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
며칠 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첫 업로드로는 어떤 게 좋을지 고민을 했고 써놓았던 글들 중 가장 나다운 의미를 담았다고 생각한 <정상은 없다>를 완성시켜서 업로드했다. <정상은 없다>는 사실 브런치에 업로드할 생각으로 쓴 것은 아니었다. 다른 곳에 올리려 하다가 원하는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아서 미뤄두던 글이었다. 그럼에도 그 글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원했고 그래서 미뤄두던 것도 있었다. 완전함과 상관없이 <정상은 없다>는 한 문장씩을 써내려갈 때 후회가 남지 않는 글이었다. 그만큼 온전히 나다웠고 굳이 내 표현을 받아들이게 만들려고는 하지 않은 글이었다.
<정상은 없다>에는 내가 정상이라는 내용도 비정상이라는 내용도 전혀 담기지 않았다. 일부러 비정상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상처도 나열하려하지 않았다. 불리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되는 이유는 결국은 이해하며 돕지 않을 거라는 이유가 그 단순한 물음에 담겨져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더이상은 상처주기도 싫었고 상처받기도 싫었고 그 바램은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말들에 더 철저하게 상황들을 피해갔었다. 만약 모든 상황 중 하나에라도 부딫혀봤다면 <정상은 없다>라는 글의 내용 자체도 바뀌었을 것 같다. 그래서 기준의 동떨어진 곳에서 바라본 정상을 쓸 수 있었다. 결국 모두가 정상보다는 비정상에 가까웠지만 그게 당연한 비난의 이유가 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것이니 반응이나 숫자에 신경쓰지 않으려 했고 앞으로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불안하지 않게 시작점을 찍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3월마다 학교를 가고 회사를 가는 이유가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그저 나의 말이 전해지고 받아들여지는 과정 자체가 나를 들뜨게 만들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같지는 않았다. 부담도 되었고 이렇게 쉬운 것이었을까 싶을만큼 허무하기도 했고 어디선가 내가 읽히고 있다는 게 신경쓰이기도 했다. 나는 마음이 좁은 사람이어서 좋은 대답을 하진 못했다. 나라는 문제가 아닌 그 문제가 내뱉는 푸념들에 답을 해주는 분들이 늘었고 원래의 상태가 아니니 언젠간 사라지고 언젠간 당연해질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나의 마음이 왜 뒤엉켰을지 생각해보니 변하는 것은 원래 아픔이었고 왜 아픔인지 생각해보니 흔들림으로 인해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던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원래는 별 볼 일 없는 아이였다. 느린 속도에 아직도 그러냐는 따짐을 많이 들어야했고 그것은 가까운 사람들의 포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었다. 안 될 것이라고 하는 말들에 이후의 들려올 좋은 말들마저 듣지 않으려 했고 풀리지 않는 질문을 풀어나가려 하다 마음이 떠나버리는 건 항상 나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풀리지 않는 문제를 왜 자신 있게 풀려고 했던 건지 모르겠다. 결국 나를 화나게 하던 관심도 관심이었다. 관심은 나를 해결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사실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틀째에 조회수 200회를 넘겼다. 어떤 분들이 이런 작은 세상에까지 관심을 가져오시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생각보다 나와 같은 이유로 힘든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고 숨기게 만든 주변 때문에 비정상으로 잘 살아갈 수 없었지만 너무 빠른 주변에 무뎌지며 걸어가는 사람들과 너무 휑한 주변에 마음의 추위를 피하는 것이 가장 급한 사람들도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조금 어긋난 상태에서 가장 원만하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당당했던 것은 그만큼 떳떳해도 되는 좋은 마음이고 원만하던 곳도 만족하던 주변이 아니어서 그랬던 것인데 모두 품어서는 안 될 소원을 품은 듯 속도에 내쳐졌다. 그래서 글을 읽는 것 자체가 많은 분에게 '나'의 속도를 되찾는 행동이고 나도 같은 이유로 그러고 있는 중이다. 느리고 싶은 사람들과 느려서 힘든 사람들이 모여 그 숫자가 모인 것이 기적이었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힘들어서 만들어진 기적이니까. 하지만 기분을 깨트리는 기운 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부담을 주는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견디느라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미안할 수도, 고마울 것도, 사랑할 이유도 딱히 없으니 그저 수고했다는 말로 수고를 덜어주고 싶다. 그러면 어두운 기적이 생겨도 침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삼일째엔 조회수 300회를 넘겼다. 1000회가 되었을 날까지 떠올려보았다. 하루에 100회씩 쌓여가는 것이 마음에 바람이 들어오게 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온기가 낯설어서 그런지 며칠을 멍해져 있었다. 이러면 평생 따뜻하지 못할 것 같은데 믿기 싫게도 온기가 거칠었다. 내가 거친 건지, 온기가 거친 건지 모를만큼 온기를 모르고 있었다. 행복도 슬픔도 충격으로만 받는 내 마음을 아는지 다음날엔 스무분 정도만 봐주셨다. 그러고나니 다시 차가운 현실감을 느끼고 글을 써내려갔다. 누군가 내 글을 찬찬히 읽어본다는 건 나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표시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많은 것이 의심스러울 때엔 모두가 나를 조금씩 뜯어보고 있는 것으로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감정만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받는 게 서툴었을 뿐, 많은 선물들을 받았다. 사람보다 선물이 더 기억에 남지 않게 따뜻함들을 읽어내려갔다. 나에게 조건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는데 매일 같은 낯설음에 조건없는 마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받을 수 있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감사하는 것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길의 처음이라고 말하기까지 수많은 글을 썼고 수많은 글을 지웠고 멀어진 마음을 덮었다. 오후를 위해 오전이 존재하는 날들이 많았고 오전이 나를 위한 시간이 된 적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작하는 마음에서 나를 위하진 않은 것 같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서툴게 흘러갔다. 그래도 무너지는 것도 마음을 닫는 것도 여러번 연습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처음으로 나를 위한 시작을 해보고싶다.
나에겐 받기 서툰 관심을 느끼며 내가 나를 정말 사랑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이해하는 정도였다면 시선들이 기쁘기만 했을텐데 그 관심이 독이 되어 나를 무너트릴 날들과 이미 무너져버린 날들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그 모든 게 다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걱정이었다. 당장의 좋음과 그럴듯함보다는 안전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때는 이해받길 바라는 나를 품어줄 수 있는 게 나밖에 없다며 허무해했고 이해해줄 시선들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막상 원하던 시선이 밀려오자 내가 사랑하던 나를 빼앗긴듯한 상실감이 느껴졌다. 나의 기준에서 좋은 글들은 어떤 해석 없이 완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은 나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보여져야 미워하기라도 할텐데 하루의 힘듦을 모아서 따지고 싶은 사람들은 나와 다르게 웃고 있는 게 새로워보여서 올해의 처음을 힘겨워했다. 귀찮다며 미뤘던 연락들과 두렵다며 덮어둔 부탁들은 나를 금방 잊혀지게 만들 것 같았고 마냥 행복해지며 자리를 잡으면 또 다른 시작이라며 나를 다시 끝으로 몰리게 할 것 같았다. 나의 얼룩진 시작은 이전과는 다르게 끝을 위한 시작이 아니었는데 예전의 기억들과 같이 끝을 향한 시작이 되어가는 것 같았고 그래서 두려워하던 것을 도전했다. 그게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하는 것이었고 생각한 것만큼 거창하진 않았다. 하지만 보여지기 위한 나의 변화 자체가 끝으로 한 발짝 다가가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을 했다. 그렇게 두려움은 제자리일 거라는 해답을 찾았다.
관심이 다가올 때 내가 기쁠 수도 있었고 피할 수도 있었으며 심하면 무너질 수도 있었다. 계속해서 올라갈 것만 같던 조회수는 점점 더 내려왔고 5일만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관심이 많을 때는 부담을 느끼고 관심이 적을 때는 안타까워하며 다른 이유로 불안해할 것이다. 누가 알아주긴 할까라고 생각하니 많은 관심이 왔고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니 휑한 주변만 바라보게 되었다. 관심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와 상관없이 너무나 생소한 것이니 나는 잘 대응해야 한다. 관심을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는 한걸음 멀리 서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도 자주 보고 관심과는 상관없이 나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관심에서 조금은 멀어지기로 했다. 대신,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