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순수

초콜릿 치워!

아이가 초콜릿이 싫다고 말했다

by 이정우 글

초콜릿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다. 하지만 사탕한데 밀리지 않는데도 사탕보다 부르기 어렵다는 이유로 조금 덜 불릴 때가 많다. 영어를 발음하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원어민스러운 발음이 필요해서 초콜릿 앞에서도 초콜릿을 사탕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원어민의 발음을 들어보지도 못한 아이들은 그것을 이유로 초콜릿을 편하게 불러볼 수 있다.


"쪼콜릿" "초코릿" "초콜릿"


발음들을 한데 모아보면 딱히 틀리다고 말할만한 것도 없다. 어떨 땐 어린아이의 발음이 가장 정확하게 들리기도 한다. 사실 틀림의 기준이 모호하기에 나는 틀렸다는 말에 죄책감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발음이고 당연한 단어인 것들이 영어의 본고장인 나라들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당장 초콜릿만을 봐도 미국식 발음만으로는 "초클릿"이니 비틀린 단어가 형체를 찾지 못한 채 아직 같은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뿐이다. 비틀렸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같은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안타까운 때의 나를 닮았고 한때는 옳은 것으로 불리던 것이 제대로 확인받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틀린 것이 되어버리는 것은 어색한 사람들끼리의 대화를 닮았다. 사람 자체가 너무 마음에 들거나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고 그런 감정을 너무 감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니 사람들 속의 한사람은 언제나 한가지 언어처럼 자리잡힌다. 영어와 한국어가 연결될 수 있기에 더 다른 점이 많은 것처럼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계절보다 다르다는 것은 어떤 감정이 치우치더라도 바꿔낼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이 바뀌듯 초콜릿을 향한 아이의 마음도 바뀐다. 초콜릿을 건넬 때 아이가 하는 말은 "초콜릿 치워!"이다. 초콜릿이 너무 먹고 싶을 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선 받아든다. 한 번은 말이 없고 또 다른 한 번은 소리를 지르니 초콜릿이 너무 싫어졌나보다하고 다음에는 초콜릿을 건네지 않으려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다리는 것을 가장 잘하는 것이 아이이고 기다리는 것의 의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하는 것보다는 멍하니 정해진 자리를 지키는 지친 마음에 가깝다. 기다리는 것은 외치는 것이 아니라 바라는 것이다. 너무 바라다보면 고개보다는 마음이 아프기도 한다. 아이가 마음을 감수하고 초콜릿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존심은 알아도 마음은 모를 나이인데 자꾸만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으려 하는 것 같은 득도한 아이들이 있다.


아이는 초콜릿이라는 말과 그 아끼는 초콜릿을 치우라는 말을 모두 부모님에게 배웠을 것이다. 그러다 이유 없이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은 앞으로 없을 거라는 걸 알게 되고 배운 두 개의 말 중 후자인 "초콜릿 치워!"만을 뜻을 모른채 습득했을 것이다. 아이는 나이 밖의 영역까지 공부나 새로운 단어로 표현해냈을 때는 초콜릿을 받았을 것이고 나이에 해야 할 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는 "초콜릿 치워!!"라며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때로는 초콜릿을 원하기만 해도 반사적인 교육이 나왔을 것이다. 아이도 느낌표 한 개 정도의 몫은 하니 어른의 소리는 느낌표 서너 개까지의 자리를 웃돌았을 것이고 분명히 정해준 바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화가 난 것 같은데 초콜릿에 화를 내니 그때부터 초콜릿은 보상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의식했을 것이다. 아이도 허무함을 느낀다. 그런데 많은 날이 지났을 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호기심을 느끼며 다가선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깨달아도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세상과 닿을 수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교육이 반사적이면 안 된다. 어릴 때 마음에 박힐 수 있는 말은 따뜻한 말들 뿐이다. 그런 말들이 근거가 되어서 자신이 세상과 닿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게 와닿는다는 것의 외로움과 비난을 모두 이겨내고 가끔씩은 추억 속의 초콜릿을 진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어른에게서 잘하지 않으면 초콜릿은 없다는 기준처럼 "초콜릿 치워!!"라는 말을 습득했을 것이다. 때로는 나를 가르치기로 약속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손가락의 언어를 내뱉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어로 나아가 한 사람의 추억에 못을 박았을 것이다. 나는 잘해야 한다는 그 기준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껴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던 초콜릿을 잃어버린 나이의 나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기에 초콜릿을 성과와 같이 둘 수도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 버거운 그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노력과 보상을 같은 자리에 두기 싫어진다.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멈춰선 순간에 떠오르는 잠깐의 고민들이 장난스럽지가 못해서 나를 뒤흔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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