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

<오펜하이머>(2023), 크리스토퍼 놀런

by Yul

크리스토퍼 놀런이 감독한 <오펜하이머>의 원작이 되는 책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다. 제목에서부터 쉽게 알 수 있듯, 아닌 게 아니라, 여기서 오펜하이머는 시종 프로메테우스에 비유된다. (“자넨 이제 ‘미국의 프로메테우스’가 된 거야.”) 그런데 왜 하필 프로메테우스여야 했던 것일까. 인류에 ‘핵’이라는 지식을 전달한 까닭에 그런 것이라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속삭인 뱀으로 비유될 수는 없었던 걸까.

그건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준 존재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먼저 보는 선지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펜하이머>는 결국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축으로서 핵폭탄 개발을 이끈 물리학자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 끝에 가서 미래에 대한 섬뜩한 예감으로 선득하게 끝나는 선지자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천재 과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는 나치 독일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연합국의 최고 과학자들을 모아 원자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그러나 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공산주의와 밀접했던 과거가 드러나자 그는 위기를 겪는다.


<오펜하이머>엔 스펙터클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펙터클이 발라져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오펜하이머>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트리니티 핵실험 장면이다. 러닝타임의 정확히 3분의 2 지점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장면은 폭발 전의 긴장감과 폭발 후의 불안감으로 내내 팽팽하다. 하지만 정작 원자폭탄이 3km 높이의 불기둥을 이루며 폭발할 때 이 영화의 카메라는 폭발을 가까이에서 보아내 오로지 이글거리는 불길의 모습만을 담음으로써 역설적으로 폭발의 스펙터클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또한 놀런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두 요소인 시각과 청각 중 핵폭탄이 터지며 들리는 거대한 폭발음을 의도적으로 없애는 연출적 선택을 통해 영화적 쾌감을 괄호 쳐 버리기도 했다. (물론 거기엔 실제 자료에 바탕한 리얼리즘적 연출의 목표 또한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180분이나 되는 러닝타임 중 고작 15분가량만이 핵폭발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실험 장면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기울어져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니 여기에 스펙터클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내면의 스펙터클일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들이 으레 그래 왔듯 복잡한 플롯 구성으로 이루어진 영화이기도 하다. 땅에서의 일주일과 바다에서의 하루와 하늘에서의 한 시간을 정교한 구성으로 엮어냈던 <덩케르크>나,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충돌하는 형식을 가졌던 <인셉션>의 사례가 그러했듯, <오펜하이머>는 전혀 무관한 듯 보이는 두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두 이야기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복잡한 구조의 영화다. 여기서 컬러로 진행되는 1부는 오펜하이머의 비밀 청문회를 다루고 2부는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공식 청문회를 담는다.


이때 전자의 경우 ‘핵분열’이라는 부제가 붙는 데 비해 후자는 ‘핵융합’이라는 또 다른 부제가 붙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핵분열과 핵융합은 영화 속에서 진진하게 다뤄지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작동 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 핵분열과 핵융합은 모두 하나의 원자폭탄이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것은 ‘핵분열’과 ‘핵융합’의 관계다. 분열을 기본 원리로 작동하는 원자폭탄은 핵분열이 그 자체로 작동하기 위한 최종 단계이지만, 융합을 기본 원리로 사용하는 수소폭탄에는 핵분열이 핵융합이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단계 중 하나이다. 이건 두 챕터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흑백으로 진행되는 1959년의 스트로스 청문회는 사실상 1954년의 오펜하이머 청문회를 비롯한 과거 컬러 장면의 반작용으로 구성되는데, 이 두 번의 청문회 장면들은 항상 과거의 일을 질문의 형식으로 길어 올림으로써 1940년대와 1954년의 일들을 끊임없이 호출한다. 그러니까, 1959년 스트로스 청문회의 전제 조건은 1954년의 오펜하이머 청문회이고 핵융합의 전제 조건은 핵분열이다. (극 중에서 오펜하이머와 대립하는 에드워드 텔러가 개발하는 것이 수소폭탄이라는 점은 1부와 2부의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건 결국 케임브리지와 괴팅겐에서 로스앨러모스까지, 그간의 족적을 고스란히 쫓아가야 온전이 작동하는 그 자체로 하나의 핵폭탄 같은 영화인 것이다. (“이 고발장의 모욕적인 내용은 제 삶과 일의 맥락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야기 구조와 인물 간 인과관계를 핵폭탄처럼 다루는 이 영화는 그 속을 채우고 있는 인물들과 그 관계를 흡사 원자의 연쇄 충돌과 같이 다룬다. <오펜하이머>엔 등장인물들이 끝도 없이 나온다. 그중에선 이야기의 맥락 상 꼭 만나야 해서 만나는 인물들도 있지만 누군갈 만나기 위해 갔다가 우연이 부딪히게 된 사소한 인물들도 많다. 데이비드 힐(라미 말렉)처럼 후반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물도 있지만, 보리스 패시(케이시 애플렉) 케네스 니콜스(데인 드한) 트루먼 대통령(개리 올드만)처럼 단발적으로 기능하는 인물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왜 그런 배역들에조차 그토록 거대한 이름들이 필요했을까.


그건 이 영화가 하나의 원자에서 방출된 원자핵들이 다른 원자들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발생하는 연쇄 충돌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부딪히고 분열하는 원자 하나하나를 관객에게 하여금 기억하게 하기 위해선 스타 배우가 필요했을 것이다.) 예컨대 미국 전역을 철로로 가로지르며 시종일관 다른 인물들을 만나는 이 영화 속 오펜하이머의 동선은 원자들이 서로 부딪히는 과정을 이야기의 형상 속에 새겨 넣은 것과 같다. 트리니티 실험 직전까지 오펜하이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원자폭탄 개발 후 일어날 사회적 파장에 대한 우려가 아니었다. 그건 원자폭탄이 폭발하는 과정에서 대기 중에 불이 붙는 연쇄 반응으로 인해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이었다.


영화적으로 <오펜하이머>가 눈길을 끄는 지점은 비단 구조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킬리언 머피는 각각 복잡하고도 모순적인 캐릭터를 연기해 일생일대의 연기를 펼쳤다. 플로렌스 퓨와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역시 많지 않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제 자리에서 맡은 바를 충실히 이행하는 믿음직스러운 연기를 한다. 케네스 브래너와 개리 올드만 같은 대배우들에게 각각 닐스 보어와 트루먼 대통령 같이 거대한 존재감의 역할을 맡게 한 캐스팅 방식도 자못 흥미롭다.


하지만 결국 <오펜하이머>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킬리언 머피의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루이스 스트로스와 로버트 오펜하이머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맞붙는 순간들은 내내 팽팽하다. 1954년 비밀청문회의 배후에 스트로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작품의 대다수 장면이 스트로스 대 오펜하이머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오펜하이머>에서 진정 중요한 순간들은 항상 대비되는 두 가지 대립항이 서로 연결되고 뭉쳐질 때 발생한다는 점이다.

로스앨러모스에 위치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연구 시설에 가기 위해선 기차를 타고 이동한 뒤 재차 자동차를 이용해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비행기를 이용한다면 훨씬 더 빠르게 갈 수 있지만, 보안상과 안전상의 이유를 고려한다면 기차를 이용하는 편이 더 낫다. 그로브스 대령(맷 데이먼)과 오펜하이머는 로스앨러모스에 기지를 짓고 주요한 산업 체계를 철도로 연결하는 데 까지는 협력하지만 도착해서 실험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갈라서기 시작한다. 국가적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보안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그로브스는 '구획화'를 통해 기지 안 접촉을 최소화하려 하지만 효율성을 가장 중요히 여기는 오펜하이머는 반대편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결국 끝까지 보고 나면 옳았던 것은 오펜하이머였지만 틀렸던 것 역시 그였다. 구획화로부터 자유로운 작업 방식으로 효율을 높인 끝에 18개월이나 앞서 있는 독일의 작업 속도를 따라잡아 먼저 핵폭탄 개발에 성공한 것은 분명한 성취이지만 동시에 로스앨러모스 내부의 첩자로부터 소련으로 정보가 유출되면서 전 세계에 핵전쟁 위협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 역시 그로브스의 철저한 구획화 계획이 오펜하이머에 의해 뭉그러졌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로브스의 구획화 계획에 맞서는 오펜하이머의 방식은 핵융합으로 선명하게 형상화되는데,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과학자와 가족과 고위급 안부들 사이에서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서로를 떼어놓는 그로브스의 모습에 맞서 고위급 안부 회의를 주도하며 명확한 의견 나눔으로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은 4개의 양성자가 하나의 입자로 융합하며 서로 섞이는 핵융합의 그것과 같다. 핵분열을 사용하는 원자폭탄을 만드면서 정작 그 과정은 그토록 대립하는 수소폭탄의 핵심 원리인 핵융합의 모티브를 사용한다는 역설.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할 비밀 시설을 뉴멕시코 로스앨러모스의 황무지에 건설하자고 주장하면서 "내 삶이 완벽해질 것"이라 말한다. 뉴멕시코의 그곳이 오펜하이머에게 완벽한 공간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 위치가 자신의 고향인 로스앨러모스이어서도 아니고, 물리학을 실험하는 장소이어서도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리학과 뉴멕시코라는 두 가지 특성이 한데 합쳐져 융합된 형태를 띠는 것의 의미다. 그러니까, 로스앨러모스는 그 자체로 오펜하이머의 모든 것을 응축시켜 놓은 것으로 완성될 때 완벽해질 수 있는 공간이면서 그 자체로 오펜하이머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곳엔 가족이 있고 일이 있으며 성공에 대한 환희가 있음과 동시에 곧 닥쳐올 파장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온 피를 손에 묻히고도 책임지고자 하는 숭고함이 있는 한편, 결함 심한 한 인간 내면의 모순이 얼기설기 얽혀있기도 하다.


서로 모순되고 대비되는 두 대립항이 맞닿는 순간은 스트로스와 오펜하이머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우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청문회를 각각 겪는다는 점에서 같다. 오펜하이머는 보안 인가를 갱신하기 위해 1954년 비밀 청문회에 참석하는데, 스트로스는 장관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1959년 공식 청문회에 참석한다. 그러나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지는 청문회의 형식을 적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는 재판장으로 잘못 판단한 뒤 "이곳은 재판장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들은 채 그 청문회가 끝이 나면 그들은 결국 보안 인가를 갱신하지 못하고 장관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닮아 있다. 그들이 서로 처음 만났던 것은 종전 이후 오펜하이머를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 이사 자격으로 초청했을 때인데, 스트로스는 그에게 프린스턴대학의 곳곳을 소개해주며 이사 자격으로 취임할 것을 회유한다. 그러다가 과거 이야기까지 언급하며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던 중 오펜하이머가 스트로스의 과거 직업에 대해 "미천하다"라고 경솔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과 달리 스트로스는 미천하지 않았다. 구두 판매일을 했다고 해서 그 직종의 사람들이 모두 천한 것은 아니다. 오펜하이머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자수성가로 성공했다고 해서 모두 일전에 미천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리고 오펜하이머 스트로스가 오해한 것과 달리 역시 아인슈타인에게 그의 흉을 보지 않았다. 그때 그들은 원자폭탄의 연쇄 반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오펜하이머의 얘기에 생각에 잠긴 아인슈타인이 그저 스트로스를 스쳐 지나갔을 뿐 거기엔 아무런 무시나 경멸의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둘은 서로를 오해하고 잘못 판단한 것이다.


<오펜하이머>가 인물을 그리는 작법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 인물의 행동과 죄질 면에서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보다 악역으로 그려질 가능성이 농후함에도 불구하고 둘을 동등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오펜하이머>에선 오펜하이머가 청문회에서 실패한 것처럼 스트로스 역시 실패한다. 트리니티 실험 성공 후 연설에서 경솔하게 기뻐했던 것과 반대로 반핵화 운동을 진행하는 오펜하이머의 모순은 스트로스의 인간적인 결함만큼이나 크다. 말하자면 <오펜하이머>은 영웅과 악당을 두 갈래로 나누어놓고 서로 견주며 비교하는 영화가 아니라 모순적인 두 인물을 놓고 겹쳐 보는 영화인 것이다.


거대한 별은 폭발도 거대하다. 오펜하이머는 진 태트록(플로렌스 퓨)을 처음 만난 그날 파티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 별이 죽은 뒤 식은 후 붕괴하는 과정에서 별의 중력이 강한 만큼 폭발 과정도 격렬하다고. 그러나 중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별뿐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몸은 별과 같아서, 원자들 사이의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단단하게 신체를 구성한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그렇게 말하고도 자신이 바로 그 별이라는 사실은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했다. 더군다나 오펜하이머라는 거대한 별의 다른 이름은 프로메테우스였다. 선지자이면서 파괴자이고 영웅이면서 스파이인 그는 이제 그 수많은 가능성들을 상상으로 선지한 끝에 선득한 예감의 미래 앞에서 눈을 질끈 감는다. <오펜하이머>는 결국 실패한 인간이면서 실패한 선지자이고 결국 폭발해버리고 만 별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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