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은 없다

어디에나 아픔은 있다

by 이정우 글

아무리 눈을 감고 생각해봐도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알고 보니 내 마음속만 보고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그 누구도 정상의 기준을 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익숙함에 속아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몰고 있었다. 나를 미워하는 것 같은 시선을 나도 미워하며 마음이 식어 있었다.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은 꽤 자주 상처를 남긴다. 그 안에 들지 못한다는 건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상처가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많은 것을 가리며 또 상처를 받아야만 한다. 나쁜 추억까지 모두 들여다보고 와도 이 근처에 정상은 없다. 다만 비정상도 없다.


나의 확신이 틀어지는 것은 괴로운 과정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이었고 이해로 다가가면 미움으로 맞받아치는 하루들이 모여 후회할 1년을 만들었다. 내가 지켜온 것이 당연하게 이상하다는 시선은 나를 유일하지 못하게 했다. 스스로의 가치를 믿지 못해서 더욱더 주변의 기준으로 가까이 스며들게 되었고 정상은 없다는 나의 말에도 속으로 비정상인 사람 몇 명쯤 생각했던 게 밝힐 수 없는 나의 부끄러운 어둠이었다. 눈물이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나약해져서 ‘이 세상에 정상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가요’라는 질문에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비정상에 넣어둘 것 같았다. 마음이 줄어들거나 스며들면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게 된다. 비정상으로 여겨져서 괴로운 사람들이 생기는 건 어쩌면 익숙함 때문이었을 수 있다.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기 어려워서 나도 항상 처음처럼 나로서의 존중을 받지 못했다.

많은 것을 극복하고 내달려서 이제는 행복하고 싶었지만 기쁨 대신 내 의도와는 다른 하루들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고 많은 것이 끝나갈 때 즈음에야 한 가지를 기억해낸다. 어디에나 아픔은 있다. 그저 행복해지고 싶어서 많은 것들을 모른 척했을 뿐. 내가 정상의 축에 들지 못하는 모습이라도 상처받지 않는다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다름과 상처는 같은 것이었다. 상처를 피해도 봤지만 그것도 상처일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몇 번 상처를 받은 후 나의 마음을 속삭이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정상은 있다. 다만 너의 행복 안에 내가 없어서 내가 샘을 냈을 수 있다. 난 정상이 아니어도 행복하고 싶다는 꿈을 멈춰야 하겠지만 이젠 다른 것이 꿈이니 바뀐 꿈을 찾아 나아가면 되는 거니까. 아, 세상은 그것마저도 이해하지 않았지.


더 이상 정상적인 하루가 없어도 그저 바라보는 모습은 조용하기만 할 테니 당당히 정상이라고는 말하고 싶다.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했던 게 아니라 나 자신은 상처받기 싫은데 그 와중에 강해 보일 방법을 찾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넓은 곳에 있어도 나의 시선 너머에 한숨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내가 행복한 순간에도 힘듦에 눈물을 숨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내가 나중엔 저 자리로 내몰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리 두려워하며 이기심을 품었다.


늘 그렇듯 너무 짧거나 너무 긴 말은 확실히 기억되진 않을 것이다. 어쨌든 정상이 아니라는 건 언제나 비난받을 이유가 되어서 행복하진 못할 것 같다. 난 정상의 기준을 모르겠어서 오늘도 많이 두렵다. 지금도 나에게는 함부로 정상의 기준을 정하는 사람이 강자여서 고개를 들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지 못하겠다. 정상적이란 사람들의 관심 덕분에 내게는 정상적인 날이 없겠지만 그래도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정상이란 기준에 부합해서 미소 짓고 있는 사람들은 그럴듯한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니라 의지하기 두려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잘 찾은 것뿐일 수 있다.


기다림은 어쩌면 가장 큰 다가감일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는 상처를 만들지만 그 순간만큼의 침묵은 설명할 수 없는 유대감을 만든다. 결국에 나의 모든 기대들은 의심하지 않고 사람들을 믿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왔었다. 그래서 정상의 기준을 정하지 말자는 나만의 주문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랬다. 하지만 어떤 단체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다름으로 받게 될 고통을 감내하는 일이었다. 묘한 침묵 속에서 힘이 없어 휘청이는 고개가 끄덕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견디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고개를 들고 싶고 다름을 다름 그대로 놓아주고 싶다. 정상은 없다. 그러나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


고통을 받는 일은 선택받는 일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어느 날 고통의 초대를 받아 쉽게 벗어나질 못한다. 시작엔 금방 끝날 것 같은 경험으로 여겨지지만 때를 알 수 없이 찾아온 고통은 끝날 때도 알 수 없어서 낯선 곳에 고립되는 것과 같다. 알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며 울먹이는 일, 그 울먹임에 정상답지 않다며 비난받는 일 모두 낯선 곳에서의 험난한 생활과 겹쳐지는 일이다. 하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머물러 있어야만 해서 우리는 각자를 도울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아름다운 고통은 없다. 당신은 그곳에서 지켜봐줄 수 있겠지만 나는 대처법을 모르고 태어나 슬프게도 당신에게로 갈 수가 없다. 이해받을 고통은 없다. 벗어나고 싶지만 아직 다른 마음에 놓여있는지 보여드릴 여권이 없다.


그 누구도 함부로 아픔을 비난으로 건드려볼 순 없다. 누구나 겪는 아픔이라며 아픔을 정상화시킬 수도 없다. 알고 보니 정상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는 이유로 힘들어지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는 바램은 그저 나의 길에 미움이 없기를 바라는 바램이었다. 누구나 겪는 것이 되어 잊혀질 아픔은 없어야 한다. 상대방이 자신에겐 중요한 게 아니라며 나의 어둠을 마음속으로 버려도 아픔은 아픔대로 남아있기에 그 유일함을 알아주어야 한다. 아픔이 아픈 것을 바라보다가 그 아픔마저 내쳐져서 씁쓸해진 표정을 더 아픈 공감으로 바라보는 것이 이제는 내 마음이 정상으로도, 비정상으로도 향하고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미안하도록 나의 아픔마저 소중한 나의 것이라는 걸 잊고 있었어서 다양한 날이 허무해지는 지금. 이제야, 정상은 없다.


어렵게 눈을 뜨고 눈부심을 감당하는 지금이 시작이다. 그 누구도 아픔을 막아둘 수 없다. 상대방이 괜찮을 줄 알고서 아픔을 막아두는 일 또한 무심하게 상처 주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상처를 극복하지 않고 그런 상처들을 위로하기로 다짐했고 시작은 늘 그렇듯 어려웠지만 이제야 맑은 하늘이 보인다. 잊혀질대로 잊혀진 시간들은 누가 갚아주긴 할까? 오랜만에 앞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하루의 의문 하나가 내 앞을 막는다. 그 의문은 나와 같은 이유로 힘겨워하는 사람의 힘든 이유가 정상이냐며 묻는 누군가의 질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당신이 어제처럼 힘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정상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이었다. 모두를 부정하게 만들었으니. 이때까지 눈을 크게 뜨지 못한 이유는 너무 어두운 곳에 있었던 것과 감당하기 힘들 만큼 밝은 곳에 있었던 것이니 이제는 눈물 없는 시선을 가져보자. 많은 곳에서 멀어져 왔다. 어렵게, 정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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