면 그건 겸손이었다. 나는 겸손하기엔 내가 너무 갖춘 게 없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을 가끔 하기도 했다. 근데 그런 생각들이 더 들기도 전에 나를 둘러싼 시선들이 차례대로 그걸 알려주었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나중엔 겸손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와 너무 많이 멀어져 있었고 겸손해지기 위해 마음에 녹슨 것처럼 보이는 자만들을 담아야만 했다. 그 욕받이 친구는 자만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자만할 틈을 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내가 그 친구라면 차라리 투명인간이 되기를 바랐을 것 같다. 그러다 위기에 놓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투명인간이 되보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람은 호기심과 뭉쳐진 뒤엔 겸손하기 힘든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욕받이 친구는 불만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게 사람들이 그 친구에게 가진 불만이었다. 그 친구는 도움받기에 적합한 모습이었다. 원하는 도움이 뚜렷했고 그만큼 자신의 상황이 혼자 이겨내기에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를 돕지 않으면 더이상 세상에 따스한 온기라고는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근데 사람들의 반전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 사람의 눈, 코, 입의 크기가 자신감과 함께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감사한다는 것은 슬픈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 그래서 조금은 더 편리해지는 것. 나는 그 빠른 속도에 몸둘 바를 모른다.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는 자신이 지향하는 것이 없고 좋아하는 물건은 있어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단 것. 그래서 매일이 어두워지고 빛을 깨울 방법은 알지만 힘도 없고 희망도 없어서 모두 놓아버리는 것.


감사는 하지만 만족은 못한다. 더 혼자이면 좋겠고 더 함께였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나는 사람을 단 하나의 존재로 구분하지 못하는 편이다. 욕받이와 쓰레받기를 헷갈려서 가끔 내 고통마저도 너무 미안해질 때가 있다. 힘든 상황이 와도 그 상황을 얘기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나이지만 나 역시도 자책은 피할 수 없다. 굳건하게 서 있듯 했지만 그동안 무시하고 모른 척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그 안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많았다. 비참함으로 입꼬리를 내리며 자책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욕심이 많다. 잃어버린 것들을 그저 시간으로 받아들여도 이젠 하나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함을 멈출 수가 없다. 잘 이겨내고 싶은 마음보다는 이겨내야 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목적지를 찾아 돌아간다면 비로소 두려움은 끝날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더이상은 나를 헤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다. 원하는 것을 얻으니 이젠 뭔가 잃은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지고 모든 마음 잃은 듯한 나의 구멍에 허기가 채워진다.


늘 그렇듯 내가 바뀔 거라는 걸 알려주지만 오늘 같고 싶은 마음이다

그저 더 좋은 것 없이 오늘처럼 힘든 언덕 한개씩 더 넘으며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감사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은 이 상황이 변할까봐 두려운 마음이다

그래서 난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오는 것이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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