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벽에 기대 우는 사람도 있고 잠들지 못하는 밤에 우는 사람도 있으며 거울 앞에 선 비루한 자신을 바라보며 울먹이는 사람도 있다. 이토록 사람의 비참함은 다양하고 크다. 그리고 사람은 비참할 때 글을 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겠지만 뭔가 더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글을 읽긴 하지만 그 글을 읽으며 글 쓰는 자신을 계획해보진 않는다. 애초에 나의 좋은 것을 조금 더 늘릴 생각으로 책을 집었다는 건 그 안으로 가까이 파고들려는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이미 가진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미움도 주고 생각도 내보일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절망한 사람은 문화로 위로받는다. 절망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대부분 문화로 위로받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답답한 마음에 에세이를 읽으려 한다는 것은 뭔가 더 얻고 싶은 게 아니어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건 지금 있는 힘겨운 것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읽으려고 선택한 한 편의 에세이는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제목은 나 자신을 무너지고 싶게 만들고 그 안의 문장들은 실제로 나를 무너지게 만든다. 에세이를 읽고 싶었던 사람은 너무나 공들여서 쌓아온 일상들이 있어서 무너지고 싶은 사람이었거나 일상의 소중함을 되찾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세이를 읽을 때엔 책을 마음까지 가져다 대려 할 때가 많아서 직접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에세이 작가 중에는 책 하나에 무너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만큼 힘든 시간이 끝나지 않으니 이젠 이겨내려는 마음보다는 힘들어할 때 생기는 '힘'들을 어떻게 하면 안고 살아가면서도 덜 힘들 수 있을지를 판단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결정들을 두고 손가락질하는 시선들도 많다. 하지만 나에겐 그만큼 이겨내려 하는 의지가 큰 속마음으로 여겨질 뿐이다.
요즘엔 밖에서 우는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예전엔 가끔씩이라도 거리에서 우는 사람이나 곧 울 것 같은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다. 안타깝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매일이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매일이 힘든 하루는 아니었으니 우는 모습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다섯 편의 글을 쓰며 다섯 번 울었다고 하지만 울었던 횟수가 그것보다 적은 것 같기도 하고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너무나 슬픈 눈물은 기억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너무나 슬퍼서 흘렸던 눈물은 뚜렷하게 기억되는 것 같았다. 그 눈물들의 기억을 따라가 보니 나의 옆엔 항상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울면 그 눈물의 횟수들은 자연스럽게 세지 않게 됐던 것 같다. 지금은 눈물을 흘려야만 울었다고 하지 않는다. 대책 없이 너무나도 답답한 마음이 생길 때 울었다고 하고 곁에 사람이 있어도 외로울 때 울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제 답답할 때만 울게 되는 것 같다. 나의 다섯 편의 글들에는 아픔이 담겼고 행복도 담겼는데 모두 행복까진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어떤 장소에 놓여도 외톨이가 되는 나였는데 사람들의 관심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답답한 일이었다.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서 마음이 한 번 더 울었다. 오늘도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걸어간다. 쓸쓸한 사람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선가 들렸던 목소리가 들려도 마주하기 두려워서 모른 척하고 지나가던 나의 걸음이 멈춘다. 분명 밖에서 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는데 모두의 마스크가 젖어있다. 무슨 일일까? 오랜 시간 지났으면서도 아직 지속되는 일인 것 같아서 애써 묻지 않으려 한다.
나의 글은 슬프거나 우울하다고 한다. 근데 난 그걸 잘 모르겠다. 그래도 구분해보자면 나에게 슬픈 글은 진심을 표현하는 글인 것 같다. 모든 글이 비슷하게 슬프다 느껴지는 걸 보면 진심은 담겨진 것 같아서 안심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와닿을 진심이 담겨졌다는 게 불안해지기도 한다. 사람은 누군가가 진심일 때 잘해주려고 한다. 그게 본능이고 암묵적인 규칙인 것 같다. 근데 난 본능도 싫고 암묵적인 건 더더욱 싫다. 그래서 그저 조용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조용하면 그것 또한 우울한 것이 되겠지만 마음 한가운데에 우울하고 싶은 마음 누구나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너진 게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힘든 걸 표현하려고 눈물을 흘리지만 실제로 힘든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와 혼자 힘들 때는 눈물이 잘 없다. 우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나 지금이나 눈물을 누군가에게 내가 위험하다고 말하는 신호로 쓰는 것 같다.
슬픈 사람이 울지를 않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다. 흐르지 못한 눈물들은 어디론가 떠나가지 않고 그 마음에 그대로 있다. 거리에서, 누군가의 곁에서 울고 있던 사람은 혼자 울고 있거나 그 울음도 지쳐서 마음 한가운데를 지키는 슬픈 답답함을 털어내지 못할 것이다. 슬픈 사람이 오지 않는 장소는 행복할 수가 없다. 사람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이 사람을 도와주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슬픈 사람이 피하는 장소라는 건 그만큼 두려운 장소라는 것이다. 슬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많았기에 두려움을 솔직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돕겠다고 나선 사람이 그 솔직함을 문제 삼으며 돌아설 때가 있다. 나의 상황은 이렇고 이런 점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흔한 대화일 뿐인데 다른 이들은 슬픈 것도 숨기며 사는데 너는 그렇지 않다며 화를 내는 것이다. 결국엔 기꺼이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나 역시도 돌아서는 길에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창백해 보였다. 행복을 추구하려고 해도 아름답지 못할 때엔 행복해할 수 없다. 그 아름다움은 조건이 없을 때 나온다. 조건 있는 도움은 논란거리고, 조건 없는 도움은 칭찬거리리나 눈물거리가 된다.
나는 내가 써내려가는 몇 편의 글들이 일주일의 한 번 위로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왕이면 내가 슬픈 사람으로 비추어지길 바란다. 사실 슬프지 않은 사람의 위로는 그리 와닿았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위로할 의도는 없어서 나의 글에 위로를 담지는 않으려 했다. 직접 위로할 생각은 없었고 그저 모두에게 다르게 읽혀질 문장들이 몇 명에게 천천히 위로로 다가가기를 바랐다. 나는 어둠 속으로 숨겨진 울음들이 다시 거리로 나오기를 바란다. 그리곤 그런 눈물들을 보고 잠시라도 정적이 흘렀으면 좋겠다. 울지 말라거나 혼자가 아니라거나 그런 흔한 말 집어넣고 다시 답답할 때만 우는 사람이 될 때까지 그 순간을 정적으로 위로해주기를 바란다. 이해받지 못한 눈물들을 미움 없이 바라봐주기를 원한다.
어쩌면 정말 일주일에 한 번은 위로가 될지도 모를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이 눈물 흘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고, 마음이 울컥해도 그것을 눈물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결국 눈물은 인정받은 이후부터 눈물이 되었고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더욱더 세게 흐르는 것이 눈물이었다.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쌓이는 힘듦들을 눈물로 흘려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서로에게 잘 끄덕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고개도 숙일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인사를 피했고 일주일에 한 번 위로는커녕 일주일에 일곱 번 욕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분해서 흘린 눈물은 마음속에 쌓여버린 힘듦을 흘러가게 하지 못했다. 결국 힘듦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이후부터 힘듦이었고 가까운 곳은 보지 않으면서 이미 멀다고 인정해버린 사람에게만 인정받으려 애썼다. 그 사람이 나의 힘듦을 인정해주면 모두의 시선이 원점으로 돌아올 것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내가 될 수도 있었고 가족이 될 수도 있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눈치채지 못하는 동안 눈물은 상처로 메말랐고 이해받지 못한 나의 마음은 같이 메말라갔다. 그래서 앞으로 눈물 흘리지 않겠다고는 다짐할 수 있어도 울지 않겠다고는 다짐하지 못하겠다. 이런 마음을 보고 그저 이겨내기 싫은 마음으로만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지금의 나는 이겨내는 것까지는 생각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울어버리지 못한 사람은 눈물을 안쓰럽거나 귀칞게만 바라볼 수 있고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사람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시선과 닿았을 때 억지 부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어느 순간에 어떤 글을 통해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무너졌더라도 그 글과 시간을 원망하진 않는다. 예전엔 그 대신 나를 원망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땐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한 문장씩 쓰는 것에 대해서 책임감이 크다. 마음에 담아지는 글 하나에 오래도록 끌어왔던 것을 완전히 놓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젠 나도 놓는 것이 약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글로 인해 무너진 사람에서 글로 인해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사람은, 눈물은, 나의 마음은 약한 것 같다. 강해지려고 해봐도 그게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제대로 가져보지도 못한 책임감을 천천히 가져보려 하는 태도를 보면 글은 강한 것 같다. 글은 나의 것이 아니어서 약할 순 없는 것이다. 사람을 눈물 흘리게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강한 것이었던 때가 많다. 그리고 그 눈물로 힘들었던 것들을 모두 끊어낼 수도 있었다. 나는 나의 글이 너무 무거워서 다섯 번 울고는 나의 글이 너무 가벼워질까 봐 다시 몇 번이고 한숨으로 울었다. 그 순간에 떠오른 한가지 생각이 있었다. 그래도 이런 울음이면 극복의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울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